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5부)해외 선진기업에서 배운다⑤美 엔비디아

서적에서도 그래픽 기술을 실감할 수 있다. 사진은 엔비디아 3D 그래픽 기술이 활용된 동화책 ‘Mr. Finnegan’s Giving Chest’.
서적에서도 그래픽 기술을 실감할 수 있다. 사진은 엔비디아 3D 그래픽 기술이 활용된 동화책 ‘Mr. Finnegan’s Giving Chest’.

 n번째, 즉 최고 경지에서 비주얼을 제공하는 회사. 바로 엔비디아(대표 젠슨 황)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엔비디아는 인텔의 통합전략에도 불구하고 ‘그래픽 칩셋’이라는 고유영역을 지키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팹리스 반도체 회사로도 유명하다. 실제 엔비디아는 2003년 포츈지가 선정한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업’ 2위에 올랐고, 이어 2004년에는 팹리스반도체협회(FSA)가 최고 팹리스 기업에게 주는 ‘페이버리트 팹리스 픽’상과 ‘모리스 장 모범 리더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개월마다 칩 설계를 새롭게 바꾼다는 취지와 직원의 70%가 개발 연구원이라는 것이 엔비디아가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들이다.

◇시장을 창출하라=지금의 CEO인 젠슨 황은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한 후 LSI로직에서 칩 메이커로 일하다가, 1993년 선마이크로시스템의 두 엔지니어와 3차원 영상을 처리하는 그래픽 칩세트회사(엔비디아)를 세웠다. 당시만 해도 3D로 즐길 만한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3D용 그래픽카드를 만든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젠슨 황은 시장 잠재력을 믿고 개발에 힘을 쏟았고, 결국 세상이 엔비디아를 따라오게 만들었다.

사실, 3D 그래픽은 단순히 게임, 영화 뿐 아니라, 동화책 제작과정에도 이용되고 있다. CAD/CAM,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같은 전문 애플리케이션이든, 재무분석과 B2B 협업과 같은 상업적 애플리케이션이든, 혹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가 3D 그래픽이다.

이같은 3D 그래픽의 시각적인 특성과 양방향성은 종래 2D 그래픽이 제공해 온 사실감을 뛰어넘어 비주얼 세계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 3D 그래픽의 가능성과 시장기회를 일찍 파악하고, 현실화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6개월마다 리노베이션하라=엔비디아는 6개월을 주기로 차세대 제품을 발표한다. 지포스 FX, 4, 6, 7시리즈 등 새로운 아키텍처가 선보이는 주기가 대략 6개월이다. 기존 제품이 타사와 경쟁에 놓이는 ‘레드오션’에 빠지려는 순간, 가격 우위를 지키면서 다음 세대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것도 엔비디아의 힘이다. 엔비디아가 도약의 기반을 다지게 된 것은 데스크톱 PC용 그래픽 프로세서인 지포스(GeForce) 덕이다. 엔터테인먼트 및 게임기에 최적화된 3D, 2D, HDTV 성능을 제공하고, 특히 기업용 시장에서 중요한 초고속 애플리케이션 성능, 풍부한 화질, 선명한 해상도를 만족시킴에 따라 지포스가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사 및 AIC(Add-in-Card) 회사들이 장착하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데스크톱 PC용 칩에만 머물지 않고 컴퓨터의 중추 신경계라고 할 수 있는 통합 칩세트인 엔포스(nForce) 시리즈, 노트북용 그래픽 칩세트인 지포스 고(GeForce Go), 그리고 휴대폰과 핸드헬드를 위한 고포스(GoForce)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또 내년 출시를 앞두고 있는 소니사의 플레이스테이션3에 그래픽 칩을 공급, 가정용 디지털 가전 쪽으로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개발자가 선호하는 기업을 만들라=전세계 직원이 2500여명인 엔비디아는 이 중 70%가 엔지니어다. 엔비디아는 이들 엔지니어에게 최고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각 분야에서 최고 인재를 뽑는다는 회사 목표가 말하듯, 엔비디아가 철저한 인재경영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는 신속하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중간 보고체계가 최소화돼 있다. 언제 어디서나 담당 상관과 24시간 이내에 연락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바로 시행할 수 있는 체제다. 젠슨 황 사장은 이를 두고 “엔비디아는 성장성에서 뛰어날 뿐 아니라, 우수한 기업문화와 젊고 신속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회사”라며 “회사내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그에 따른 업무진행이 역동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엔비디아 본사 주차장은 주말에도 차들로 가득하다. 전 직원이 엔비디아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모두 열정을 갖고 일한다는 방증이다. 실제 엔비디아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일하기 좋고, 다니고 싶은 기업으로 손꼽힐 정도다.

인재 중심 경영과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 외에 엔비디아는 협력업체들과도 강력한 파트너십을 자랑한다. 델, 게이트웨이, 마이크론PC, HP, IBM,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도시바, 애플, 후지쯔, 지멘스 등 세계적인 OEM 기업을 비롯, ABIT, 알바트론, 에이오픈, 아수스, 바이오스타, 체인텍, 기가바이트, 리드텍 리서치, MSI, 셔틀 등 세계 유수 AIC 및 시스템 구축업체가 엔비디아의 협력사들이다. 엔비디아는 기술 및 제품 개발 초기단계부터 파트너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협력한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

 

◆엔비디아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엔비디아는 멀티미디어 그래픽 칩세트 전문회사로 매출 규모가 20억달러에 이른다.

지금의 CEO인 젠슨 황과 컬티스, 크리스 세 명이 1993년에 설립했지만 이후 3년만에 업계 다크호스로 부상한다. 멀티 텍스처링 3D 프로세서인 ‘리바 TNT’가 당시 그래픽카드 분야에서 ‘부두 시리즈’로 명성을 날리던 3Dfx의 아성을 물리치는 등 공전의 히트작이 됐기 때문이다. 2000년에는 3Dfx 그래픽 관련 사업부를 인수, 3D 기술을 보강하는 전기를 맞는다. 급기야는 그래픽 프로세서 업계 절대 강자로 떠올라 세계 컴퓨팅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업체 중 하나가 된다.

사진, 영상, 고화소 디지털TV, 오디오, 게임, 영화, 디지털방송, 의료영상 등으로 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보다 실감나고 사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및 디지털 미디어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이 전분야에 걸쳐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엔비디아다. 그래픽 기술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다양해 PC를 비롯해 TV, 영화, 게임, 휴대폰, 워크스테이션, PDA, 의료 영상기기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매체에는 엔비디아의 힘이 뻗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22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엔비디아는 미국 IT업계에서는 ‘신기록 제조기’로 통한다. 가장 단시간에 매출 10억달러와 20억달러에 도달했고, 외형 만큼이나 순익에서도 놀라운 성장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회계 시작기준일인 2월부터 7월까지 반기매출 11억6000만달러에 순익이 1억3900만달러를 올렸는데,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순익이 426% 늘어난 것이다.

◆인터뷰-젠슨 황 CEO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수준 높은 생산력을 갖춘 파트너 기업들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엔비디아 젠슨 황 사장은 국내 시스템반도체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박수를 보내며 한국에 실리콘밸리가 조성되고 있는데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엔비디아 그래픽 칩은 인텔 중앙처리장치(CPU)의 ‘파괴적인’ 흡수력에도 불구하고 12년간 독자적으로 성장했다. 인텔에 포섭되지 않고, 오히려 특화 기술을 통해 신속하게 제품을 출시하는 엔비디아의 저력은 대표적인 팹리스 성공사례이자, 국내 팹리스 반도체 업체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수많은 그래픽 칩세트 업체 중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코어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설계자산(IP)를 구입해서 대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기적인 수익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고유기술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엔비디아처럼 독자적인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고유 기술에 기반한 로드맵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엔비디아는 이제까지 그래픽 분야에서 전문적인 IP를 1200개나 개발했다. 이 중 10% 정도만이 상품화됐으며, 나머지는 미래 시장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PC 부문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각종 게임기 시장과 휴대기기 등 모바일 분야로 활발히 진출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의 많은 기업과 협력하고 있죠.” 멀티미디어 그래픽 칩세트 분야에서 전세계 최고 기술력과 인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는 젠슨 황 사장은 PC 뿐 아니라, 모바일과 같은 다른 플랫폼에서도 업계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