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넥스 전성환사장
“자존심을 걸고 고수들이 활동하는 바닥으로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휴대폰 베이스밴드 칩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오마하 상륙작전, 동로마제국이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게르만족과 벌이는 최후의 격전처럼 치열한 대가를 치러야할 것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전성환 이오넥스 사장(47)이 휴대폰에서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을 하는 베이스밴드 칩 개발에 뛰어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담담하게 답했다. 창업 5년 만에 공개할만한 작품을 개발한 전 사장은 그동안 그동안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담긴 휴대폰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휴대폰 베이스밴드 반도체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기업은 흔치 않다. CDMA 휴대폰 베이스밴드 분야에서 세계 굴지의 통신, 반도체 회사들이 뛰어들었으나 수년간 수천 억 원의 자금을 소비했을 뿐 이렇다할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 분야의 원천 기술 보유 업체인 퀄컴만이 독주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CDMA 분야의 세계 강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실제로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는 사실상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전 사장은 5년간 8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통신 강국의 체면 세우기에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베이스밴드 칩이 이제 수년간의 개발과 1년이 넘는 시험기간을 거치고 이제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 아이템은 벤처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휴대폰 베이스밴드 칩은 수천 명의 연구 인력 및 수천 억 원의 화력을 갖춘 퀄컴, TI, EMP 등이 하는 분야로 단순히 실리콘을 갖고 칩만 만들면 끝나는 여느 반도체 분야와는 다릅니다.”
실제로 전 사장이 베이스밴드 칩을 개발한 것은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그는 개발된 칩으로 휴대폰이 실제 환경에서 전국 어디에서나 ‘터질’ 수 있도록 칩과 휴대폰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프로토콜 스택 개발에 성공, 명실상부하게 CDMA 베이스밴드 칩 국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전 사장은 “많은 외국 대형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이 바닥에 뛰어 들었다가, 결국은 소프트웨어의 개발 및 안정화에 실패해 포기했고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CDMA 휴대폰이라면 누구나 내야하는 원천 특허에 대한 로열티를 제외하면, 이제 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이오넥스의 칩과 소프트웨어 프로토콜 스택을 사용하면 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휴대폰을 제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창업 당시에는 한번에 대박을 내기 위해서 이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엄청난 자금이 들었고 상품화 시기가 지체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는 돈을 얼마나 버는 것이 저와 직원들의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짓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버티게 되었습니다.”
전 사장은 인터뷰를 하면서 23년 전 라스베이거스 시저스팰리스호텔 특설 링에서 세계권투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인 맨시니에게 오로지 용기만으로 도전했다 사망한 고 김득구 선수를 이오넥스와 자주 비교했다. 그동안의 과정이 그래왔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불리한 ‘라운드’가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한 지인이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없으며 선량한 사람들의 돈을 투자라는 명목으로 받아 날려버리는 한편의 ‘사기극’이 될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업이 어려울 때 마다 이 ‘사기극’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이를 떨쳐버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돌진했습니다.”
사업이 장기전으로 흐르면서 매출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수백 억 원이나 되는 실탄을 끈임 없이 조달해야 한다는 점, 투자자들에게 오로지 비전만을 제시하고 개발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전사장을 꼽았다.
이렇게 자금을 끌어온다 하더라고 경쟁사에 비해 10%도 되지 않는 개발인력과 자금력으로 제품을 상용화하고 후속 제품을 개발해야 했다는 점도 고난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전 사장에게는 자사의 칩이 들어간 휴대폰이 소비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 고비를 넘긴 듯하다. 하지만 전 사장은 “현재 상황은 선발 수색대가 최전방에서 위력 수색을 벌이는 과정과 유사하다”며 “서로 간간이 조우하며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고 본진 간의 본격적인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 이전의 개전 초기 단계”라고 설명했다.
전 사장은 육사 생도 출신답게 반도체든 사업이든 간에 전투와 전쟁의 용어로 풀이했다. 그는 “이 사업은 긴급 대책(Contingency Plan)은 없는 전투며, 목표를 향한 그동안의 과정이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 있을 큰 도전에서 의미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오넥스는 cdma2000 1x 칩에 이어 내년에는 cdma2000 1x EVDO 버전과 3.5세대 휴대폰 칩으로 불리는 HSDPA 서비스용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도 잇따라 내놓으면서 세계 시장으로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이제 경쟁사보다 한 걸음씩 앞서 나가면서 시장을 리드해 반도체 및 통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또 10년 뒤에는 매출 및 순익 규모에서 포천이 선정한 100대 기업에 들어가는 회사를 만들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꿈입니다.”
전 사장은 인터뷰 내내 일과 관련된 이야기만 늘어놨다. 개인적인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한번 임무가 프로그램된 터미네이터에게 개인적인 희망이나 취미는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일 뿐이다”라고 답했다.
◆이오넥스는 어떤 회사?
‘한국 CDMA 발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올해로 창업 5년째를 맞는 이오넥스(대표 전성환 http://www.eonex.com)는 퀄컴의 아성에 도전하는 순수 토종 기술 벤처기업이다. 지난 2000년 설립된 통신용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설계 회사로 CDMA 관련 베이스밴드 칩 등을 만든다.
이 회사가 만드는 모뎀 칩 및 프로토콜 소프트웨어는 통신이론, 프로토콜 소프트웨어, 마이크로 프로세서, 주문형반도체(ASIC), 디지털신호처리프로세서(DSP), 멀티미디어 등 정보통신 관련 모든 기술이 집대성된 고부가가치 첨단 기술 제품이다.
국내의 대다수 CDMA 및 GSM 휴대폰 개발업체들은 휴대폰 모뎀이라 불리는 이 핵심 하드웨어 부품 및 프로토콜 소프트웨어 제품 외국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전성환 사장은 “이 IT 핵심기술 제품을 국산화하며, 아울러 전세계 이동통신 시장에서 최고의 IT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세계최고의 IT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도록 하기 위해 창업했다”고 말했다.
이오넥스는 지난 2002년 9월 CDMA 서비스와 제 3세대 WCDMA 서비스 간의 핸드오버를 가능케 하고, 비동기 및 동기 방식을 동시에 호환하는 WCDMA/CDMA2000 1X 듀얼모드 모뎀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또 현재 N1000 (CDMA2000 1X 모뎀) 및 N1100 (CDMA2000 1x EV-DO 모뎀)을 지난해 12월 내놨고 국내외 휴대폰업체들과 상품화를 진행 중이다.
올해는 첫 번째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한편 내년에는 EVDO 칩을 탑재한 제품을 출시할 뿐 아니라 HSDPA 등 차기 제품을 잇따라 내놓는 등 전세계 2.5 세대, 3세대 및 3.5 세대 이동통신 표준을 모두 호환하는 모뎀 포트폴리오를 확보할 계획이다.
전 사장은 “제품 경쟁력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연구개발(R&D) 투자로 향후 전세계 CDMA, GSM 및 WCDMA 이동통신 휴대폰업체들에게 안정되고 신뢰할 만한 모뎀 솔루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