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구자신 쿠쿠홈시스 사장(1)](https://img.etnews.com/photonews/0601/060109020228b.jpg)
(1)내가 선택한 길
1980년대 초반 전기밥솥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하는 우리 여행객들마다 경쟁이나 하듯 일제 전기밥솥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주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코끼리 전기밥솥’이 문제의 주인공이다.일제 전기밥솥이 빈부격차의 대명사로까지 꼽히자 대통령까지 나섰다. 전두환 대통령은 “밥을 지어먹는 우리나라가 전기밥솥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느냐. 당장 전기밥솥부터 자체 개발하라”면서 가전업계와 정부 산하기관에 불호령을 내렸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나 할까!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 전기밥솥 시장에서 일제 브랜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뿐만이 아니다. 쿠쿠홈시스는 3년 전부터 국내 최초로 ‘쿠쿠’라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전기밥솥 종주국’ 일본으로 역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전기밥솥 사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1965년 대학 졸업 후 쌍용그룹에 입사했는데,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력 때문인지 정치인인 창업주 성곡 김성곤 회장(1975년 작고)의 비서로 발탁됐다. 김 회장이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10여년간 비서를 지내면서 한국 정치의 풍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몇 년간은 정치에 흥미도 있고 개인적인 취향도 가깝고 해서 만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정치의 현실이 나의 올바른 생각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치 말고 국가나 사회에 작은 부분이나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분야는 없을까?”하고 번민하던 중 ‘사업’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1974년 회사를 그만두고 성광통상과 삼신정밀공업을 잇따라 창립,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적잖은 고배 속에 ‘더 큰 사업을 향한’ 자본과 경험을 착실히 쌓아나갔다.
성공의 열쇠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던가. 마침내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LG전자(당시 금성사)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소형가전을 생산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전기밥솥 납품계약을 따내자 마자 성광전자(쿠쿠전자의 전신)를 출범시켰다. 1978년 11월, 37세 때 이렇게 전기밥솥 사업에 뛰어들어 긴 항해를 떠났다. 지나간 27년간의 항로를 반추해 본다. 일제 코끼리 전기밥솥을 뒤로하고 삼성, LG 등 대기업까지 따돌리며 국내 전기밥솥 시장 부동의 1위에 오르기까지 그야말로 격랑의 연속이었다.
크고 작은 파고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초지일관 경영방침의 요체로 삼고 있는 ‘고객 최우선주의’와 ‘기술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필자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설령 고객이 틀렸더라도 고객의 생각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회사가 고칠 부분이 없는지를 먼저 살펴보라”고.
사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나는 끈이 있는 구두나 헐렁한 구두를 신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허리띠도 배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바짝 조인다. 항상 뛸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1987년까지 고려대 교복 바지를 입고 출근했는가 하면, 티슈 한 장을 4등분해서 썼다.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려던 게 그만 습관이 돼버렸다. 나는 이렇게 평생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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