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종목 프로게이머의 빛과 그림자

‘스타크래프트’로 대변되는 국내 e스포츠에 새로운 공인 종목 및 리그가 속속 시작·확대되면서 관련 프로게이머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프로 e스포츠 시대가 활짝 열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는 대회 부족과 스폰서 부재로 열악한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프로게이머 간의 빈부 격차도 심해지는 양상이다.

게임 열기에 편승한 공인종목 및 프로게이머 양산이 자칫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의 맹목적인 프로게이머 동경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e스포츠 시대에 새로 등장한 신규 종목과 관련 프로게이머를 통해 프로 e스포츠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본다.

온라인 FPS 게임 ‘스페셜포스’ 프로게이머 김솔. 스페셜포스 마니아라면 웬만큼 다 아는 E1패밀리팀 리더이자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출중한 게임 실력으로 추종 팬들도 꽤 있는 선수다. 그의 꿈은 직업적인 전문 프로게이머다. 하지만 그는 현재 디자인스쿨에서 사회 진출을 위한 직업교육을 받는다. 틈틈히 대회를 앞두고 클랜원을 소집해 대회 출전 준비를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불확실한 자신의 처지에 늘 불안하기만 하다.

# 직업교육과 게이머 ‘이중생활’

“지금이라도 다 정리하고 게임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솔직히 아직까지는 불확실해요. 다른 클랜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그에게 있어 불확실한 요소는 프로게이머의 비전도, 프로게이머 이후의 생활 여건도 아니다. 프로게이머답게 모든 시간과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다.

 “고정 수입이 없다보니 개인 돈을 써가며 생활한다는 게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중간에 떠나는 게이머도 많았고요. 유명 ‘스타크래프트’ 선수처럼 거액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상황에서 게임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만 지원해주면 돼요. 사실 우리들은 그것이 절실합니다.”

과거와 달리 e스포츠의 대중화 물결과 함께 게임을 좋아하고 잘하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길은 넓어졌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를 생계 수단으로 삼아 생활하기에는 여전히 그 길이 멀고 험하다. ‘수입은 없어도 좋다. 훈련 여건만 갖춰달라’는 목소리는 현재까지 대다수 프로게이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국산 온라인 게임으로는 처음으로 ‘스페셜포스’에서 프로게이머 5명이 탄생하게 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주인공은 ‘Again☆BK’팀의 안중업, 구교진, 안대홍, 박천홍, 박기범 등 5명이다. 이들은 MPIO배 MBC게임 1차 리그 우승과 오리온 예감배 온게임넷 1차 리그 3위를 차지해 2회 이상 공인대회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프로게이머 자격을 획득했다.

‘스페셜포스’의 주관 서비스사인 네오위즈측은 “첫 프로게이머 배출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게이머가 ‘직업인’으로 정식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많은 게이머들이 ‘스페셜포스’를 통해 자신의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기까지 겪은 수차례의 팀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인내는 부각되지 않았다.

# 월급은 필요없다 훈련 여건만 갖춰다오

Again☆BK팀의 한 선수는 “지방에서 올라와 코피 쏟으며 연습했고 대회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온라인에서 만나 실력을 다졌다”며 “팀원 대부분이 프로게이머가 됐다 해도 언제 팀이 해체될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라고 토로했다.

‘코리아 e스포츠 2005’ ‘프리스타일’ 종목 우승팀 ‘박스아웃’ 소속의 송상엽과 윤빈 선수는 86년생 동갑인 고등학교 친구다. 게임이 좋아 틈만나면 집근처 PC방에서 ‘프리스타일’을 즐기던 중 팀리더 김충희 선수의 제안으로 3명이 함께 대회에 참가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또 앞서 ‘WCG2005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준우승해 싱가포르 본선 무대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이들 3명의 선수 역시 궁극적인 목표는 프로게이머라고 털어놨다. 자신들이 가장 잘하고, 또 앞으로 잘 할 수 있는 것도 게임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경제적인 문제가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송상엽 선수는 “뚜렷한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용돈을 털어 PC방비를 대가며 함께 연습했다”며 “내가 아는 많은 ‘프리스타일’ 게이머들이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싶어하지만 불확실한 상금 획득 외에는 기댈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망설이고 포기한다”고 말했다.

현재 ‘스타크래프트’ 종목을 포함해 프로게이머를 원하는 청소년은 줄잡아 수천명에 이른다. 지난달 국내 최초의 프로암 대회로 열린 ‘코리아 e스포츠 2005’에 참가한 아마추어 게이머는 4000여명에 이른다. 잠재된 프로게이머 희망 인원은 수만명으로 추산된다.

# 10대 청소년들의 우상 스타 프로게이머

한국e스포츠협회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공인 프로게이머는 총 260명으로 공인 등록제 시행 이후 4년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준프로게이머도 150여명이다. 올해 출범한 제2기 협회의 중점 추진 사업인 ‘e스포츠 대중화 사업’에 발맞춰 ‘카트라이더’, ‘스페셜포스’, ‘프리스타일’ 등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가 크게 늘었고, 덩달아 프로게이머를 전문 직업으로 갖고자 하는 청소년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를 대변하듯 e스포츠협회는 지난 6일 온라인 FPS 게임 ‘스페셜포스’를 프로 e스포츠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아래 다음달부터 커리지매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프로스포츠의 2부리그 격인 커리지매치는 준프로게이머 발굴의 장으로 현재 21개 공인 게임종목 중 ‘스타크래프트’만이 유일하게 치르고 있는 대회다.

협회 제훈호 상임이사는 “ ‘스페셜포스’를 한국의 e스포츠 대표 종목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커리지매치 개최 등 프로게이머 발굴 및 육성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며 “현재 공인 프로게이머의 약 70%가 ‘스타크래프트’에 편중돼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e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공인 종목의 활성화와 프로 게이머의 발굴과 육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며 대회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스타 프로게이머는 이미 청소년의 우상이 됐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게임이 좋아 전문 게이머의 길로 들어섰다가 불안한 미래와 현재의 여건 속에 다시 학교로, 사회로, 또는 군입대라는 길을 택하는 선수도 부지기수다.

프로게임단 GO팀 조규남 감독은 “프로게이머를 원하는 지망생은 현재 대다수의 프로게이머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 생활하며 끈기있게 연습하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고, 협회는 공인종목 및 프로게이머 양산에 앞서 공인 게이머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과 육성책, 비전 등을 세워놓고 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동식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