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찻잔, 서류, 책, 연필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대충 정리해보자! 아마 20∼30초면 충분할 것이다. 로봇은 얼마나 걸릴까.
지난달 13일, 미국 피츠버그 카네기멜론대 로봇연구소(The Robotics Institute·RI)에서 만난 매튜 메이슨 소장은 사각형을 삼각뿔 형태로 여러 번 접은 파란색 종이조각을 기자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그의 로봇이 접은 종이조각이다.
언제쯤 사람처럼 20∼30초 내에 책상 위를 정리하는 로봇 도우미가 등장할지 모르겠지만, 메이슨 소장 연구팀(The Manipulation Laboratory)이 그 출발선에 서 있다. 그는 요즈음 이른바 ‘데스크톱 로보틱스(Desktop Robotics)’에 힘을 쏟는다. 사람 팔과 손, 손가락의 원활한 움직임처럼 로봇이 책상 위 종이를 쥐고, 펴고, 옮길 수 있도록 연구한다.
“예전에는 그저 책상 위 종이를 움켜쥐는 정도였습니다. 이제 책상 위에 얇게 펴져 있는 종이를 ‘들어올리지 않고 그대로 끌어서 옮기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책상 위 종이를 끌어서 옮기려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종이를 눌러야 하고,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해야 할지 등을 감안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고 생각하기엔 간단하지만, 로봇에 적용하려면 복잡하다. 특히 모바일 로봇에 원격 자율 인식체계를 심고, 책상 위 종이를 옮기게 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메이슨 소장의 연구를 토대로 로봇이 이동하고, 사람과 만나 악수하고, 가볍게 종이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그 로봇의 활동 영역이 우주, 바닷속, 화산 등으로 넓어지면 그 산업·경제적 가치를 가늠키 어렵다.
“우리(RI)는 박물관 투어를 안내하고, 행성을 탐사하며, 송유관이나 험한 지형을 기어다니는 등 폭넓은 영역에서 로봇을 연구합니다. 또 로봇 팔을 만들거나 음성인식, 장난감, 교통안전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합니다. 한 마리로 정리한다면, ‘똑똑한 동물(인텔리전스 애니멀스)’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자가 “과연 그 똑똑한 동물이 인간의 친구로만 머물겠느냐”고 물었다. 메이슨 소장은 “그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과학자)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알 릿지 박사는 초당 2.7m를 달려나가는 8.5㎏짜리 곤충로봇(hexapod), 6개 다리로 건물벽을 기어오르는(scansorial) 거미로봇을 자랑스레 내보인다. 그는 “2년쯤 뒤에 거미로봇을 세상에 내보낼 것”이라며 “폴리머 배터리를 장착하고 휴대폰이나 노트북컴퓨터로 원격 조종할 수 있도록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마뉴엘라 벨로소 박사는 ‘로봇끼리의 팀워크’에 눈을 빛냈다. 벨로소의 로봇들은 끼리끼리 소통(네트워크)하며 팀을 이루어 골(goal)을 향해 나아갔다. 인간이 로봇을 제어하는 게 아니라 로봇(컴퓨터네트워크)이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른바 ‘멀티 로봇 시스템스’이다. 미 과학재단, 로크웰, 소니 등이 후원하는 이 연구가 인류에게 가져다줄 혜택은 무엇일까. 단순히 어린이 장난감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RI에는 미 과학재단(NSF), 첨단국방연구청(DARPA), 항공우주국(NASA) 등 국가 기관과 민간 기업으로부터 매년 4000만∼5000만달러의 연구개발비가 지원된다. 우리나라에서 로봇공학에 투입되는 연간 예산이 8000만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 액수가 엄청나다. 미국에서 카네기멜론대와 비슷한 액수를 로봇공학에 투자하는 대학은 매사추세츠공대, 사우스캘리포니아대, 버클리대, 펜실바니아대, 스탠포드대 등 손으로 꼽기조차 힘들다. 우리는 뱁새, 그들은 황새 걸음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다. 피츠버그(미국)=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인터뷰-윌리엄 레드 휘태커박사
2005년 10월 8일 모하비 사막에서 새 역사가 이루어졌다. 미 스탠포드대학 레이싱팀의 ‘스탠리(Stanley)’를 비롯한 4개 로봇자동차가 미 첨단국방연구청(DARPA)이 200만달러를 내걸고 주최한 ‘제2회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에서 알아서 장애물을 피해가며 모하비 사막 211.48㎞를 횡단한 것. 로봇이 인간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이룬 가장 큰 업적(?)이다.
시계바늘을 한 달 전인 9월 13일로 돌려보자. 열정이 넘쳐 얼굴이 붉어져 ‘레드(red)’인지 모를 윌리엄 레드 휘태커 박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 10년여간 무인 로봇자동차를 개발하는 레드팀을 이끌면서 카네기멜런대 로보틱스 인스티튜트의 스타였다. 엄밀하게는 ‘어디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지켜봅시다’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큰 변화다. 또 (그랜드 챌린지는) 미래를 향한 경주다.”
휘태커 박사는 기자의 “누가 이길 것 같느냐”는 물음에 버럭 역정을 내듯 “중요한 것은 우승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컴퓨팅 시대 다음 100년은 로봇의 시대”라며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건넜듯 누구든 모하비를 건너 새 역사를 쓰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위대한 도전(Grand Challenge)’”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휘태커의 레드팀은 2004년 3월 큰 시련을 겪었다. 제1회 그랜드 챌린지에 ‘샌드스톰(Sandstorm)’을 내보냈으나 11㎞쯤 가다가 작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 카네기멜론대 로보틱스 인스티튜트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 대학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인 결과가 수렁에 빠진 꼴이었던 것이다.
레드팀은 굴하지 않았다. 샌드스톰 뿐만 아니라 ‘하이랜더(H1ghlander)’를 추가해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경험상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하이랜더 이름에도 ‘1’을 삽입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결국 스탠포드대학의 ‘스탠리’가 레드팀을 제치고 11분 빠르게 앞서 갔다. 스탠리는 평균 시속 30.7㎞, 샌드스톰은 29.9㎞로 간발의 차이였다.
제2회 그랜드 챌린지에는 137개 팀이 도전해 19개 팀이 사전에 잘려나갔고 1차 경쟁을 통해 118개 팀이 가려졌다. 다시 23개 정예팀들이 모하비 위에 로봇을 풀어놨고, 4대가 사막을 건넜다. 모두 미국 내 대학 연구팀들이었다.
피츠버그(미국)=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