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IT코리아]EU-`동방의 IT 명품` 유럽을 사로잡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일주일 앞둔 지난해 12월 17일 영국 런던의 밤거리.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젊은 남녀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축제를 만끽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한 영국 남성의 손에 삼성 블루블랙폰이 들려 있다. 또 다른 여성은 잘 빠진 LG 슬라이드폰을 들고 수다에 열중이다. 이처럼 영국 길거리에서 한국산 휴대폰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의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 휴대폰은 지난해 3분기 서유럽 시장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0%나 늘어나는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총 620만대를 판매하면서 점유율도 전년 동기 9%에서 16%로 치솟아 노키아에 이어 확고한 2위를 굳혀가고 있다. LG전자 역시 유럽 WCDMA 휴대전화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시선을 잡아라=공항은 각 나라의 관문이다. 때문에 이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럽 주요 공항은 이미 한국산 제품이 접수했다.

 프랑스 드골공항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LG전자의 PDP TV. 가족이나 손님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산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무료함을 달랜다.

 LG전자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대비해 유럽의 관문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도 승객 시청용 42인치 PDP TV 110대를 설치했다. 이 공항에 설치한 PDP TV는 제품뿐 아니라 LG브랜드를 TV 하단에 별도로 표시했고, 상업광고 독점권을 확보해 일반 CF뿐 아니라 각종 홍보 동영상을 방영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루이뷔통 매장에는 LG전자의 71인치 PDP TV 두 대가 설치돼 있다. 풀 HD급(1920×1080) 초고해상도를 자랑하는 이 제품은 매장 개장시간 내내 루이뷔통 브랜드의 패션쇼 장면을 내보낸다.

 영국의 유명 극장과 백화점이 몰려 있는 런던 시내 피카딜리 광장.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늘 붐비는 이곳에는 삼성전자의 대형 옥외광고 전광판이 설치돼 24시간 환하게 비추고 있다. 1890년대 런던 최초의 조명광고가 시작됐다는 유서 깊은 장소를 삼성의 전광판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영국 최대 장난감 백화점인 햄리스의 게임 매장에는 지난해 말 차세대 게임기 중 최초로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360 시연대가 마련돼 현지 게이머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초고화질을 특징으로 하는 X박스360의 게임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는 다름 아닌 삼성전자의 LCD TV 모니터다.

 ◇프리미엄 전략 주효=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시장에서 한국 IT제품은 저가로 승부하면서 품질도 그럭저럭 만족하는 상품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심지어 삼성이나 LG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부의 상징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꾸준히 진행해온 프리미엄 전략 덕분이다.

 유럽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거둔 성공이 프리미엄 전략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과거 이건희폰과 벤츠폰과 같은 프리미엄폰을 잇달아 성공시켰던 삼성은 블루블랙폰 시리즈를 앞세워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실제로 블루블랙폰 시리즈는 대당 500달러가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2004년 12월 출시 후 1년도 안 돼 누적판매 1000만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고무된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오디오 전문기업 뱅앤드올룹슨(B&O)과 함께 1000유로(125만원)에 달하는 최고급 휴대전화 ‘세린(Serene)’을 공개하며 프리미엄 전략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명품만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 헤롯백화점에서의 LG전자 프리미엄 마케팅 사례 역시 유명하다. 2001년 말 LG전자는 헤롯백화점에서 대당 가격이 1만8000파운드(3370만원)에 달하는 60인치 PDP TV를 판매하기 시작해 화제를 모았다. 이어 2002년 5월에는 알 파예드 헤롯백화점 사장 등 관계인사와 현지 언론, 주요 딜러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세계 최초 ‘인터넷 가전’ 발표회를 했다.

 지난해 말 헤롯백화점 내에 오픈한 70여평 규모의 명품전시관 ‘LG i갤러리’는 LG전자 프리미엄 마케팅의 최절정을 이루고 있다. LG전자는 영국에서 400파운드(74만원) 이상 하는 고가 프리미엄 세탁기 시장에서 점유율 3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7kg 이상 대용량 분야에서는 55%의 시장점유율로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국가 이미지 제고로 이어져=“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은 한마디로 관심 밖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삼성과 LG 등 한국 IT기업들이 성과를 내면서 요즘은 언론매체들이 앞다퉈 ‘한국의 잠재력을 주목하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18년 동안 살았다는 박종호씨의 전언이다. 우리 IT기업의 선전이 회사 브랜드 향상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말이다.

 IT 제품에 관심이 많아 일본에만 세 차례 다녀왔다는 짐 크리스티씨 역시 “휴대폰은 물론이고 디지털TV와 MP3플레이어 등 디지털 제품 분야 대부분에서 요즘은 한국산 제품이 훨씬 획기적”이라며 “디지털 제품의 메카로 떠오른 한국을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2월드컵과 박지성, 이영표의 활약 등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단시간에 바꿔놓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콧대 높은 유럽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의 확보로만 가능하다.

 우리 IT제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쉬지 않고 현지에서 뛰는 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축구 마케팅도 한 몫

 지난해 8월 21일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최강자 첼시와 아스날과의 리그 첫 맞대결이 있던 날. 첼시 홈구장인 런던 시내 스탬포드 브리지 관중석에는 첼시를 공식후원하는 ‘삼성 모바일(SAMSUNG mobile)’의 문구가 새겨진 유니폼 3만여개가 춤을 추고 있었다. 이날 경기는 런던을 연고로 하는 두 팀 간의 경기이자 시즌 개막 후 첼시의 첫 홈 경기, 또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의 격돌이라는 점에서 영국 및 유럽 축구팬들과 현지 언론의 최대 관심사였다. 첼시와 아스날 팬 4만여명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음은 물론이고 스카이TV로 중계를 본 사람도 300만명에 달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삼성’이 각인됐음은 물론이다.

 축구에 죽고 축구에 사는 유럽 지역에서 한국 IT기업들의 스포츠 마케팅 열기도 뜨겁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첼시와 5년간 1000억원에 이르는 프리미어리그 사상 최고 수준의 후원계약을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삼성전자는 “‘삼성 모바일’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펼치는 첼시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유럽의 방송과 신문에 연일 대문짝만하게 소개되면서 이에 따른 광고효과가 9월 말 현재 3270만달러(340억원)에 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첼시가 삼성전자 유니폼을 입고 본격적인 경기에 나선 게 8월부터임을 감안하면 당초 목표였던 연간 6200만달러의 광고효과를 두 달 만에 달성한 셈이다. 무적 첼시를 이끌면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호세 무리뉴 감독이 얼마 전부터 직접 삼성 휴대폰을 들고 TV와 옥외 광고에 등장하면서 직접적인 제품 홍보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첼시 한 팀에 연간 200억원을 쏟아붓는 삼성에는 못 미치지만 LG전자 역시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 축구 대표팀과 유로 2004 우승국인 그리스를 비롯해 헝가리, 러시아, 이라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공식 후원하는 국가대표팀만 6개다. 또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구단인 리버풀과 프랑스리그를 4년 연속 제패한 올림피크 리옹 등 각국 유명 프로팀 7개의 공식후원을 하면서 지난해 7월에는 유럽 프로축구 클럽 대항전인 ‘LG 암스테르담 토너먼트’도 개최했다.

 후원을 맡았던 월드컵 유럽예선전 스폰서만으로 1억달러의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 LG전자의 분석이다. LG전자는 향후 독일 현지에서 LG 어린이축구대회, LG 장애인축구대회 등도 개최하면서 스포츠를 통한 홍보에 앞장설 예정이다.

 중견 휴대폰 업체인 VK모바일도 지난해 12월 6일 프랑스 남부 지방 마르세유에서 1부리그 올림피크 마르세유와 후원 계약을 하며 유행에 동참했다. VK모바일은 이번 후원계약으로 향후 1년간 올림피크 마르세유 유니폼에 ‘VK 모바일(VK Mobile) 브랜드 광고와 홈구장 펜스광고, 선수단 이미지 사용권 등을 확보했다.

 유럽인들의 축구사랑을 한국 IT제품 사랑으로 연결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볼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