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수가 되고 싶어 한다. 싸움에 지고 싶고, 맞고 싶고, 낙오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싸움의 기술’은 무한 생존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상업적으로 매우 유효적절한 소재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의미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말하는 싸움의 의미가, 단지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그래서 싸움의 승자가 단순히 주먹이 강한 자를 뜻하는 것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싸움의 기술’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을 강조하면서 싸움의 대사회적 의미 확산을 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뒷골목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가십거리의 영화화에 지나지 않는다. ‘싸움의 기술’에 등장하는 고수는, 자기인내를 통해 연마한 무술의 달인도 아니고 육체의 살아있는 부딪침을 통해 삶의 지혜를 획득한 은자도 아닌, 그저 뒷골목 건달들의 패싸움에서 생존한 건달일 뿐이다.
싸움의 기술은 그러므로, 그의 몸속에 축적된 노하우, 단순한 기술 그것뿐이다.
고수의 신분을 숨기고 저자거리의 속인들 사이에 숨어 있는 은자와, 고수가 되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풋내기의 만남은, 버디 무비의 아주 익숙한 공식이다. ‘싸움의 기술’은 각본에서나 연출에서나 취약부분을 수없이 드러낸다. 그나마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게 기적같이 생각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고수 오판수 역의 백윤식의 능청맞은 연기와 공고생 송병태 역의 재희의 풋풋함이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영화 보는 재미가 없어질 뻔 했다.
신인 신한솔 감독의 문제점은, 연출이 지나치게 현상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의 깊은 곳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능력이 모자라고, 강약을 주면서 내러티브를 입체적으로 끌고 가는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싸움의 기술’은 제목 그대로 저잣거리의 가십성 이야기를 얽어서 한 편의 영화를 구성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전적으로 연출의 잘못이다. 더구나 카메라는 때로 상식을 넘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쇼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주인공 두 인물을 잡는 데, 한 사람은 중심에 놓고 다른 한 사람은 어떻게 얼굴 반쪽만을 프레임 끝에 걸칠 수 있는가? 아무리 그 쇼트의 핵심이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이것은 기본기의 문제다.
오판수의 삶을 통해 가시적인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아픔이나, 세계관의 확대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결말이 너무나 허무할 것이다. ‘싸움의 기술’은 그저 주위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한 고등학생이, 숨어 있는 고수에게 싸움의 비법을 전수 받아 맞지 않고 상대를 꺾을 수 있는 힘을 기른다는 이야기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배우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면서 겨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연출력 부재의 영화, 아이디어만 있고 그것을 다듬어 세공할 줄 모르는 초보 연출의 미숙함이 극대화 된 영화가 ‘싸움의 기술’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