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카메라라고 얘기하면 보통 디지털 카메라를 떠올릴 정도로 디지털 카메라가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이렇게 일상에 자리잡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발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지난 75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스티븐 새쓴이 최근 모 디지털 카메라 커뮤니티 사이트 마니아들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디지털이라는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을 시절인 75년 당시의 디지털 카메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고 또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와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었을까.
시티븐 새쓴은 코닥에 입사한 후 74년 프로젝트에 참여 이듬해인 75년에 최초의 디지털 스틸 카메라의 설계 및 제조를 담당했고 재생 시스템을 만들어낸 말그대로 살아 숨쉬는 역사다.
# 첫 디카 사진 한장 저장에 22초 걸려
“74년말 상사가 와서 ‘빛을 이용해 촬영할 수 있는 새로운 디바이스가 있으니 연구를 한번 해 보라’고 하더군요.”
73년 코닥에 입사한 새쓴은 R&D 랩에서 일하던 중 상사의 지시로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 매달리게 됐다. 당시 연구실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그의 연구 프로젝트 역시 작은 규모로 시작됐고 휴대가 가능한 제품 쪽으로 초점을 맞추게 됐다.
결국 1년후 그는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원형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개발한 제품의 사양을 보면 페어차일드의 고체촬상소자(CCD)를 사용했으며, 100X100의 해상도(0.01메가 픽셀)를 가지고 있었다. CCD는 4비트의 어레이로 구성됐으며, 내장된 메모리에 이미지를 저장했다. 당시 메모리의 크기는 4096비트에 불과했으며 한 장의 이미지를 저장하는데 22초 가량 걸렸다.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와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 오디오 테이프에 사진 저장
무게도 3.9kg에 달했으며, 구동 전원으로 16개나 되는 AA 배터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촬영한 사진을 저장하기 위한 미디어는 지금처럼 메모리 카드가 아닌 요즘도 일부 사용되고 있는 일반 오디오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했다. 하나의 카세트 테이프에는 약 80개의 이미지 저장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카메라에 사용하던 렌즈는 당시 이스트만코닥의 무비 카메라에 사용됐던 것을 활용했다.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라는 용어도 정립돼 있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그때는 ‘전자스틸카메라(Electronic Still Camera)’ 혹은 ‘무필름카메라(Filmless Camera)’라고 부르기도 했다.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원형은 폴더 타입으로 뚜껑을 열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덮개를 연 상태에서도 카메라가 작동될 수 있었고 카메라 위쪽에 CCD가 위치했으며, 디지털 회로는 양쪽에 각각 있었다. 하단에 3개의 보드가 있었고 여기에 디지털 메모리가 저장돼 있었다.
# 상품성엔 대부분 고개 갸우뚱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PC보다 디지털 카메라가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PC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는 TV를 활용해야 했으며, 이를 위한 장치도 따로 만들어야 했다.
75년 개발된 디지털 카메라는 같은해 1월 첫 촬영이 이뤄졌으며 76년 한해 동안 코닥 사내에서 여러 차례의 시연이 이뤄졌고 77년 기술 보고서가 발행됐고 같은 해 5월에 특허가 출원돼 78년 1월에 특허를 받았다.
“디지털 카메라가 현실화되려면 15~20년은 지나야할 것으로 보았어요.”
당시 디지털 카메라가 개발되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였고 이는 코닥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들의 디지털 카메라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일부에서는 워낙 혁신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의 상용화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다.
디지털 카메라라는 기기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단순히 TV로 보는 것 뿐인데 누가 이런 제품을 구입하려 할까. 당시 기술 상황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 디카 붐 가능했던 것은 PC 덕
디지털 기술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PC, 인터넷, 데스크톱 프린팅 등이 당시에는 전무했다. 화상 압축에 대한 개념도 그다지 호응이 없었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사진에서는 사진에 대한 정보를 버리거나 제거하려는 개념조차 없었다. 따라서 디지털 카메라의 발명과 함께 많은 과제가 해결돼야 했다.
새쓴은 여러 가지 당면한 주요 과제를 꼽았다. 최초의 원형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약 100배 정도 이미지 해상도를 향상시켜야 하며 컬러 이미지 센서도 더 커야 되고 디지털 이미지 파일도 카세트 테이프가 아닌 별도의 전원 공급이 없는 미디어로 저장해야 한다는 등의 것이었다.
새쓴은 30년 전에는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디지털 카메라의 폭발적 성장은 PC가 일반화되면서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인터넷으로 지역과 시간을 초월해 실시간 연결이 되다 보니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나름대로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란다.
# 지난해 디카가 일반 카메라 앞질러
“75년 처음으로 디지털 영상을 촬영할 당시 사진 업계가 이렇게까지 변화할줄은 몰랐습니다.”
새쓴씨는 3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저장 미디어로 썼던 카세트 테이프와 비슷한 크기의 디지털 카메라가 시중에 쏟아져 나오고 있고 무선으로 사진 전송이 가능한 네트워크가 결합된 디지털 카메라가 일부 선보이는 등 기술이 발전한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한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7400만대의 디지털 카메라가 판매돼 사상 최초로 필름 카메라의 판매량을 앞질렀다. 또 올해에는 400억장의 디지털 사진이 촬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영상이 전문가의 영역에서 일반 가정과 일상의 영역으로 급속히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란 렌슬레어 미 렌셀러폴리테크닉대(RPI)에서 전기 공학으로 72년과 73년에 각각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73년 코닥에 입사해 70년대에 KAD연구실에 개인 연구자로써 재직했으며 여러 건의 초기 디지털 영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참여 프로젝트 중에는 75년 최초의 디지털 스틸 카메라의 설계 및 건조 그리고 재생 시스템이 있었다.
새쓴은 여전히 코닥에 재직하고 있으며 열전사 프린터 독과 소매점용 사진 키오스크의 상용화, 망판 교정쇄 및 각종 코닥의 전문가용 고급 기술 개발에도 참여해 왔다.
그는 30년에 걸친 엔지니어링과 제품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IP보호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새쓴은 두자녀의 아버지로 뉴욕 힐튼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시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준문 피씨비 콘텐츠팀장 jun@pcb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