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은 그동안 연재해온 ‘로봇, 새로운 성장엔진’ 시리즈를 마감하며 ‘한국로봇산업발전을 위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3개 부처의 로봇 정책 담당자와 일선 로봇연구자들이 참석해 로봇산업의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토론했다.
△주최: 전자신문
△후원: 한국과학문화재단
△장소: 소공동 롯데호텔
△참석자: 나경환 과학기술부 기계소재심의관(사회), 이호길 성장동력 지능형로봇사업단장, 오상록 정보통신부 로봇PM, 오준호 KAIST교수(휴보 개발자), 조영조 ETRI 지능형로봇연구단장
△나경환 심의관= 우리나라 로봇 분야를 대표하는 분들을 모시고 ‘한국 로봇산업 발전을 위한 좌담회’를 갖게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로봇은 2003년부터 매년 예산이 2배씩 증가하고 과학기술인, 기업, 정부의 관심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나 로봇을 담당하는 산자부, 정통부가 부처 특성에 맞는 각자의 역할을 정립하는 방법 등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로봇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면 정부가 어떤 지원을 펼쳐야 할 지 자유롭게 말씀해주십시요.
△이호길 단장= 우선 정부가 초기 수요를 창출해야 합니다. 우리 로봇 시장은 대단히 작아 대기업은 관망하고 중소기업은 제품판매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안내로봇이나 복지로봇 등 공익성있는 분야에서 공공구매를 촉진해야 합니다. 또 시범사업을 실시해 제품 성능을 높이고 수요를 창출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정부가 산업기반을 조성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국내 로봇 관련 중소기업은 100여 개 업체인데 대다수가 자본금 100억원을 넘지 않아 영세합니다. 이런 작은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려면 인력, 기술,자본 등의 기반환경이 지원돼야 합니다. 정부가 간접적이나마 전국에 분산된 기술, 장비 등을 네트워킹해 공동으로 이용하게 하고 시제품만드는 비용이나 제품성능을 시험하는 장비, 장소를 제공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리스, 융자, 보험을 확충해 투자자들을 유도하며 로봇을 쉽게 팔 수 있도록 법제도도 고쳐야 합니다. 한 예로 아파트에 당장 로봇을 도입하려해도 문턱, 창문, 방문 등의 높이 기준이 달라 일일히 맞추기가 힘듭니다.
△오준호 교수= 연구자로서 저는 정부가 적정한 규모로 연구비를 증액하고 꾸준히 지켜봄으로써 장기적으로 로봇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휴보를 개발하고 나서 온 국민의 관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휴보 다음 기술은 언제 나오느냐고 물으시는데 마치 결과물이 안나오면 정부 예산이 짤린다는 의미가 암시돼 있는 듯 해서 연구자들은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오상록PM= 중소기업을 보니 로봇 제품 소비자가격에서 유통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40∼50%에 달해 배(제조단가)보다 배꼽(유통비)이 큽니다. 또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면서 품질을 확보하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역할을 나눠 맡아야 합니다. 중소기업은 부품, 모듈 등 단위 연구를 하고 대기업은 시스템 통합 , 패키징 등에 주력해 공용 부품화, 공용 모듈화를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조영조 단장=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품목에 선택과 집중해야 합니다. 산업용 로봇은 이미 시장이 포화되었지만, 현재 도입 초기단계에 있는 서비스로봇 분야 중에서 개인용 또는 가정용 로봇이 향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품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경환= 초기 시장 개척을 위해 공공분야에서 정부가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과 개인용 가정용 서비스로봇으로 가야하는 주장은 상충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상록= 꼭 그렇지 않습니다. 그 예로 교육용로봇이 있습니다. 정통부에서 조사해보니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총 25만 학급이 있는데 학급당 교육용로봇을 한대씩만 팔아도 25만대입니다. 이런 분야가 바로 대규모 공공수요일 것입니다.
△나경환= 부품 해외의존도가 높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조영조=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시스템 단위의 부품 즉 컴포넌트 기술도 중요합니다. 즉, 로봇 하드웨어 기술력에서 뒤떨어진 부분을 우리가 강점을 갖는 IT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기술로 보완하는 것도 좋은 접근방법입니다.
△오준호= 그 점에서는 약간 견해가 다릅니다. 우리나라 로봇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산업용로봇은 60년대 시작돼 70년대에는 우리 공장을 점유했으며 80년대 산업용로봇 연구는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로봇이 도입된 시점은 불과 30∼40년이지만 선진국은 그보다 앞서 이미 공작기계를 연구한 100년 가량의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를 다 잊고 우리가 네트워크기반 서비스부터 얘기를 하는 것은 ‘사상누각’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로봇 만드는 기술이 너무 없습니다. 네트워크, SW만 너무 강조하지 기술은 간과하는 경향 때문에 우리가 만든 로봇은 마치 초등학생이 숙제로 낸 작품처럼 엉성하고 볼품없습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기본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경환= 우리 강점인 IT와 펀더멘탈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모든 산업의 결정적인 키는 킬러애플리케이션을 도출하고 육성하는 것입니다. 로봇의 킬러애플리케이션은 어떤 분야가 될 거라고 보십니까.
△오준호= 청소로봇처럼 꼭 필요한 성능만을 갖추고 다른 기능은 없는 로봇은 그런대로 경쟁력이 있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기대치가 원초적으로 낮은 분야의 니치마켓을 공략하는 방법인데 그 예로 장애우를 위한 음성인식 로봇이 있습니다. 군사, 의료, 실버로봇 등도 시장이 작긴 하지만 수요는 높은 영역입니다. 지금 우리 삶을 보면 핸드폰, PC 등 성능이 좋아졌을 뿐 10년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히트상품이 나오기 힘들다는 방증입니다. 저는 킬러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선을 딱 그을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호길=역사적으로 증기기관차나 자동차도 처음부터 킬러애플리케이션을 목표로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킬러애플리케이션이 될 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시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기업이 투자하도록 정부가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오상록= 킬러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청소분야, 홈 모니터링 분야, 시큐리티 분야 등이 꼽히지만 실제로 그런 로봇이 나와 대박을 터뜨린 것은 아직 없습니다. 저는 로봇이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늘 하루에도 몇 번씩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로봇을 장난감의 연장선 상에 놓고 접근을 한 결과 공룡로봇을 팔아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휴머노이드인 로봇사피엔스가 1년만에 160만대 판매되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조영조= 지금까지의 로봇은 너무 기능적인 면만을 강조했는데 개성이나 인간친화성에서 해답이 나올수 있다고 봅니다. 대량 생산판매가 가능한 전략을 짜서 접근하되 마케팅, 인지과학 전문가들, 소비자까지 참여하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나경환= 그렇다면 로봇산업에 대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법·제도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오상록=아직 시범사업이나 공공수요 등 정부가 할 역할이 큽니다.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들도 신수종사업에 로봇을 포함시키는 등 중요성은 이미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시장이 활성화될 때 특정 분야에서 제살깎기 경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역할을 안배해주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오준호=로봇에 민간이 투자를 안하는 이유는 너무 기본적인 인프라가 없어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안돼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들은 10년, 20년동안 로봇을 준비해왔지만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하자는 식입니다. 정부가 계속 관심을 갖고 의지를 보여주고 민간이 안따라오더라도 꾸준히 밀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조영조=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상용화에 대비한 도로교통법, 안전기준 등을 정비하고 로봇산업이 기존 법에 저촉받지 않게 규제를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호길= 로봇 분야 통계 데이타도 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터나 감속기 등 로봇 부품도 따로 따로 데이타가 흩어져 있습니다. 이참에 국가 통계에서 로봇분야에 대한 데이타를 정립하는 구조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오상록=맞습니다. 기업들이 은행에 융자를 얻으러 가면 산업분류체계에도 안 들어가 있는 품목이라 융자해주기 어렵다고 합니다. 정부의 기술분류체계, 산업분류체계에 로봇을 넣어야 합니다.
△나경환=마지막으로 로봇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한 말씀씩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호길= 10년 후 늘어나는 고령인구에 대한 복지 정책, 저출산으로 일손이 줄어든 산업환경에 대한 고민 등의 대안이 바로 로봇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로봇산업을 지원해야 하고 초기 시장을 육성해야 합니다. 방법론은 우리 연구자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영조= 산업계의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대학, 연구소 R&D투자에 집중하다보니 기업체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오준호= 연구일선에서 직접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로봇기술이 좀더 발전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없는 상업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브랜드가 아무리 좋아도 제품이 좋아야 힘을 얻는 것이고 그 다음에 규모의 경제, 킬러애플리케이션도 나오는 것입니다.
△오상록= 5∼10년 뒤를 내다보는 신생 분야를 이미 활성화된 분야처럼 1년 뒤 매출 얼마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로봇산업의 현재보다 가능성을 바라봐주었으면 합니다.
△나경환= 로봇 산업, 로봇 기술들이 향후 잘 육성되도록 오늘 좌담회가 로봇산업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정부차원의 중장기 계획이나 발전 로드맵을 만들고 그 틀에 맞춰 정부가 일관성을 갖고 로봇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겠습니다.
정리=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