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리 잃어가는 오디오 전문기업

 ‘태광에로이카, 롯데파이오니아, 인켈’.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오디오업계를 평정한 주역들이다. 당시 인켈 점유율은 35%를 넘었고, 롯데와 태광도 각각 18%, 10%의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이들을 가리켜 ‘오디오 3인방’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들 오디오 전문기업의 명맥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다. 태광이 3∼4년 전 오디오사업을 정리한 데 이어 롯데도 작년 12월로 오디오 및 생활가전 부문을 정리했다. 그나마 아남과 이트로닉스(구 해태전자, 인켈)가 남아 있지만 아남은 오디오 전량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고, 이트로닉스는 현재 매각작업중이다. 새 주인을 맞게 되면 오디오 전문기업이라는 위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오디오 전문기업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은 오디오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으로 가격경쟁력마저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놀이문화’가 다양해지면서 가정에서 음악을 듣는 층이 줄어든 데다, MP3플레어와 같은 휴대형 오디오가 가정용 오디오 시장을 대체한 것. 여기에 저가의 중국산 오디오와 가격을 맞추는 것도 어려워 업계에서는 “중국 칭다오와 톈진은 오디오 천국”이라며 “10만원대 초반의 미니 컴포넌트는 어떤 중국 제품을 소싱하느냐가 업계 경쟁력”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다.

 롯데전자(롯데알미늄전자사업부)가 오디오 부문을 정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롯데전자는 작년 10월경 모 회계법인에 회계감사를 실시했다가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2009년까지 오디오 부문을 존속시킬 경우 적자가 400억원이지만, 청산시에는 적자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결과적으로 롯데전자는 작년 12월 31일로 전체 직원 90여명 중 40여명을 구조조정하고 방송장비 및 IT 사업에 전념하기로 했다. 필립스 TV 총판 사업도 중단했다. 대신 AS를 담당하던 20여명은 분사해 기존 롯데전자 제품에 대한 AS를 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태광산업은 전자사업부에서 맡던 오디오 부문을 완전 정리했다. 1978년 천일사전자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전자산업에 진출한 태광산업은 초소형 마이크로부터 미니, 하이파이 오디오, 전문 음악 마니아를 위한 하이엔드 오디오 등 오디오 전 부문에 걸쳐 생산해왔으나 지금은 태광서비스센터를 통해 AS만 할 뿐, 방송장비 전문회사로 탈바꿈했다.

 이트로닉스는 ‘인켈’과 ‘셔우드’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매출 대부분은 데논·온쿄·마란쓰·파이어니어 등 일본 오디오 브랜드의 OEM에서 나온다. 특히 올해는 매각이라는 최대 변수가 남아 있다. 오디오 관련 기술력이 우수하고, 가수 윤도현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지만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풍안방직 컨소시엄과 H&T에 ‘칼자루’가 넘어갈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국내 오디오 산업이 주도권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으로 넘어갔다. 업계 관계자들은 “디지털방송이 보편화될수록 우수한 음질, 음향기술이 필요하다”며 “과거 오디오 전문기업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나와야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