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기기자의 고수에게 배운다]워크래프트3(상)

“휴먼은 이 맵에서 오크를 상대할 때는 무조건 패스트 멀티를 해야 해요. 타워를 건설해 방어하면서 하이테크 유닛으로 승부하세요.”

‘워3’ 사부 김대호 선수를 배틀넷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번에 배운 기본기를 어느 정도 연습한 터라 오늘은 실전을 통해 배우기로 했다. 하지만 첫경기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지고야 말았다. 당연히 사부의 질책이 쏟아졌다.

“풋맨은 아무리 많아도 오크의 그런트에게 밀려요. 매지컬 유닛이 안나오면 블레이드마스터에게 농락당할 수 밖에 없는데 초반부터 맞서는 바람에 유닛을 조금씩 잃었고, 테크도 느리고, 처음부터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였어요…”그는 빠른 앞마당 멀티 후에 테크트리를 올려 그리폰과 프리스트 조합 또는 매지컬 휴먼 조합으로 전투에 임할 것을 요구했다. 영웅은 사냥을 하더라도 상대를 만나면 절대 싸우지 말라는 주문도 했다.

이제 겨우 싱글플레이 모드에서 컴퓨터를 상대로 연습을 해온 초보가 33레벨의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와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첫 경기에서의 무참한 패배를 거울삼아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2번째 경기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밀리샤까지 동원해 빠르게 앞마당 멀티를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중앙에 위치한 체력의샘에서 무리하게 대호의 그런트를 잡으려다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은신한 상태에서 뒤로 돌아온 대호의 블레이드마스터에게 아크메이지가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대호는 내 영웅이 부활되기도 전에 2번째 영웅인 쉐도우헌터까지 대동해 본진을 밀고 들어왔고, 영웅이 없는 나는 모든 일꾼을 밀리샤로 동원해 저항했지만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더구나 대호는 이미 레이더와 코도비스트까지 속속 합류시키고 있던 터라 이후의 저항은 그저 시간끌기에 불과했다.

“멀티까지 해놓고 왜 싸우셨어요?”, “영웅이 안보이길래…” 할말이 없었다. 그렇게 싸우지 말라고 했건만 순간적인 욕심에 일을 그르친 내게 사부의 질책은 너무나도 따갑게 이어졌다. 멀티했으면 타워 마구 지어 방어하면서 테크를 최대한 빨리 올리셔야죠. 풋맨은 많이 뽑지 말구 고급유닛 만드세요.”

나의 허접함에 실망이 컷는지 대호는 한차례 강의를 더 하더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했다. “안돼 안돼∼”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못해보고 일방적으로 밀린 것이 너무 서운해 마지막으로 한판만 더 하자고 떼를 썼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다짐 후에 3번째 경기를 치를 수 있었던 나는 두눈을 부릅뜨고 정신 없이 손을 놀렸다.“이번에는 꼭 뭔가를 보여주고야 말리라!”

난 가르침을 받은 대로 알터와 배럭, 팜 등을 타운홀과 1자가 되도록 지었다. 상대의 견제플레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심시티였다. 그후 풋맨 2기가 나오기를 기다려 일꾼 4기를 밀리샤로 변신시켜 선영웅인 아크메이지와 함께 앞마당으로 향했다. 빠른 멀티를 위한 휴먼의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워터엘리멘탈에게 몸빵을 시켜 유닛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앞마당을 청소하고 데리고 온 일꾼 4기로 멀티를 했다. 그러는 사이 아크메이지는 중앙 몹 사냥을 하지 않고도 2레벨이 됐다.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앞마당 멀티에 타워를 4개나 지었다. “이정도면 방어는 완벽하겠지 ㅎㅎ”

사냥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프리스트와 그리폰을 대량으로 생산해 대규모 전투를 벌여볼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킵업을 완료하자 마자 아케인생텀을 짓고, 킵을 캐슬로 업그레이드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무작정 업그레이드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배럭을 하나 더 건설해 풋맨을 더 뽑아두었다.

자원이 무려 2500이나 남아 돌고 있어 이를 소비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케인생텀이 완성되고 이제 막 프리스트를 생산할 무렵 앞마당 멀티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호의 대군이 쳐들어온 것이었다. 부랴부랴 유닛을 이끌고 멀티방어에 나서려고 했으나 막상 대호의 유닛과 만나자 절대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호의 선영웅인 타우렌칩턴은 이미 5레벨을 달성했고 2번째 영웅인 쉐도우헌터도 4레벨이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주력 유닛이 그런트가 아니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트롤헤드헌터였다.

내 영웅인 아크메이지는 그제서야 겨우 3레벨. 영웅레벨은 물론이고 유닛수에서도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조금만 기다리면 프리스트와 그리폰이 쏟아져 나올테니 잠시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애써 건설한 멀티가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모며 후퇴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나의 바램에 불과했다. 대호는 내가 유닛을 모을 틈조차 주지 않고 멀티를 민 병력을 그대로 본진으로 보냈다. 더구나 본진에는 트롤버서커가 합류해 힐링워드까지 꼽으며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러면서 속속 6레벨을 달성한 대호의 영웅들은 궁극기까지 써가며 내 본진을 철저히 유린했다.“아이고∼” 비명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갖 생산된 나의 2번째 영웅인 블러드메이지는 나오자 마자 스킬 한두번 써보는데 만족한 채 전사했고, 곧이어 아크메이지가 전사했다는 메시지도 떳다. 나는 결국 “조금만 시간이 있었더라면 유닛 조합을 갖추고 제대로 된 싸움을 한번 해 볼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만 남긴 채 또다시 GG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프로는 무섭구나 하는 생각만 머리속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자원을 남기지 말고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하구요, 병력을 계속 해서 움직여 주는 연습을 하세요. 병력을 만들 때는 상대방한테 맞춰야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물량이죠. 명심해서 연습하세요.” 대호는 이렇게 또다시 기본을 강조하며 배틀넷을 떠났다. 역시 고수에게의 도전은 녹녹치 않았다.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고수와의 경기는 한경기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바로 리플레이를 통해서다. 사부와 헤어진 후 곧바로 저장해 둔 리플레이 파일을 반복해 실행시켰다. 진정한 배움은 말로 듣는 것보다는 실제 경기 모습을 반복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리플레이파일을 감상하면서 아주 중요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닛의 체력을 살피고 있었다. 초반 사냥시에는 체력이 빠진 그런트나 트롤헤드헌트는 물론 영웅까지도 체력의 샘에 보내 체력을 채우도록 했다. 또 테크트리를 올리는데 있어 기본이 되는 그레이트홀의 업그레이드 타이밍은 계산에 의한 최적빌드를 통해 아주 빠르게 실행시켜줬다. 그러다 보니 사냥을 통해 영웅의 레벨을 올리면서도 항상 나보다 앞선 테크트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하나. 그의 자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100선을 왔다갔다 했다. 그만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의미다. 내가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냥보다는 자원을 놀리지 않고 업그레이드를 하는데 많은 신경을 써야했었다.

실제로 마지막 경기에서 대호는 내가 멀티를 하고 난 이후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이미 그는 모든 시작지점과 주요 거점에 대한 사냥을 마치고 자신도 앞마당 멀티를 돌리고 있었다. 또 배럭은 물론 스피릿릿지와 부두라운지 등을 하나씩만 건설해 꾸준히 유닛을 생산해 주며 업그레에이드까지 충실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러고도 할 것이 없자 러시를 들어온 것이었다.

이런 상태였다면 설사 내가 프리스트와 그리폰 조합을 끝냈더라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대호는 막판에는 실제 전장에는 투입하지 않았지만 타우렌까지 2기를 생산해 두고 있을 정도로 빨랐다. 레벨과 테크트리는 물론 유닛 조합과 업그레이드, 물량에서조차 내가 대호를 앞선 부분은 단 한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처참한 패배를 통해서도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이전에는 컴퓨터를 상대로도 설정을 중수급 이상으로만 해도 쩔쩔매던 것이 이제는 아주 여유롭게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덕분에 나는 그날 밤 늦게까지 컴퓨터를 상대로 그동안 배운 것들을 마음껏 구사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