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HP-대한생명 간 법적공방 의미와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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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의 이번 판결은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와 이를 둘러싼 발주처와 공급자 간 계약 관계의 특성을 인지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국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발주처와 공급업체가 프로젝트 지연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두고 법정에 섰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이번 재판은 한국HP의 압승으로 일단락됐지만 이를 계기로 앞으로 추진될 대형 IT 프로젝트에서는 새로운 계약 관행을 정립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본지 9월 16일자 10면 기사 참조

 ◇사건 개요=양사의 법정 다툼은 지난 2003년 11월, 한국HP가 대한생명보험 측에 차세대정보시스템(NK21) 프로젝트 미수금 지급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대한생명보험 측이 미수금 지급을 거부하고 프로젝트 지연 개통에 대한 책임을 한국HP 측에 물어 ‘지체보상금’을 요구한 것이 발단이 됐다.

 NK21 프로젝트는 한국HP에 합병된 옛 컴팩코리아가 지난 2000년 수주, 2003년 6월까지 약 3년 동안 수행한 것으로 한국HP는 그해 회계연도가 끝나는 시점까지 잔금을 받지 못했다. 당시 양사는 350억원 규모인 프로젝트 비용을 4단계에 걸쳐 지불하기로 합의했으며, 한국HP는 요구 분석 설계와 개발 등과 관련된 비용은 받았으나 약 100억원의 잔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한국HP가 용역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대한생명 측은 애초 2003년 2월 개통키로 돼 있던 시스템이 6월로 지연된만큼 계약서에 따라 한국HP 측에 지체보상금을 요구하는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 시작된 소송 절차는 지난 8월 결심 공판을 거쳐 지난달 29일 선고 공판이 예정됐으나 13일로 연기됐었다.

 ◇법원 판결의 의미=그동안 업계는 △프로젝트가 당초 설계대로 진행됐는지 △설계 수정 및 추가 요구사항의 유무 △프로젝트의 변화를 양 사가 협의했는지 등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해 왔다. 판결에 앞서 진행된 재판에서 재판부가 두 차례 이상 SI와 관련된 법정 프레젠테이션을 거듭한 것도 이번 재판의 중요성을 방증해주는 대목이다.

 이번 판결은 지금도 △설계변경에 대한 책임 소재 △사업대금 미지급 △과업내용 해석 △검수 지체로 인한 대금지연 △지체상금 등 발주자와 공급자 간에 빈번히 발생하는 분쟁에 대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과제=이번 사건으로 금융권 등의 대형 IT 프로젝트와 관련해 발주사와 공급사 간 계약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재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표준 계약서’ 정립과 도입을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대형 프로젝트가 대개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진행되면서 그 와중에 기업 인수합병(M&A) 등 경영환경의 변화는 물론이고, 날로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신기술 및 시스템에 대한 요구 증가 등으로 당초 예정대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나눠 발주, 수행하고 시스템 요구사항 변화 등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명확한 계약 규정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HP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엔지니어의 땀과 노력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면서 “향후 SI 프로젝트에서 계약서 작성, 프로젝트 범위 등을 명확히 해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고 수요처와 공급사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환기자@전자신문, vict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