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3만달러의 `싹`](https://img.etnews.com/photonews/0601/060102033024b.jpg)
요즘 매스미디어들은 우리의 정보통신 기술 및 제품 혹은 서비스 등에 대해 ‘세계 최초’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스스로 자제하는 듯한 분위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최초’가 워낙 많은 데다 이제 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인터넷 게시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인 종목을 나열한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이미 접한 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반도체 생산량·스타크래프트 상위랭킹 점유율·초고속 인터넷 사용률·컴퓨터 보급률·인터넷 이용시간·네티즌 참여도·TFT LCD 점유율·제철 조강 생산량·선박 건조율·단일 원자력발전소 이용률·의약 캡슐·전자레인지용 고압콘덴서·단일 에어컨 점유율·자기 테이프·스키장갑·오토바이 헬멧·손톱깎기·텐트·낚싯대·냉동 컨테이너·쇼트트랙·태권도·양궁·학위 취득 비율·해외 입양·교육열 등이다.
그러나 최근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바로 ‘디지털 기회지수(DOI:Digital Oppertunity Index)’ 세계 1위다. 앞서 언급한 1위 종목은 대부분 단위 지표지만, DOI는 국가 전체의 디지털 수준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뿐만 아니라 이 지표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공식 채택한 것이기에 더욱 자랑스럽다. 더욱이 ITU는 작년 11월 130여개국 정부 대표와 시민단체·기업 등 2만여명이 참석한 세계정보사회정상회의(WSIS)에서 이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우리의 자긍심을 한껏 고무시켰다.
그동안 정보통신 관련 지표로 널리 알려진 디지털접근지수(DAI)가 인프라 보급 정도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DOI는 인프라 보급은 물론이고 정보통신 기회 제공과 함께 인터넷 이용률 등 활용 정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지수를 산출한 IT 종합지수다.
사실 따져보면 IMF 외환위기 사태는 우리나라의 국가 신인도, 즉 국가 브랜드 가치가 순식간에 폭락한 게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내외적으로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고 그 결과 외국계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제 기업뿐 아니라 국가가 먼저 브랜드 관리에 나서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국가 브랜드 가치의 상승은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고 가끔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DOI 세계 1위라는 사실이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가치 향상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DOI 세계 1위가 우리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 정부가 ‘IT강국 코리아’에 자만하지 않고 IT를 활용한 디지털 복지국가 건설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5월 ‘서울디지털포럼 2005 월드 ICT 서밋’에서 “한국은 유비쿼터스 시대의 벤치마킹 모델로 발전해나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보격차 문제나 개인정보 침해와 같은 정보화 시대의 그늘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근면하고 우수한 인력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기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당겨 이른 시일 내에 강소국으로 올라서야 하는 우리로서는 북유럽 노르딕 국가들을 능가할 수 있는 탄탄한 국가브랜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국가브랜드 순위를 끌어올리고 그 이미지를 전세계에 가장 효과적으로 고착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우리의 ‘디지털 한류’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올해 IT 분야 사자성어로 ‘숙아유쟁(熟芽遺爭)’을 선정한 것처럼 일부 쟁점은 있지만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로 올라서기 위한 싹은 이미 튼튼하게 키워졌다.
우리의 디지털 제품·기술·서비스가 국가 이미지 고양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인지 다각적인 노력과 정책적 뒷받침이 시급한 때다.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ygson@kad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