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도 진화한다’
생물의 진화론을 확립한 찰스 로버트 다윈의 나라 영국.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할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 발전으로 자유경쟁 체제가 자연스럽게 정착돼 있었다. 그래서 진화론은 다윈이 자유경쟁에 의한 번영의 이념을 생물학에 접목한 것이라는 일부의 견해도 있다.
오늘날 다윈의 후손들은 진화론을 로봇에 응용하고 있었다.
취재팀이 방문한 영국 서식스대학의 CCNR(Centre for Computational Neuroscience and Robotics) 연구센터는 신경세포(뉴런)의 화학물질 전달시스템을 로봇을 접목해 이른바 ‘진화하는 로봇’을 연구하는 곳이다.
1993년 신경과학과 로봇공학 분야 연구자가 모여 학제 간 융합 연구로 출발한 이 센터는 뇌와 신경의 전기적 신호 전달에 의해 사람이 생각하거나 의사소통하는 원리를 컴퓨터에 응용하거나 그 반대로 컴퓨터 과학의 방법론을 생명과학에 도입하는 식으로 사람과 컴퓨터(로봇)의 차이, 즉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연구의 목표를 두고 있다.
신경세포의 커뮤니케이션을 모방해 로봇에 적용하는 연구, 뇌의 화학반응 연구, 신경회로와 컴퓨팅 기술의 융합 등이 센터에서 하고 있는 주요 연구다.
이를테면 신경화학물질이 뇌에서 확산하는 과정을 컴퓨터로 설계해 뇌 속에서 벌어지는 화학반응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CCNR의 마이클 오세이아 교수는 취재진에게 ‘□’형태와 ‘△’형태를 구분하는 능력을 주입한 컴퓨터 가상 로봇을 보여주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등장한 두 대의 로봇 중 연구팀의 지시대로 더욱 더 정확하게 형태를 구별해 찾아가는 로봇을 남겨두고 다른 하나는 ‘도태’시키는 방법을 수천, 수만번 반복하다 보면 처음의 로봇보다 정확한 형태를 구별하는 성공률이 높아진 로봇이 생기게 된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로봇 연구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와 병행해 실리콘칩에 뉴런의 역할을 하는 ‘콘택트포인트(Contact Point)’를 심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뉴런과 같은 10㎛ 크기의 콘택트포인트 안에는 인체의 신경화학물질을 모방한 화학성분이 들어 있다. 신경세포 반도체, 신경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초기 연구라고 한다.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실리콘반도체보다 획기적으로 용량이 개선된 고집적 차세대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 연구가 성공하면 머지않아 로봇끼리 대화를 하고 사람처럼 생각을 하는 로봇이 이곳에서 개발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CCNR에서 관심을 갖는 또 다른 분야는 생물체의 운동신경을 로봇에 적용하는 연구다. 연구진은 개미나 거미 등 곤충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를 로봇에 응용한 곤충 로봇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CCNR에서는 사람보다 뛰어난 방향 감각을 자랑하는 개미와 벌에 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개미를 직접 보고 다루는 전통적인 방법의 행동양식 관찰 실험과 컴퓨터 모델과 로봇을 사용한 연구가 병행되고 있었다.
CCNR는 취재진에게 한 연구실을 공개했다. 그곳에서는 24시간 개미의 생태를 관찰하고 컴퓨터로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커다란 수조 안에 인공 개미집을 조성하고 수만 마리의 개미를 사육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로봇 연구실과는 거리가 먼, 흡사 생물연구 실험실을 방불케하는 광경이었다. 이 연구실에서 얻어진 개미 생태 연구 자료는 컴퓨터로 DB화돼 개미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한 로봇 연구에 쓰이고 있다.
오세이아 교수는 “곤충이 방향을 탐색하는 전략을 이해함으로써 로봇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영감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마찬가지 연구방법으로 개발중인 거미로봇 ‘옥토포드(Octopode)’는 8개의 다리마다 2개의 모터가 달려 있어 위아래와 앞뒤로 자유롭게 움직인다. 거미의 운동신경뿐 아니라 먹이를 찾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형지물을 인지하는 능력, 길 학습능력 등을 탐구해 로봇에 접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모든 곤충 로봇 연구를 지휘하는 사람은 서식스 곤충 내비게이션 그룹(Sussex Insect Navigation Group)을 이끌고 있는 톰 콜레 교수로 30년 간 곤충의 시각과 내비게이션 연구에만 몰두해 온 생명과학의 대가다.
생명과학자인 콜레 교수와 정보공학을 연구하는 필 허스밴즈 CCNR 소장은 얼마 전 EPSRC라는 단체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래피드 인섹트 라이크 비주얼 러닝 알고리듬(Rapid Insect-like Visual Learning Algorithms)’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CCNR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동물행동연구와 모델링 기술, 자연 현상의 통계 분석 연구를 결합하게 될 것”이라고 오세이아 교수는 말했다. 이 연구에서는 커다란 3D 갠트리로봇(gantry robot:로켓발사정비탑에서 따온 용어)을 만들어 동물의 행동궤도를 그대로 본뜨고 동물들이 방향을 탐색하거나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시각 정보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거미나 개미로 시작하는 연구는 고등 동물로 이어져 생물과 흡사하거나 그 이상의 기능을 갖는 인공 생물(로봇)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조물주의 만물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을 주창했던 다윈에 이어 그 후세들은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신의 고유 영역인 생명 창조에 도전하고 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인터뷰-마이클 오세이아 CCNR 소장
‘인간의 뇌를 모방한 로봇의 지능’, ‘곤충의 운동감각을 재현한 팔다리 관절’. 마이클 오세이아 소장(52)의 발상은 아직 공상과학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먼 미래의 얘기같았다.
오세이아 소장은 “우리는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먼 미래에는 실현 가능한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다”는 설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로봇을 이용해 인간 뇌의 신비를 푸는 동시에 각 생물체의 뛰어난 기능들을 과학적으로 재창조해내는 것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사람을 닮은 인공물을 만들겠다는 과학적 동기가 휴머노이드로봇의 출발이고 보면 그가 추구하는 ‘바이오 기술과 로봇의 만남’은 필연적일 것도 같다.
지금 CCNR이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알고리듬에 따라 스스로 정답을 판단하는 로봇.
‘스스로 생각하는 로봇이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오세이아 소장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로봇을 써야할 경우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화성을 탐사하는 로봇을 예로 들었다. “화성에서는 인간이 실시간으로 로봇의 동작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머지않아 물고기를 닮은 해저 로봇이 심해를 정찰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CCNR이란
서섹스대학의 CCNR(Centre for Computational Neuroscience and Robotics)은 1993년에 설립된 뇌신경을 로봇에 응용하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다. 신경세포의 화학물질 전달시스템을 로봇에 응용하고 있으며 연구진은 인공지능과 신경과학 분야를 전공한 20명의 교수와 22명의 대학원생으로 구성돼 있다.
로봇 연구 가운데도 군사용이나 우주개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탐사(Navigation)와 정찰(Inspection) 기능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 영국 엔지니어링물리과학연구위원회(EPSRC), AHRC 등 정부 및 국제 기구로부터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