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나노 돋보기](28)­나노 유척(鍮尺)

“암행어사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마패, 박문수, 춘향전… ”

왕은 암행어사에게 봉서(封書)·사목(事目)·마패(馬牌)·유척(鍮尺)을 줬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어사 박문수’나 ‘춘향전 이몽룡’의 멋진 활약에 힘입어 ‘마패’만큼 매력적인 게 없는 것 같다. 마패는 말(역마)과 군사(역졸)를 동원할 수 있는 증명서로서 암행어사의 막강한 ‘힘(권한)’을 잘 보여줬다. 그런데 그 권한을 공명정대하게 써 탐관오리를 응징하려면 엄밀한 기준이 필요했다. 그 기준의 하나가 ‘유척’이다.

유척은 한 자 한 치 길이 표준 자. 지방 수령의 세금을 거두는 도구나 형벌을 내리는 도구가 규격에 맞는지 측정하는데 쓰였다. 말하자면 암행어사는 걸어다니는 국가 표준이었다.

2005년 12월, 가까운 문구점에서 서로 다른 회사가 만든 ‘플라스틱 30㎝ 짜리 자(尺)’를 10개쯤 사서 천천히 비교해보자. 대략 1㎜ 정도씩 들쑥날쑥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만든 기준(표준)자와 대부분 1㎜ 정도씩 차이가 날 것이다. 심지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만든 표준자조차 ‘20℃를 기준으로 ±1℃씩 변할 때마다 0.03㎜씩 오차가 날 수 있다’는 문구가 박혀 있을 정도다. 과학·산업적으로 0.03㎜∼1㎜ 편차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만큼 기준은 중요하다.

신관우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1㎚ 구조를 살펴보려면 여러 기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1㎚씩 정확하게 금이 그어진 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노 유척(표준) 만들기가 시작됐다. 궁극적으로는 0.1㎚ 짜리 잣대로 활용할 ‘X-선’, 0.4㎚씩 측정할 수 있는 중성자선에 대한 연구다. 이를 위해 지난 8, 9일 이틀간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서 국내외 나노 구조 측정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전에 없던 수준(나노)에서 사용할 잣대의 기준을 가장 먼저 세우는 곳이 세계 나노기술 연구 중심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