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게임 vs 영화

‘350억 vs 1500억’ 지금까지 결성된 게임과 영화 전문 펀드의 총액을 비교한 수치다.

현재 국내 게임 전문 펀드는 한솔창투와 CJ창투가 결성한 3개 조합, 총 350억원이 전부다. 그나마 2000년에 결성된 한솔 1호조합은 지난 5월에 조기 해산, 실질적으로는 2개 조합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무려 15개 영상전문펀드에 총 결성 규모도 1600억원에 육박한다.

현재 추진 상황을 보면 더욱 비교된다. SK텔레콤이 500억원 이상을 투입해 IMM창투 등 일부 창투사들과 초대형 영상 펀드 2개를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상다수의 벤처캐피털들이 영화 중심의 영상펀드 조성을 준비중이다.

올해안으로 20개 펀드에 2000억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반면 현재 게임펀드 결성을 추진중인 곳은 IMM창투, CJ창투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미열린기술투자의 경우 최근 네오위즈와 고작 50억원 규모의 게임인큐베이팅펀드를 만들었다.

게임과 영화 산업 규모와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이같은 차이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외형면에서 게임산업은 영화산업의 5배를 크게 웃돈다. 영화진흥위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 산업 규모는 7934여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게임산업 규모는 무려 이보다 5배 이상 큰 4조 3156억원(게임산업개발원 자료)을 형성했다. 올해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을 보면 더욱 실감 난다. 게임산업은 2000년대 이후 연평균 35%의 초고속 성장율을 나타내고 있지만, 영화산업의 성장률은 10% 안팍에 불과하다.

산업 규모 대비 투자 재원의 차이는 산업의 활성화에 여과없이 반영되고 있다. 게임산업은 5조원에 육박하는 산업 규모에 비해 전문 펀드 결성이 위축되다 보니, 자본의 양극화와 이에따른 중소 관련 개발사의 자금난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 수 많은 프로젝트들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되고 있다. 반면 영화는 각종 영상펀드에 의한 프로젝트 투자 시스템이 원활히 가동되면서 신규 투자나 제작이 활발하다.

게임펀드에 비해 영화펀드의 결성이 이처럼 상대적으로 활발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무엇보다 영화 펀드는 투자에서 회수까지의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으로 짧은 반면, 게임펀드는 보통 2∼3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벤처캐피털 등 국내 투자기관들이 중장기 투자보다는 단기 투자를 선호한다는 의미. 중견 창투사의 한 관계자는 “펀드의 존속기간이 보통 5년이어서 투자-회수-재투자 등 회전율이 중요하다”며 이런점이 수익율에 상관없이 게임투자 보다는 영화를 선호하는 구조적 이유라고 강조했다.

개발 시스템의 투명성 차이라는 견해도 많다. 영화의 경우 기획-시나리오-감독·캐스팅-제작 등 프로젝트가 비교적 정확히 정의돼 있고 제작 스케쥴도 당초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게임은 개발 과정에서 수정 및 보완이 부지기수로 이루어져 투자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 다시말해 영화의 경우 비교적 단기간의 투자 및 회수가 가능해 성공이든 실패든 적절한 재투자를 진행할 수 있어 자본의 효율성은 높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벤처펀드의 기본정신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고 게임 비즈니스의 수익률이 대단히 높다는 점에서 게임투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내려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게임산업은 어느 업종보다 부가가치가 높다.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의 경우 국제 경쟁력이 뛰어나 해외 진출로 이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결국 전문 펀드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게임투자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벤처캐피털업계 관계자들은 “영화의 경우 아무리 대박이 나도 투자기관의 수익율은 200∼300%에 불과하지만, 게임은 보통 대박이 나면 수익율이 수 천%에 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매력적인 투자 업종”이라며 “전문 펀드 활성화를 통해 자본시장의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일이 게임산업 육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산업 현황>

구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E)

총관객(만명) 10,513 11,947 13,200 14,048

상영매출(억원) 6,327 7,171 7,934 8,528

방화관객(만명) 5,082 6,391 7,154 7,727

방화매출(억원) 3,068 3,822 4,299 4,689

극장(개) 309 280 357 343

스크린(개) 977 1,132 1,567 1,676현실적으로 게임펀드의 주 재원이었던 문화산업진흥기금이 모태펀드로 넘어감에따라 게임 전문펀드 활성화를 위한 대안은 우선 모태펀드쪽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중기청이 지난 7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모태펀드는 현재 풍부한 재원을 바탕으로 불특정 다수의 창투사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벤처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중기청 모태펀드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올해만도 약 50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에따라 이미 1차로 10여개 펀드 위탁 운용사를 선정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펀드 운용사를 선정해 벤처펀드를 계속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는 펀드 운용사 모집 경쟁률이 치열하다보니, 게임펀드와 같은 전문펀드 조성을 추진중인 창투사가 낙점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은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펀드 출자를 견인중인 연기금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가 운용하는 한국IT펀드(KIF) 등도 마찬가지다. 수요(창투사)는 많은데, 공급(출자금)은 한정돼 있다보니, 경쟁입찰식으로 운용사를 선정할 수 밖에 없으며, 자연히 게임펀드와 같은 중소형 전문 펀드의 설자리가 별로 없다.

그러나, 모태펀드의 출범 목적이 보다 효율적인 투자관리를 통한 벤처지원에 있는 만큼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전문 펀드 결성에 보다 많은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게임산업개발원의 관계자는 “게임펀드는 모태펀드 내에, 또는 어떠한 형태로라도 반드시 지속성을 가지고 추가 조성돼야 한다”며 “모태펀드의 일부라도 게임펀드용으로 설정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게임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