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5부)해외 선진기업에서 배운다⑥英 ARM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5부)해외 선진기업에서 배운다⑥英 ARM

‘디지털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휴대폰에도 PC처럼 중앙처리장치(CPU)라는 것이 있다. 베이스밴드 칩이다. 이 칩에서 복잡하고 민감한 연산 기능을 처리하는 프로세서 코어 부분이 있다. 이 프로세서 코어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력으로 똘똘 뭉친 기업이 있다. 바로 영국에 둥지를 틀고 있는 ‘강소기업’ ARM(http://www.arm.com)이다.

반도체 전공자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비반도체 분야의 엔지니어들에게도 생소한 회사다. 하지만, 퀄컴의 모뎀 칩에도 ARM 코어가 들어가 있으니, 적어도 국내에서 3700만 명 이상이 이 기업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ARM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최고의 반도체 설계자산(IP) 제공업체로 휴대폰 뿐 아니라 네트워킹 및 소비자 엔터테인먼트 솔루션부터 이미징·자동차·보안 및 스토리지 장치에 이르기까지 고급 디지털 장치의 핵심 부분에 사용되는 기술을 설계·제공한다.

◇IP 비즈니스란=시스템온칩(SoC) 시대로 진입하면서, 반도체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은 예전의 대형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보다 복잡해졌다. 적시에 제품을 내놓고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설계하기보다는 이미 전문가들이 검증한 기성 제품을 사다가 쓰면 편하다.

그래서 나타난 비즈니스 형태가 반도체 IP 유통이다. 빌딩 설계를 할 때, 건물의 통풍 설계도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이미 만든 그림을 사용하고, 전기는 전기 전문가의 설계도를 활용하는 개념이다.

ARM은 자사가 개발한 프로세서 코어로 자기 브랜드의 제품을 개발, 판매하지 않고 지적재산권인 ‘IP’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사업 형태를 선택했다. ARM의 비즈니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IP 코어 사용에 대한 라이선싱과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 툴 판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피지컬 IP 비즈니스 등이다. 주력시장은 임베디드, 엔터프라이즈, 가정용 기기, 모바일, 이머징 애플리케이션(Emerging application) 시장 등이다.

ARM본사 임원이자 ARM코리아 대표이사인 김영섭 사장은 “프로세서 IP 판매 전략이 세계적으로 고객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현재 휴대폰 세계 생산량의 80% 이상에 ARM 기술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ARM의 최대 강점, 파트너십= 워렌 이스트 ARM 최고경영자(CEO)는 “ARM의 성공은 뛰어난 기술력, 시장 변화와 능동적인 비즈니스 모델, 350여 개 협력사들과의 파트너십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과 시장을 보는 안목이야 말로 성공의 기본 요건. 하지만, 기술 중심의 회사에서 고객과의 파트너십을 중요한 요건으로 꼽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IP를 판매할 때 단순히 설계도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구동할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들이 제공돼야 한다. ARM은 이를 위해 기술력 있는 소프트웨어업체와 기민하고 유연하게 연합 전선을 펴왔다. 김영섭 ARM코리아 사장은 “IP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자신이 못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외부에서 조달했고, 영국의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도 동참해 짧은 시간에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사와의 관계 설정도 ARM이 내세우는 장기중의 하나다. ARM은 ‘ARM 커넥티드 커뮤니티’를 구성, 특히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 커뮤니티 형성에 힘썼다. 고객사들이 ARM의 기술 전략을 엿보고, 자신의 의견을 내놓을 뿐 아니라 고객사 간의 기술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다.

ARM은 이같은 제도를 통해 협력업체 전반에서 아키텍처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ARM 솔루션이 가진 완벽한 호환성은 전세계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또 이 커뮤니티를 통해, ARM 고객의 고객인 시스템설계자들이 다양한 제품의 성공사례 및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민첩한 경영구조=ARM의 독특한 점을 하나 더 꼽으라면 민첩한 의사결정구조를 말할 수 있다. 경영학 교과서에서 흔히 말하는 ‘권한 이임’이 제대로 뿌리내린 것이다. 김영섭 ARM코리아 사장은 “직원과 최고경영자 간의 의사소통 구조가 두 단계 뿐이고 CEO와 수시로 연락이 가능하며 결정도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내릴 수 있다”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IT세상에서 긴박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멈추지 않는 기술 개발=ARM은 IP 산업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매출액의 30%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IP 산업의 특성상 기술 개발이 없으면 고객이 떨어져 나가고, 한번 나간 고객은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같은 투자에 힘입어 현재 32비트 반도체 IP 시장에서 76.7%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IP 시장에서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IT 시장 위축으로 반도체 업계가 한파를 맞았을 때도 ARM은 긴축경영 상황 속에서도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이지 않았다. 신제품을 계속 내고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정공법은 선택했다. 그 덕분으로 휴대폰에 치중됐던 ARM의 사업이 디지털카메라, MP3P, 게임기 등 디지털 가전 전영역으로 확산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또 지난해 경쟁업체이던 미국의 아티산 컴포넌트(Artisan Components)와 액시스 디자인 오토메이션을 합병하면서 제품라인을 업그레이드하며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는 등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ARM은 어떤 회사

ARM은 지난 1990년 애플사와 에이콘컴퓨터, VLSI 테크놀러지 등 3개 사의 합작으로 탄생한 영국 기업이다. 당시 애플과 VLSI가 자금을 대고 에이콘컴퓨터의 기술력과 12명의 엔지니어들이 합쳐져 설립됐다.

ARM은 직접 칩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TI·인텔과 같은 제조업체들에게 설계를 라이선싱하고 로열티를 받는 원천 기술 제공업체이다.

지난 1991년 최초의 임베디드 RISC 프로세서인 ARM6를 발표하면서 ARM은 VLSI와 최초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게 된다. 샤프와 GEC 플레시가 다음해인 1992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씨러스로직이 93년 그 뒤를 이으면서 ARM은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나게 됐다. 그 후로 수년 동안 IP 포트폴리오와 파트너사들의 증가를 통해 ARM은 성장 가도를 달린다. 93년에는 일본 벤처 캐피탈 회사인 NIF가 주주로 참여하게 되고 아시아와 유럽, 미국 지역에 지사들을 열게 되면서 ARM사는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인텔, 퀄컴, 삼성전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와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과의 계약을 통해, ARM 제품은 임베디드 RISC 프로세서 업계에 있어서 사실상 표준이 됐다. HDTV, 아이포드 및 아이리버와 같은 최신 MP3, 자동차, PDA, 소니의 PSP에 ARM CPU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전자레인지와 전기밥솥과 같은 가전 제품에도 ARM 프로세서가 사용될 전망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만 13억 개의 프로세서를 출하하였고, 올해는 20억 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미 지난 7월까지 선적량이 15억 개를 넘어섰다. 이 추세로라면 오는 2015년에는 45억 개의 프로세서 출하가 가능할 것이라는 게 ARM의 자체 분석이다.



◆인터뷰-워렌 이스트 CEO

“첨단 디지털 제품 핵심 기술을 설계해 모든 첨단 디지털 기기를 더욱 강력하게 하는 것이 ARM의 사명입니다.”

워렌 이스트 ARM 최고경영자(CEO)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사의 비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디지털이 있는 한 ARM이 핵심 기술을 제공할 것이며, ARM은 ‘디지털 세상의 아키텍처’로 인정받겠다는 포부다.

반도체 IP 비즈니스라는 시장을 사실상 만들고 개척해온 ARM이 창사 15년 만에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 기업이 될 수 있던 것은 바로 고객사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이스트 사장은 주저없이 답했다.

“IP비즈니스는 고객이 성공할 때 비로소 성공을 하게 되는 사업 모델입니다. 고객이 성공적으로 SoC를 구축하고, ARM기술을 지원하는 다른 기업과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많은 활동의 중점을 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ARM의 기본 경영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트 사장은 이같은 기본 철학으로 한국 기업과도 초창기부터 관계를 맺었다고 털어놨다. 이스트 사장은 “ARM이 아직 규모가 작은 회사였던 1993년도에 역시 잘 알려 지지 않은 한 한국 기업이 본사를 방문했고 우리가 제품 설명과 견적서를 주자 그 업체는 ‘귀사의 모든 상품을 구매하고 싶습니다!’라고 답변을 해왔다”며 한국과의 인연이 깊음을 내세웠다.

이스트 사장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보여준 실행력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고 있으며 시장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 창출도 어려운 SoC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성과를 내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ARM은 국내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동부아남반도체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앞으로 많은 SoC 업체와 협력을 해나갈 방침이다. 이스트 사장은 “ARM은 뛰어난 기술로 많은 (한국) 기업들이 SoC를 구축할 수 있도록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포지션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