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산업 역사 한 켠에는 ‘○○○코리아’가 함께 숨쉬고 있다.’ 한국 전자산업의 발전사는 국내 토종기업과 다국적기업의 협력과 경쟁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왔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과 해외자본 유치는 60년대와 70년대 산업기반과 자본이 없던 한국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80년대 들어 한국 전자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속에서도 다국적기업들은 매출 확대를 위한 ‘실속’과 동반성장하겠다는 ‘배려’로, 한국 산업 한귀퉁이에서 시대의 변화를 지켜봤다.
특히 반도체와 부품분야의 다국적기업들은 국내 업체들과 유착관계를 유지하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국내업체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호랑이’를 키워 경쟁관계를 형성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품 소재분야 다국적기업들은 국내 산업을 키우며 동반 성장해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기억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전세계적으로 외국 투자유치 붐이 불면서 다국적 기업의 위상은 한층 당당해졌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투자를 동반한 진출은 ‘맨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양상으로 변화했기 때문. 국내에 진출하거나 터를 잡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시장을 겨냥했던 과거와 달리 한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려 하고 있다. 다 만들어진 제품을 팔려는 모습보다는 한국의 첨단 전자·IT분야 기술력과 연계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퀄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퀄컴은 한국과의 성공적인 파트너십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한국은 퀄컴과의 협력으로 휴대폰 강국을 실현할 수 있었고, 퀄컴은 세계적인 팹리스반도체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필립스도 과거 판매 중심의 한국시장 공략을 전환하고 있다. 지난해 말 방한한 프란스 반 하우튼 필립스 반도체사업부 CEO는 “한국에 대한 투자는 제조보다는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한국은 기술 혁신의 거점으로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은 세계에서도 호평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필립스는 한국에서 휴대폰·모바일 TV·MP3 등 멀티미디어 반도체와 블루투스·WLAN·근거리통신 등 차세대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텔 역시 더 이상 한국을 CPU를 팔기 위한 단순한 시장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의 발전된 유비쿼터스 기반을 바탕으로 ‘디지털 홈 시대를 여는 동반자’로 한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국내 다국적기업 역사에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빼놓을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제조업 기반까지 갖고 있는 국내법인 TI코리아는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본사와 현지의 장점을 결합한 경영기법을 도입, 국내업체와의 ‘윈윈’ 경영에 힘쓰고 있다. 외국기업으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IT코리아는 2004년 국내 매출만 1조4000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3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해 2004년도 5000억달러 수출탑 수상에 이어 2년 연속 수출 기록 경신에 성공했다.
지난 99년 삼성전자의 부천 전력용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된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도 국내 최대 규모의 전력용 반도체 전문회사를 표방하며 국내 세트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정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다국적기업 CEO들을 초청해 한국산업발전을 같이 논의한다. 그들의 시각이 바로 세계가 한국을 보는 시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국기업인협회(회장 신박제)의 위상도 과거 어느때보다 높다.
이제 다국적기업들이 그리는 미래 청사진은 그들의 계획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한국 산업발전의 로드맵이기도 하다. 그만큼 다국적기업은 이미 우리 산업 깊숙히 파고 들어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우리가 간과해서 안될 것은 바로 이들과의 협력은 고용·유관산업 발전·국가신인도 제고 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세계가 다국적 기업 유치에 목숨을 걸고 뛰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etnews.co.kr
◆정보가전업체들이 보는 한국
국내에 진출한 정보가전 분야 다국적 기업에게 한국은 넘기 어려운 산이다. 하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외산’이 인정받던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대단한 변화다. 삼성·LG전자가 세계적인 가전회사로 우뚝섰고, 국내 소비자 수준 역시 첨단을 달리면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고 때문이다.
하이얼이 국내 정보가전의 발전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올림푸스나 코닥, 후지필름, 캐논 등 세계적인 디지털카메라 전문회사가 국내 소비자 의견을 제품 개발에 적극 수용하며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덕분에 정보가전 관련 다국적 기업들의 올 목표는 국내 실정에 맞는 현지화 전략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이를 통해 본사의 글로벌 전략을 가속화하는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한국에서 시장성과 기능성을 검증받은 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형태의 글로벌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LCD 패널을 국내에서 생산중인 소니가 투자 확대 계획을 밝힌 것을 비롯, LCD TV·MP3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 등 전 분야에서 현지화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이얼도 국내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에어컨·냉장고·노트북을 개발하고 있으며, 올해 국산 제품을 OEM으로 해외에 소개할 예정이다.
이외에 필립스·스일레트로룩스·밀레 등도 올해 특화된 현지화 및 프리미엄 전략으로 국내 정보가전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전국망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
◆산업전자업체들이 보는 한국
‘한국을 거점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다.’
산업전자 분야 주요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서 다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경쟁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아태지역은 물론 세계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적극적인 글로벌 전략을 새해에 일제히 가동한다. 이들은 그간 국내 시장서 국내 업체, 고급인력을 활용한 R&D를 강화해 그룹내 세계 최고 상품을 국내서 만들어내고 이를 해외에 다시 내다파는 형태의 글로벌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제외한 국내 생산설비 투자는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건설경기도 침체됐지만 그간 쌓아온 R&D 파워를 활용한 사업의 질적성장을 본격화한다는 전략이다.
한국하니웰의 경우엔 공장자동화 사업의 아태지역 거점으로서 일본시장 개척을 추진하는 등 역할을 확대해 주목된다. 한국하니웰은 또 CCTV분야와 홈네트워크 분야에서 그룹내 1위 지위를 확고히 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LG와의 지분관계를 정리하고 새출발하는 오티스엘리베이터도 중앙연구소를 통한 뉴도어매커니즘 사업 등을 통해 글로벌 사업체의 R&D 중심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며, 한국지멘스도 국내 메디컬 R&D센터를 통한 의료기기와 IT와의 결합을 국내서 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시장에 대한 맞춤형 토털 솔루션 제공 등 밀착서비스 강화도 새해 주요 목표중 하나. 한국텍트로닉스는 기존의 사업을 제품단위별이 아닌 토털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사업전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로크웰삼성오토메이션도 통합형 솔루션을 제공해 전문화된 자동화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