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환경 규제’를 무기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수출에 절대적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게 세계 선진국가들이 내세운 환경 문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각 기업의 절대적 경쟁력 기준이었던 기술, 마케팅 등에 ‘환경경영’이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된 것이다.
클린 IT는 비단 하드웨어적인 생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불법 소프트웨어(SW)와 반윤리 인터넷 등 소프트웨어 분야도 범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다. 올해는 이미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상황이다.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적극적인 대응이 해결책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클린IT는 생존 문제= 환경 문제를 수십 년 앞서 준비해온 유럽연합(EU)·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이 전기·전자 분야에서 환경 기준치를 크게 높였다. 심지어 중국마저도 최근 유럽연합과 유사한 전자정보제품 오염방지관리법 등의 관련 법령 정비에 들어가는 등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U의 규제는 우리 기업들에게 ‘발등의 불’이다. EU는 오는 7월부터 ‘특정 유해물질 사용 제한 지침(RoHS)’을 발효한다. 지난 2003년 EU 위원회에서 발표한 ‘폐전기전자제품처리에 관한 지침(WEEE)’도 대표적인 환경규제. ‘화학물질 등록·평가·허가제도(REACH)’, ‘친환경제품설계규정(EuP)’ 등의 환경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카운드다운이 시작된 셈이다.
환경 규제에 포함되는 품목들은 우리 기업들의 유럽 수출 전체 물량 중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시장은 우리나라 전자제품 수출의 19%를 차지하는 절대적인 시장이다. 결국, 환경 문제를 등한시할 경우 유럽을 쫓아 환경규제를 높이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수출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 제품의 청정 생산은 우리나라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됐다.
밖으로 드러난 상처보다 안에서 커져가는 작은 암덩어리가 생명을 더욱 위협한다. 지적재산권으로 대비되는 SW의 불법 복제 문제는 IT의 역사와 함께 관련업계를 꾸준히 괴롭히는 암덩어리다. 일부 후진국과 더불어 세계적인 SW 불법복제국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소프트웨어 강국 달성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이에 대한 근절이 최대 현안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인프라 최강국이라는 명성 뒤에는 반윤리적 인터넷 선진국이라는 비아냥도 동반하고 있다. 음란물이 판치고 불법 SW, 영화 콘텐츠 등의 유통경로로 악용되고 있다. 16차선 정보화 고속도로에 별다른 제재없이 불법 차량이 질주하는 형국이다.
◇중소기업 대응이 관건= 전자 관련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은 이미 대응에 나서고 있어 올 7월까지는 만반의 태세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환경규제 관련 정보에 어두운데다가 여력도 부족해 준비 태세는 열악한 상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수출중소기업 23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도 수출중소기업의 무역 관련 해외 환경규제 대응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규제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기업 중 13.5%만이 환경규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알고는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모름’ 64.8%, ‘들어본 적은 있음’ 15.2%, ‘전혀모름’ 4.8%로 전체의 84.8%가 정보 부재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특별한 대책이 없으며 환경인력도 크게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보를 알고 있어도 비용 부담이 가중돼 대응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기업들도 상당수에 달하는 반면 정부를 포함한 관련 단체의 지원도 턱없이 모자란 상태다.
국내 수출품 생산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의 이같은 미진한 대응은 결국 우리나라 수출 시장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다. 환경 관련 전문가들은 우선 중소기업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용 부담만을 우려하고 있다가는 결국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위기상황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환경규제를 세계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을 전환하고 ‘부담’이 아닌 ‘투자’로 생각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동규기자@전자신문, dkseo@
◆인터뷰-조남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소장
“우리나라의 청정산업 수준은 OECD 가입 국가 중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국내 생산현장의 클린화를 이끄는 대표기구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의 조남선 소장(58)은 우리나라의 세계 무역 규모는 11∼12위 수준이지만 청정산업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처져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체 기업들의 청정 수준에 대해 성적을 매기면 ‘미’에도 못 미친다”며 “현재 상태로는 오는 7월 유럽연합(EU)이 발효하는 ‘RoHS’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어 수출전선에 심각한 타격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준비가 허술한 중소기업들에게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라며 자칫 ‘존폐의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조 소장이 진단하는 국내 대기업들의 청정수준은 그나마 양호하다. 여력이 많은 대기업들은 지난 90년대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대비를 해온 탓에 오는 7월 발효 시점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 소장은 “대기업들은 부품 등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청정 생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태”라며 “만에 하나 납품업체들이 정해진 시간 내에 기준을 못 맞출 경우 해외에서 수입을 해서 대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을 없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해온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7월을 기점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정생산지원센터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꾸준히 청정 생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국내 전자제품 관련 생산업체는 1만2000∼1만3000여개에 달하지만 센터가 직접 지원하는 기업수는 전체의 2∼3% 내외에 그치고 있다”며 “인식부족 등에 따른 예산 확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육성 발전시켜 동반자 역할을 해야할 대기업들이 여력이 부족한 납품업체(중소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기준을 지키라고만 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더욱 절실한 문제는 실태파악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와 대기업이 모두 참여해 청정산업 확산에 나서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 소장은 “청정사업은 단순히 실익만을 따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이제는 기업 윤리 측면에서 접근해야한다”며 “센터는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생태산업단지(EIP:Eco Industrial Park)’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재제조 산업 육성’과 국제 환경 협력사업인 ‘에코프로피트’, 기술이전확산 사업 등을 꾸준히 추진해 청정생산에 일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해물질 어떤 것이 있나
유럽연합(EU)이 발효하는 RoHS에는 전기·전자 제품에 사용되는 중금속인 납(Pb)·수은(Hg)·6가크롬(Cr6+)·카드뮴(Cd)과 비롬계 난연제인 폴리브롬화비페닐(PBB)과 폴리브롬화비페닐에테르(PBDE) 등을 유해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EU 회원국내에서 유통되는 전기·전자 제품에는 이들 유해물질을 일정 허용 기준치 이상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6대 유해물질의 규제 물질 허용 기준치는 납·수은·6가크롬·PBB·PBDE 등은 1000ppm 미만, 카드뮴은 100ppm 미만 등이다.
이를 기준으로 삼성전자·LG전자·소니·노키아·모토로라 등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이 자체적인 유해물질 제한 규정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에코 파트너(Eco-Partner)’ 및 ‘에스 파트너(S-Partner)’, LG전자와 소니는 ‘그린 파트너(Green-Partner)’ 등 등 파트너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각 기업들은 이 제도를 통해 전자 완성품을 청정 생산하는 기준선으로 활용하고 부품 공급업체들에는 유해물질 가이드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유해 물질 규정은 RoHS의 6대 유해물질에 비해 광범위하다. 특히, 소니는 6대 유해물질을 아예 금지시켰으며 석면·아조계화합물·포름알데히드·유기 주석 화합물 등도 금지품목에 포함시켰다.
◆소프트웨어·인터넷 유해환경 어떻게 대응하나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에서의 유해환경은 곧 산업자체의 붕괴를 뜻한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해당업체의 창의적 자산을 가로채는 결과를 가져오며 나아가 국가 신인도에도 치명타를 입힌다. 인터넷 또한 익명성을 무기로 과도한 언어폭력이나 비속어 남발 등 반사회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IT사회에서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다.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 차단 방안으로 가장 먼저 불법복제가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우선해야 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가 범죄 행위라고 인식하는 한 사용자는 100명중 7명에 불과하다. 절반 가까운 49.8%는 SW 불법 복제에 대해 범죄 행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15.3%는 아예 범죄 행위가 아니라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가 범죄행위라는 인식의 확산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두번째 현실적인 가격의 적용이다. 소비자들이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주된 이유는 정품 가격이 비싸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사내 컴퓨터에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경험이 49.6%로 나타났다.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정품 가격이 비싸서’라는 응답자가 37.4%로 가장 많았다.
셋째로 기업 구매 예산 늘려야 한다. 해가 바뀌어도 기업의 소프트웨어 구매예산은 별 차이없다. 지난해 소프트웨어 구입 또는 업그레이드와 관련된 예산은 지난해 대비 ‘차이 없다’는 답변이 57.2%로 가장 많았다. 반면 ‘증가했다’는 34.1%, ‘감소했다’는 8.8%였다.
인터넷 유해환경 예방으로는 ‘하지마라’에서 ‘제한적 허용’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정에서 컴퓨터를 거실로 내놓고 인터넷 활용에 대해 일전 시간만 허용하는 가정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특히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보다 긍정적 효과로 유도하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넷과 온라인게임이 대세인 상황에서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자녀들의 ‘정보 낙후’ 결과를 낳는다.
또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이버 공간에서 대화하는 방식도 올바른 인터넷 사용을 유도하는 길이다. e-스포츠가 공식화 되고 정부에서도 적극 장려하는 상황이므로 자녀의 관점에서 함꼐 호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넓게는 학교 ‘네티켓’을 정규교육으로 넣거나, 온라인게임의 바른 사용을 유도하는 것도 바람직한 사이버교육이다. 정보문화진흥원이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