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새로운 성장엔진](9)해외 개발현장을 가다<독일>①DLR연구소

게르트 히르징어 DSR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소장이 \`로봇 팔\` 연구현장을 공개했다. -DLR연구소 제공-
게르트 히르징어 DSR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소장이 \`로봇 팔\` 연구현장을 공개했다. -DLR연구소 제공-

독일에서 생산되는 벤츠 차의 엔진은 시속 270km 이상이 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2차 대전의 전범이었던 당시 독일이 지켜야 했던 패전 조약에 따라 전쟁에 군수 물품을 조달했던 벤츠가 또다시 군사 목적의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취한 조치라고 독일에서 만난 한 교포는 말해주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지만 독일은 아직까지도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 영국 등의 규제를 받으며 패전국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을 전후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연구를 중단하면서 한동안 이 나라의 기초과학은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도 새싹이 움트듯 독일은 오랜 역사 동안 다져온 과학 강국의 저력을 발판 삼아 다시 세계 일류 과학국가로 비상하고 있었다.

 본지 취재팀은 뮌헨,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학과 정부출연연,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 현장을 찾았다.

 ◇DLR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소, ‘날아오는 공을 한 손으로 잡는 로봇’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불과 수 km 떨어진 외곽 지역에 위치한 DLR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소. 1960년 사이버네틱스연구소로 시작한 이곳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시설과 기술을 갖춘 로봇연구기관이다. 주요 연구 목표는 우주 로봇. 특히 이 연구소가 사람의 팔 운동을 그대로 모방해 개발한 ‘로봇 팔’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얼마 전 우리나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도 DLR를 방문해 직접 확인하고 감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재팀은 게르트 히르징어 DLR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소장을 만나 ‘로봇 팔’ 연구 현장을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잠시 상의를 하던 히르징어 소장은 마침내 우리를 1층에 있는 한 연구실로 안내했다.

 연구실 안쪽에는 인간의 팔 모양을 한 기계, 정확히 말하면 로봇이 사람 키 높이 정도 되는 기둥 모양의 몸통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것이 DLR가 자랑하는 바로 그 ‘로봇 팔’이었다.

 연구원이 컴퓨터에 연결된 ‘로봇 팔’에 동력을 주어 작동시키자 팔 끝에 있는 기다란 손가락 네 개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손가락을 쭉 펴 ‘V’ 자를 그리기도 하고 팔을 좌우로 흔들거나 손목을 360도로 회전시키는 품새가 여간 재빠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기존 로봇의 느리고 둔탁한 몸놀림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히르칭어 소장이 10m 가량 거리를 두고 선 채 노란 테니스공을 ‘로봇 팔’을 향해 던지자 ‘로봇 팔’이 위로 뻗으며 순식간에 공을 정면으로 낚아챘다. 마치 야구 경기의 포수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날아오는 공의 방향뿐 아니라 속도를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감지해 내고 손가락으로 공을 움켜 잡는 기술은 사람의 움직임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DLR연구소 취재에 동행한 이혁희 KIST-유럽연구소 박사는 “미 조지아텍이나 일본 도쿄대에서 유사한 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었지만 손가락 기술이 없어 야구 글러브를 끼고 있는 형태와 손가락 3개만 있는 로봇에 그쳤으며 사람처럼 손바닥 근육과 손가락을 모두 이용해 날고 있는 공을 공중에서 ‘움켜 잡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이 연구소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로봇 팔’에는 손가락과 손바닥에만 무려 13개의 소형 구동모터가 내장돼 있어 손가락 하나 하나가 제각기 독립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거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등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팔의 관절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고출력 경량모터가 달려 있다. 이 모터는 팔의 움직임의 범위를 최대한 넓힐 수 있도록 설계돼 팔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게 한다. 사람의 팔보다 실용성을 한층 높인 이 기술은 이미 일부 산업 현장에 적용돼 있다.

 DLR연구소는 ‘로봇 팔’의 크기를 실제 사람 팔만큼 축소하는 대신 한 팔로 들어올릴 수 있는 물건의 최대 중량을 현재의 13kg 수준에서 20kg까지 높인 차세대 모델을 개발해 내년 뮌헨에서 열리는 로봇 국제전시회 ‘오토매티카(Automatica)’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KAIST가 개발한 휴보(HUBO)나 KIST의 마루, 아라 등 인간의 직립 보행을 모방한 이족 로봇 연구에 주력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DLR연구소는 이 ‘로봇 팔’처럼 사람의 팔과 손 동작을 구현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DLR가 전망하는 유망 로봇산업은 생산 현장에서 사람과 협업하는 산업용 보조 로봇 분야와 노인을 돌보거나 가사를 돕는 퍼스널 서비스 로봇 분야.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로봇의 ‘손’을 활용하자는 이 개념이 연구 방향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DLR가 보유한 또 다른 로봇 기술은 우주 항공분야다. 1993년 콜롬비아 우주왕복선에 세계 최초로 탑승한 로봇을 개발했던 것을 시작으로 1997년에는 일본과 합작으로 유영로봇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말에는 우주선 내부뿐 아니라 우주기지 밖에서 로봇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우주선을 수리하고 지구 사진을 찍어 지상으로 보내는 임무를 완수하기도 했다.

 히르칭어 소장은 “미국 NASA는 우주선을 쏘아올리지만 정작 그에 필요한 모든 기술은 우리가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최근에는 지역 로봇개발업체인 쿠카(KUKA)와 공동으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Education과 Entertainment의 합성어) 로봇 프로젝트를 추진, 베를린에 있는 소니 센터에서 화성을 날아다니는 로봇을 전시해 청소년 관람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세계 최고봉에 우뚝 선 ‘로봇 팔’에 이어 마침내 ‘머리(인공지능)’와 ‘가슴(감성)’에까지 도전장을 내민 독일 DLR연구소. 그들과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결전을 벌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인터뷰-게르트 히르징어 DLR 연구소장

“20년 후에는 누구나 휴대형 로봇을 갖게 될 것.”

 DLR 로봇 메카트로닉스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히르징어 소장은 1975년 로봇 연구를 시작해 30년 넘게 로봇이라는 한 우물만을 파온 유럽 로봇 연구의 산 증인이다.

 로봇의 ‘마이스터’(Meister·거장)라고 할 수 있는 히르징어 소장은 ‘초경량, 저전력의 서비스 로봇’이 앞으로 세계 로봇 시장의 대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히르징어 소장은 “20년 전 누구도 오늘날 우리가 퍼스널 컴퓨터를 휴대하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었다”며 마찬가지로 “20년 후에는 누구나 휴대형 로봇을 갖고 다니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력 소모가 적고 가벼운 로봇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히르징어 소장은 특히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 인구가 가장 유력한 수요층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세계는 지금 ‘고령화’라는 심각한 문제에 공통으로 직면해 있습니다. 유럽도 일본에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상황입니다.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정년 이후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내고 싶은 노인들의 수요 때문에 24시간 노인들을 돌볼 서비스 로봇은 분명히 전망이 있는 시장이 될 것입니다.”

 ‘로봇 거장’이 바라보는 한국 로봇기술의 경쟁력은 얼마나 될까.

 히르징어 소장은 “한국에서 로봇 기술은 역사가 길지 않지만 적당히 좋은 기술이 있고 기술을 보는 안목과 접근 방식 등은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히르징어 소장이 무한한 상상력과 기술의 총화로 만들어지는 로봇의 특성상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열린 마음’. 그는 “한국인들에게는 로봇에 대한 ‘열린 마음’이 존재하는 것 같아 좋은 기술과 시장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DLR연구소란

 DLR는 독일의 항공·우주 분야 연구와 우주국을 총괄하고 있는 연구기관이다. 헬름홀츠재단 소속으로 산업기술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기초·원천 기술 연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뮌헨 오버파펜호펜을 비롯해 본, 베를린, 쾰른 폴츠 등 독일 전역에 31개 연구센터가 있다. 그중 하나인 뮌헨 오버파펜호펜 DLR 로봇메카트로닉스연구소에서는 로봇 분야에 연구를 특화하고 있다.

 뮌헨 오버파펜호펜 DLR 로봇메카트로닉스연구소에 근무하는 석·박사급 연구원은 총 150명. 이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명이 로봇 연구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로봇 연구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1년 예산은 1400만 유로로 절반은 상위 연구회인 헬름홀츠재단으로부터 받은 기초 예산에서, 나머지 반은 기업이나 바이에른 주 정부, EU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해 충당하고 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