◆권기홍 에이디칩스 사장
“대학교 때부터 반도체와 관련된 공부를 했고, 해군사관학교에서 관련 과목을 강의했고, 그리고 현재까지 업계에 몸담았으니 강산이 세 번 변하도록 반도체와 접하고 산 셈이네요.”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1세대 주자로 꼽히는 권기홍 에이디칩스 사장(48)은 게이트어레이 방식부터 현재의 시스템온칩(SoC)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몸에 끌어안고 있다. 지난 85년 금성반도체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권 사장은 지난 87년 아님반도체설계에 창업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에이디칩스 창업 전까지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해왔다.
“아남반도체설계 창업 당시에 미국 VLSI에 1년간 파견 가서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당시에 신기술을 가지고 와서 워크스테이션을 들고 전국을 돌며 200회가 넘게 업계에 브리핑을 했습니다. 모두가 생소해 했습니다. 여러 차례 설득 끝에 고객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98년 반도체 설계 사업부가 권사장 등을 중심으로 독립하게 된다. 30명 인력으로 출발한 에이디칩스는 당시만 해도 큰 규모의 설계회사로 국내 팹리스를 대표했다.
권 사장은 창업 당시 반도체 설계 서비스말고 독창적인 품목을 찾고 있었다. 그는 90년대부터 아남반도체의 고문 활동을 했던 부경대 조경현 교수로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들었다. 권사장은 “98년은 SoC의 태동기였고 조교수의 외국에 로열티를 내지 않는 국산 프로세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에 동의, 이 사업을 첫 번째 프로젝트로 삼았다”고 말했다.
시기가 맞았던지 정부가 추진하는 시스템IC2010 사업과도 일치돼 정부로부터 5년간 50억원을 지원받았다. 여기에 자체 자금 50억원을 들여 국산 프로세서 코어인 이아이에스씨(EISC)를 개발, 전세계에 특허를 냈다. 에이디칩스의 EISC는 중앙처리장치(MPU) 설계기술인데다 8비트에서 64비트까지 동일 아키텍처로 확장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 제품에만 EISC를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의의 의견을 듣고 이 프로세서 코어를 외부에 공급하는 반도체 설계자산(IP) 판매를 하게 됐습니다.”
국산인 EISC로 업계에서 유명세를 떨치게 되니까 대학교 측에서는 EISC를 사용해보겠다는 요청이 계속 들어와 연구 개발용으로 서울대, 과학기술원,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등을 비롯한 국내 대학교와 피츠버그대학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등 외국 학교에 기증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에이디칩스는 코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등록을 하는 등 안정적인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시련이 찾아왔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주가조작혐의로 걸리게 된 것.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위기였다. 권사장은 검찰에 고발된 이후 은행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신용장(LC)도 끊어주지 않는 등 사업에 차질이 있었지만 직원들과 합심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결백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고등법원에서 이겼고 현재 대법원에 간 상태입니다. 그동안 직원들이 회사를 버리지 않고 같이 있었고 고객사들도 믿고 제품을 구매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권 사장은 최종 결론이 나면 이번 일로 인해 그동안 실추된 회사 이미지도 높이는 작업을 하는 등 새로운 출발을 할 계획이다.
이를 지원해주듯 최근에는 회사다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회사의 현금창출원인 일본 AKM, 리코의 제품 유통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밑바탕이 되어주고 있다. 에이디칩스의 얼굴인 EISC도 로열티를 받게됐으며 EISC를 기반으로 설계한 작품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대학교와 공동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마무리되면서 상용화 가능한 시스템이 생산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에이디칩스는 최근 인터넷 유해환경 방지를 위한 기록장치인 ‘그린박스’ 사업과 능동형 전자태그(RFID) 등을 신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등 사업 다각화도 실시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국가 기관 등이 투자해 개발한 것입니다. 앞으로 국가 기관이 이를 원하면 가져가 개발할 수 있도록 공개할 의사도 있습니다. 모두 힘을 합해 EISC를 업그레이드하면 세계적인 프로세서 코어 업체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권 사장은 EISC가 에이디칩스의 단독 소유물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이 모두 사용하는 토대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학교, 연구소 등의 연구개발용으로 기증을 계속하는 한편 정부 관련 연구소 등과 공동 개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년 뒤의 에이디칩스는 세계 곳곳에 지사를 두고 현지에서 현지인력을 고용, 그곳에 적합한 반도체를 EISC 기반으로 개발하는 회사가 될 것입니다. 서울은 그렇게 개발된 칩을 생산, 공급하는 곳이 되고 반도체설계자산(IP) 판매가 주요 수입원이 될 것입니다.”
이때쯤이면 에이디칩스에서 더 이상 자기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권사장은 전했다. 회사가 안정궤도에 올라서면 자신은 다른 사업에 뛰어든다는 생각이다. 권 사장은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EISC가 자리를 잡게 되면, 한국의 야생화를 대량 생산·수출하는 산업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권사장은 시간만 나면 산과 들로 나가며 꽃집을 들러본다.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화훼 산업에 대한 기초도 닦을 요량에서다. 권사장은 꽃은 보는 것은 벤처인으로서 또 다른 벤처를 꿈꾸는 것이며, 이 목표를 위해서라도 현재의 사업을 강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에이디칩스는
에이디칩스(대표 권기홍 http://www.adc.co.kr)는 올해로 창업 8년차를 맞은 시스템반도체 업체다. 이 회사는 지난 지난 98년 2월, 아남반도체설계의 세미콘사업부가 분리되면서 권기홍 사장을 포함, 약 30여명의 영업 및 엔지니어들이 창업했다.
회사를 대표하는 아이템은 국산 프로세서코어인 EISC로, 시스템온칩(SoC) 설계에 반드시 들어가는 프로세서 코어다. EISC 개발을 위해 에이디칩스는 100억여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순수 자체 기술로 16·32·64비트급 EISC 프로세서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임베디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원천기술을 국내외에 수출하고 있으며, 이 기술을 내장한 SoC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주요 제품으로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CPU를 내장한 게임기 전용 칩, 백색 가전 전용 범용 칩, VOIP 칩, 휴대용 기기를 겨냥한 멀티미디어 프로세서 칩 등이 있다. 반도체사업부분은 반도체 유통 사업을 하고 있으며 에이디칩스의 꾸준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주요 거래 품목으로는 휴대폰용 IC, 휴대폰 배터리 보호회로 IC, PC 주변기기 등 다양하다. 특히 가장 큰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휴대폰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5∼6가지 종류의 IC를 공급하고 있다. 신규 사업으로는 PC 화면 기록 장치인 ‘그린박스’ 부문과 전력선통신용 반도체, RFID 칩 등을 선정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