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5시]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이해가 안됩니다. 처음에 했던 약속은 이미 사라졌어요. 꼭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말았어요.”

한 개발자의 한숨 섞인 목소리다. 그는 작년부터 많은 인기를 모았던 한 캐주얼 게임을 개발했다. 당시 그 회사는 대표작이 없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별다른 기대없이 이 게임을 조용히 공개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큰 호응을 얻으며 유저들이 몰려 들었고 회사는 이 게임 하나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 게임을 개발한 당사자들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경영진들은 “게임만 뜨면 이익의 10%를 나눠 주겠다”고 수차례나 약속했으나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고 한다.

 개발 당시 연봉이 너무 적어 어려움을 겪었고 타 회사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음에도 응하지 않고 의리와 자존심을 지켰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게임업체들은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임금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실적에 따라 개발자에게 성과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개발에만 전념했던 ‘우직한’ 개발자들이 경영진들에 의해 배신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당초 개발자와 약속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돈을 벌 만큼 번 곳에서 그러한 일이 자행되고 있어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경영자와 사원들은 계약관계로 맺어져 있다. 그러나 이 계약 말고도 경영진과 사원은 신뢰라는 더 큰 틀에서 하나가 돼야 한다. 비록 문서로 작성해 서명하지 않았다고 해도 경영진이 말과 행동으로 약속을 했다면 이것은 계약서와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그 계약 관계는 더이상 힘을 발휘하자 못하고 만다. 또다시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한번 속았던 사원들은 경영진의 말을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다.

 게임 업계의 임원들은 입버릇처럼 ‘괜찮은 개발자 어디 없느냐’고 말한다. 일을 시킬만 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라는 것이다. 이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하기 전에 과연 개발자들 성심과 신의로 대해 왔나를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 세상에 돈만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김성진기자 har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