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와 미녀’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리메이크는 아니다. 그러나 야수가 나오는 것은 맞다. 미녀도 나온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류승범 신민아 주연의 ‘야수와 미녀’는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는 시각장애인 미녀 피아니스트 장해주(신민아 분)에 반해, 항상 그녀의 다정한 벗이 되어주었던 야수 구동건(류승범 분)과의 사랑 이야기이다.
방송국에서 애니메이션 더빙 성우로 일하는 구동건은 자신의 외모를 장동건 닮았다고 뻥치다가, 장해주가 안구 기증을 받아 시력을 회복하게 되자 곤란에 처하는 로맨틱 코미디다.
영화는 경쾌하다. 우선 미녀 장해주가 시각장애인이었다가 안구 기증을 받는 부분이 맨 앞에 전면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장해주가 우연히 자신 앞에 멈춘 구동건의 차를 택시로 오인하고 타게 되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극도로 압축되어 타이틀 뜨기 전 오프닝 크레딧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곧바로 눈을 뜬 장해주가 구동건을 기다리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영화의 핵심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구동건과, 그의 사정을 모르고 오매불망 구동건을 기다리는 장해주의 엇갈림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웃음이다. 주변 캐릭터는 최소화되어 있다. 장해주와 구동건 사이에 구동건의 고교 동창인 꽃미남 탁준하(김강우 분)를 등장시켜서 삼각관계를 유도하며 긴장감을 높인다거나, 검사인 김강우와 구동건 사이에 조폭인 최도식(안길강 분)을 등장시켜 웃음을 유발하는 재료로 쓰고 있는 정도다. 영화는 철저하게 구동건과 장해주 두 사람에 집중되어 있다.
구동건은 자신의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형외과에 찾아가 수술 상담을 한다. 성형외과 의사(윤종신 분)는 견적이 안나온다는, 다 고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과장하면서 눈썹 주위의 흉터라도 수술하라고 권한다. 구동건은 수술 부위가 회복될 때까지 장해주 앞에 나타날 수 없다. 그녀에게는 하와이로 출장간다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구동건의 친구 정석(안상태 분)이라고 속이며 그녀 주위를 맴돈다.
구동건이 공식적으로 부재하는 사이에, 검사인 꽃미남 탁준하는 장해주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야수와 미녀’는 구동건과 장해주 사이의 이야기지만, 두 사람 관계에서 진짜 무슨 일이 발생하는 것은 거의 없다. 내러티브 전개는 두 사람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그들 사이에 끼인 검사 탁준하, 조폭 최도식, 성우 동료 정석이 상황의 언밸런스로 웃음을 유발한다.
‘야수와 미녀’는 장르 영화로서의 로맨틱 코미디가 갖고 있는 장점이 잘 살아나 있다. 특히 장해주 역의 신민아의 연기가 좋다. 그녀의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연기는 장해주라는 어려운 캐릭터를 실감나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가볍고 일회적이지만 극장 안에서의 즐거움을 줄 정도는 된다. ‘주먹이 운다’의 상환 역으로 연기에 물이 오른 류승범은 류승범 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꾸미지 않고 솔직하며 신선한 그의 매력은 로맨틱 코미디의 과장됨까지도 넉넉하게 수용하게 만든다.
그러나 역시 그뿐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일회적인 웃음이었으며 이 영화가 목적하는 것도 애초에 그것이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단순한 휘발성 즐거움 이상의, 우리들의 영혼을 붙들며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웃음을 만들 수는 없을까?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