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구자신 쿠쿠홈시스 사장(2)](https://img.etnews.com/photonews/0601/060111111423b.jpg)
(2)시련의 나날
성광전자(쿠쿠전자의 전신) 출범 3년째인 1981년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왔다.
우리 회사가 대기업에 납품한 전기보온밥솥이 화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팀은 제품에 결함이 있는지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화재를 일으킬만한 결함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화재 현장에 있던 전자제품 중 유일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명을 쓴 것이었다. 억울하고 답답했다. 급기야 주문이 끊기고 공장가동까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사건 발생 2개월 후 울며 겨자 먹기로 시중에 유통중인 전기보온밥솥 회수에 들어갔다. 회수한 밥솥만 무려 6000대. 회수된 밥솥들은 공장 앞 마당에 쌓아 놓았다. 모든 직원들이 아픔을 잊지 않고 되새기길 바라는 취지였다. 어쨌든 당시로서는 3개월 매출과 맞먹는 3억원의 손해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1년간 판매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후유증은 3년이 지나도록 치유되지 않았다. 금전적인 손해보다 억울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2년여 뒤 사내 한편에서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대기업 OEM 업체로서 자체 브랜드를 준비하는 것은 모험이었다. 모든 일은 사내 ‘아지트’에서 극비리에 진행됐다. 자체 브랜드용 신제품 개발은 기존제품의 문제점을 알아내는 것에서 출발했다. 기존의 전기보온밥솥은 취사버튼만 누르면 밥을 손쉽게 지을 수 있지만 밥 맛이 떨어졌다. 이때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가스를 이용한 압력솥이었다. 밥을 찰지고 맛있게 지어내는 가스압력솥을 자동조절할 수 있는 전기압력밥솥을 만들어 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2년여 만에 마침내 파일럿 제품이 탄생했다. 이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경쟁사에서 먼저 전기압력밥솥을 전격 출시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준비해 온 직원들이 실망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1993년 3월 전기압력밥솥 연구가 재개됐다. 압력밥솥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라 모든 연구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적정한 압력을 찾기 위해 압력을 달리해 밥을 지어서 맛보는 수밖에 없었다. 쌀 50가마니에 달하는 밥을 지어내고, 먹어보길 반복하는 고단한 과정이었다. 어렵게 취사시 적정압력을 찾아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전기압력밥솥의 내솥에는 높은 압력이 가해지므로 일반 전기밥솥보다 두꺼운 내솥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전기밥솥 내솥 중에서 가장 두꺼운 것을 골라 내압력 실험을 실시했다. 내솥 바닥이 힘없이 찌그러져 버렸다. 압력기능에 맞는 단단한 내솥이 따로 필요했다. 헤아릴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내압력 실험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밥맛은 기대 이하였다. 연구가 난항에 부딪히자 연구진은 전국 각지의 밥맛 좋기로 소문난 식당을 누비며 정보수집에 나섰다. 하지만 쌀의 조건에서 물을 넣는 양까지 비결들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팀은 가마솥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예로부터 가마솥 밥은 찰지고 맛도 좋다고 했다. 가마솥 밥이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결은 바로 가마솥의 뚜껑과 둥근 바닥에 있었다. 가마솥 뚜껑은 무거워서 적당한 압력을 유지해 주고, 둥근 밑바닥은 물이 위아래로 빠르게 순환하는 대류현상을 만들어 열전도율을 높여준다. 연구팀은 가마솥 원리를 전기압력밥솥에 적용시켰다. 우선 가마솥처럼 볼록한 모양의 내솥으로 교체했다. 예상대로 열전도율이 1.5배 이상 높아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가마솥 원리를 적용한 한국형 전기압력밥솥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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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홈시스는 2002년 업계 처음으로 ‘전기밥솥 종주국’ 일본에 전기압력밥솥을 수출하게 된다. 사진은 2001년 일본 마쯔시타(내쇼날)와 OEM 납품계약을 체결하던 당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