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오락 프로그램 코너 ‘세대공감 올드앤뉴(OLD&NEW)’에 나올 법한 문제 하나.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막귀’의 뜻은? 정답은 진공관 오디오 같이 ‘명기’에서 나는 소리와 지하철에서 파는 라디오 소리를 구별 못할 정도로 음질 차이에 둔감함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음악 애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은 ‘막귀’다. 귀도 훈련을 받아야 미세한 소리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고 드럼이 제대로 들리는지, 피아노 소리가 살아 있는지는 좋은 음악을 자주 접해야 알 수 있다. 요즘 MP3플레이어는 거의 동일한 오디오 칩세트에 음장 효과도 업체마다 같은 기술을 적용해 소리의 차이를 느끼기란 그리 쉽지 않다.
코원시스템(대표 박남규 http://www.cowon.net)은 이런 ‘막귀’들도 ‘좋은 소리를 만드는 회사’로 인정하는 곳이다. 1995년 창업부터 10년째 디지털 오디오에 집중했기 때문에 남다른 소리를 가진 MP3플레이어를 만드는 ‘명가’란 평을 듣고 있다.
코원은 박남규 사장과 미국 법인 대표이자 대학 동창인 정재욱 사장이 2000만원으로 창업, 올해 매출 1000억원 돌파를 기대할 만큼 꾸준히 성장했다. 10년간 적자 한번 내지 않을 만큼 경영도 탄탄하다.
1995년 포맷이 다른 음악과 동영상 등 각종 멀티미디어 파일을 통합 재생하는 소프트웨어 ‘제트오디오’를 해외에서 히트시켰다. 이때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96년 MP3플레이어 시장에 진출, 본격적인 휴대 단말기 제조업에 뛰어들며 오늘에 이르렀다.
창업 당시 야심차게 만든 ‘제트오디오’가 불법 복제로 인해 좌절을 겪고 벤처 기업이 홀연 단신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박남규 사장은 순탄했다고 강조한다.
박 사장은 “시련이 없었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할 만한 큰 우여곡절은 없었다”고 말했다.
코원의 성장 비결은 소리를 잘 만드는 기술력에 있지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콘텐츠의 균형 잡힌 사업 구도다. ‘제트오디오’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디지털 사운드 기술 위에 시장이 요구하는 MP3플레이어를 내놓고 또 기기에서 사용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며 2001년 84억원, 2002년 168억원, 2003년 264억원, 2004년 785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박 사장은 “디지털 디바이스와 콘텐츠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회사를 지향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디지털 오디오 분야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코원은 요즘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듣는 것’에 주력했다면 이제 ‘보는 것’으로의 영역 확대다. 기기의 변화로는 MP3플레이어에서 휴대형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단말기, 네트워크(와이브로) PMP 등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박 사장은 “우리의 축적된 기술로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를 만들 수는 있지만 하이테크 기술을 적용했다고 반드시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소비자가 요구하는 컨버전스 디바이스들을 선보이며 코원만의 색깔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영 전략
코원시스템은 올해 매출 1550억원, 국내 시장 점유율 20% 달성으로 국내 MP3플레이어 업계 2위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인 GfK코리아에 따르면 코원은 상반기 매출액 기준 35%를 점유한 레인콤, 14%의 삼성전자에 이어 13%의 점유율로 근소한 차이로 3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특히 국내와 함께 해외 시장에서의 입지를 탄탄히 하기 위해 상반기 일본에 지사를 세웠고 중국에도 생산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할 사무소를 열었다. 유럽 시장도 본격 공략하기 위해 연말 지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을 비롯, 미국·유럽·일본·중국을 주요 거점으로 수출 주력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전체 MP3플레이어 매출 중 내수가 311억원, 수출이 299억원으로 내수 비중이 더 높았지만 올 상반기는 수출이 217억원으로 내수(182억원)를 역전했다. 판매 대수로는 지난해 40만대에 이어 올해는 10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사명도 영문 사명과 일치시켜 ‘거원시스템’에서 ‘코원시스템’으로 변경했다. 한글과 영문 발음이 전세계 어디서나 동일해 해외 시장에서 구축한 ‘코원(COWON)’의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글로벌 마케팅 대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아이오디오(iAUDIO)’는 MP3플레이어 브랜드로 계속 사용하는 한편 휴대형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를 비롯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플레이어 등 차세대 제품군에는 ‘코원(COWON)’ 브랜드를 적용, 디지털 멀티미디어 분야의 대표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할 방침이다.
SK텔레콤을 주 대상으로 사업하고 있는 무선인터넷 콘텐츠 사업 부문은 올 상반기까지 매출 53억원을 달성하고 하반기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 해외 매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끄는 사람들
코원시스템은 미국 애플과 HP처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하는 두 명의 대학 동기생이 뭉치면서 출발했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석사 출신 박남규 사장은 1990년부터 1995년 3월까지 LG전자 영상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모아둔 2000만원으로 1995년 4월 같은 과 동기생인 정재욱 현 코원시스템 미국 법인 대표와 뜻을 함께해 집에서 사용하던 PC와 기타 장비를 들고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했다.
정 사장은 대학 시절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경진대회에서 프로그래밍 실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초청받는 등 탁월한 능력으로 1997년 7월 지금의 코원을 있게 한 소프트웨어 ‘제트오디오’를 개발한 주역이다.
제트오디오는 발표된 지 3개월 만에 ZDnet, CNET, TUCOWS 등 세계적인 IT 전문 평가단으로부터 최고 등급을 획득했고 이듬해 최고의 소프트웨어로 선정되어 대통령상 수상과 2001년 산업자원부로부터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 인증을 받기도 했다.
정 사장은 코원의 북미 시장 공략을 총괄 지휘하고 있지만 현재도 제트오디오뿐 아니라 코원 제품에 사용되는 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등 프로그래머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코원의 품질과 미래 제품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이명용 연구소장은 1996년부터 합류, 핵심 브레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모두 관장하고 있으며 직원들과 늘 식사를 같이하며 아이디어도 얻고 전 직원의 인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명용 연구소장도 제트오디오 핵심 멤버로 MP3플레이어나 PMP의 기획, 설계, 테스트 등 연구 개발을 총지휘한다.
무선인터넷 콘텐츠 사업 전반을 주도하고 있는 김정균 상무는 해외 마케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지금은 신사업을 맡고 있다. 일본어가 능통해 NEC와 후지쯔에 제트오디오를 연간 400만 카피 이상 공급했고 회사 수익성 향상에 중요한 무선 인터넷 콘텐츠 사업을 이끌며 3차원 채팅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개발하고 있다.
코원시스템의 핵심 멤버들은 서울대 공대 84학번부터 86학번까지 선후배란 점이 특색이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