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로봇 산업의 대표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소니와 혼다이다. 소니는 애완로봇 ‘아이보’로 국내 소비자와도 친숙하다. 혼다는 이족보행로봇인 ‘아시모’로 명성을 쌓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회사의 로봇 육성 전략은 판이하다. 소니가 당장 ‘돈’이 되는 ‘장난감’ 로봇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 혼다는 아직은 ‘돈’은 안되지만 20년이나 30년 뒤를 내다본 ‘인간형 로봇’으로 승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에 위치한 소니와 혼다 본사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형 로봇 연구단 이재연 박사와 돌아봤다.
◇장난감 로봇의 명가 소니=‘소니다운 제품을 만들자.’ 이 말은 소니(http://www.sony.co.jp)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소니가 로봇을 만들고 있는 철학적 기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니답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소니의 섹션 1-엔터테인먼트 로봇부문에서 근무하는 도이 테쯔오 박사에게 물어봤다.
“독창성과 개척정신입니다. 소니가 세계 최초의 가정용 로봇을 만들어냈듯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것이야말로 소니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봇의 경우도 이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테쯔오 박사의 이 말엔 “워크맨’으로 널리 알려진 소니의 제품화 마인드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소니는 로봇 분야에서 300㎜크기의 애완견 로봇 ‘아이보’와 580㎜ 키의 이족 보행 로봇 ‘큐리오’ 등 2종의 로봇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93년 다리가 6개인 로봇으로 기술 개발에 나선 이후 6년만인 지난 99년 애완견 로봇 ‘아이보’를 출시했다. 소니 엔터테인먼트 로봇의 프로모션 그룹 키요키 콘도 매니저는 “3000대 한정 제작한 아이보를 인터넷으로 판매했는데 25만엔(250만원)짜리가 단 20분만에 다 나갔다”며 “이후 꼬리형태만 바꾼 아이보도 5000대만 공급했는데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능은 둘째 문제였다”며 “소비자가 첫눈에 보고 ‘감’을 느끼면서도 오래 가지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덧붙였다. 한때 히트쳤던 워크맨을 만든 소니다운 발상이다.
소니는 2002년께 아이보의 제품가를 파격적으로 낮춰 8만5000엔에 내놔 현재까지 14만대를 팔았다.
“93년 처음 로봇을 제작했을 때는 단지 걷는 기능뿐이었다”는 소니의 매츄이 유미 기술 및 장치 홍보 담당자는 “최근엔 꼬리를 흔들고,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가 하면 공을 차고 스스로 놀기도 하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소니는 현재 ‘아이보’의 차세대 버전으로 운동기능을 강화하고 PC와 연계해 게임이나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로봇을 준비중이다.
이와 함께 아직 ‘돈’은 안되지만 ‘달리는’ 이족보행 로봇 ‘큐리오’도 지난 2003년 세계 처음 선보였다. 관절부분 동력을 20∼30% 높이고 발이 지면에 닿을 때 충격을 흡수하는 충격흡수 메커니즘을 도입해 분당 14m 속도로 달릴 수 있다. 뒤로 달리기, 정지, 점프, 회전, 공 던지기, 춤추기 등도 할 수 있다.
◇자동차의 로봇화 추진 혼다=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 혼다(http://world.honda.com)의 이족보행 로봇 ‘아시모’ 개발은 의외로 단순한 데서 시작됐다.
지난 86년 자동차 배출가스의 연소 효율화에 IT를 접목시켜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고민하다 결국 기계적인 한계에 봉착, 컴퓨터화한 것이 로봇 개발의 계기가 됐다. 혼다는 당시 전자제어 기술, 나아가 로봇이 향후 자동차 산업의 핵심 키가 될 것으로 봤다는 것. 이때부터 자동차를 포함해 모든 움직이는 이동체를 ‘로봇’으로 보고 ‘아시모’개발에 나선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시모’ 개발의 뒷얘기이다.
혼다의 하타노 유지 자문 매니저는 “로봇이야말로 전기제어기술의 총합체”라며 “자동차 산업과 같이 가고 있기 때문에 ‘아시모’의 내구성이나 부품 테스트가 거의 필요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자동차 부품 수가 3만개인데 반해 ‘아시모’의 부품 수는 5000∼6000개에 불과해 오히려 자동차보다 로봇 제작이 더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간 로봇 연구에 들어가는 예산 공개는 비밀이라는 혼다 측은 연간 그룹 차원의 연구개발비 5000억엔(5조원)의 100분의 1보다 덜 투자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혼다는 ‘아시모’의 상용화에 대해선 20년이나 30년후를 내다보고 있다. 현재 ‘아시모’를 연 2000만엔씩 3군데 대여하고는 있지만 일반인의 아직은 생소해 하는 반응과 친인간화의 기술적인 장벽 때문에 사업으로 하기보다는 맛뵈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모’는 소니가 디자인에 신경쓰고 있는데 반해 로봇의 움직임에 신경을 썼다. 걸음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사람이 걷는 방식인 발바닥의 뒤꿈치에서 앞꿈치로 걷도록 설계했다.
하타노 유지 자문 매니저는 ‘아시모’의 국산화율에 대해 “SW는 모두 외부에서 사왔다”며 “기계적인 부분과 제어 기술은 자력으로 모두 개발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혼다는 향후 로봇 기술을 자동차에 응용할 계획이다. ‘아시모’에 달린 3차원 인식용 카메라 센서 연구 개발자가 원래는 혼다 본사의 자동차 연구자였듯 앞으로는 자동차와 로봇이 함께 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혼다는 그래서 청소로봇이나 동물 로봇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소니처럼 단기이익을 노리기 보다는 미래를 내다본 로봇이 목표라는 설명이다.
함께 방문했던 ETRI 이재연 박사는 “시게미 사토시 아시모 개발실장이 처음 로봇을 개발할 때 동물의 움직임이나 짐을 많이 든 할머니, 경사진 과수원의 할머니 등을 관찰하며 로봇의 개념을 잡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며 “실험용으로만 40대나 로봇을 제작했다면 투자액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일본)=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인터뷰-여준구 박사
“향후 로봇이 성장동력의 한 축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나라 중소기업이 로봇 개발에 나서는 것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여준구 미국국립과학재단(NSF) 동경사무소장(46)은 “한국의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로봇을 상품으로 개발하려면 정부의 포괄적인 중, 장기 지원이 필요하다”며 “단기상품으로 승부를 보려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게는 ‘파산’을 가져올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충고부터 했다.
“중소기업은 로봇을 2년정도 개발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이미 기술 개발에 가진 돈을 다 쏟아부어 그대로 주저 앉기 십상입니다. 대기업마저도 아직 시장이 불분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뛰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로봇 투자는 정부차원의 장기 계획이 필요합니다.”
여 소장은 “성장 속도로 보면 연구인력 등의 보유자 수가 급증,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면서도 “다만 전체 경제 및 예산 규모가 작고 절대적인 인적 비교가 안 되는 점이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일본은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한국은 미국처럼 만드는 것에 예산을 주기보다는 기초과학이나 새로운 이노베이션, 이론 등이 있어야 예산을 지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미국성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 소장은 이 같이 한국과 일본의 로봇 정책의 차이를 지적하며 “우리 나라가 선진국의 기술 논문이나 기초과학 수준의 차이를 따라잡으려면 우선 혼자서 점프 장벽을 넘기보다는 국제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한국의 IT네트워크 등을 이용한 테스트베드 기반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여 소장은 또 일본 로봇의 장점으로 부품 산업을 꼽으며 “우리 나라는 예를 들어 모터의 가격이나 제품의 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일본과 경쟁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국책연구 차원에서 요소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국방시장이 큽니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 아이로봇의 경우도 매출의 반이 국방분야입니다.”
여 소장은 로봇의 기술 개발 추이에 대해 “아파트 자동화나 자동차 자동화도 모두 로봇의 영역이듯 로봇이 꼭 움직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며 “앞으로는 실버 로봇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가즈오 교수
“일본은 로봇에 관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반면 한국은 주문제조 능력이 약한 것 같습니다. 이점이 한-일간 차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에서 근무하다 최근 ‘수도대학도쿄’로 자리를 옮긴 다니에 가즈오 휴먼메카트로닉스 시스템 코스 교수(58)는 “로봇 연구진의 한·일 수준은 비슷하지만 로봇 부품을 만드는 제조 기술의 차이가 제품의 차이를 낳고 있는 것 같다”는 말로 한-일 로봇의 차이점을 비교했다.
일본 총리실 산하 차세대 로봇 분야 프로그램 위원장을 맡아 중복 예산 등을 조정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가즈오 교수는 한국의 장점에 대해 “성장의 활동성이 두드러지는 국가”라며 “로봇연구자들의 연령이 상당히 젊어 변화에 쉽게 적응하고 진보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도 한국처럼 R&D상용화를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실적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이를 두고 일본 지식인들은 로봇이 경제활동상 공헌도가 적다는 평가를 하곤 하는데 여기에는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로봇이 이제 시장을 막 열어가고 있어 비교대상이나 추적 대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즈오 교수는 “로봇은 다른 분야와 상용화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최근엔 일본 정부도 이런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로봇 분야 시장 전망에 대해 가즈오 교수는 청소로봇 룸바 같은 실생활 분야의 시장 주도가 먼저 이루어질 것이라는 다른 전문가와의 지적과는 다소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주문생산쪽부터 로봇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봅니다. 아직도 로봇 시장 점유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 로봇에서는 대부분 주문자 생산이기 때문입니다.”
가즈오 교수는 일례로 쓰시로봇(초밥 만드는 로봇)의 일식집 점유를 들었다. 회전쓰시 경영자가 인력이 부족해지자 제조업체에 초밥만드는 로봇을 주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저의 요구에 따라 로봇을 만들어 간다면 로봇의 비즈니스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로봇을 주문했을 때 이를 만들어줄 수 있는 기술, 즉 대응체계나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즈오 교수는 로봇 보급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일본서는 70년대 공장에서 산업용 로봇 구입할 경우 세금을 감면해줬다”며 “이제 가정이 로봇을 살 경우 세금을 감면해 주거나 기업에 일정 예산을 보조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도쿄(일본)=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