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업계는 환경부의 ‘자원순환법’ 입법 예고와 관련, 전기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 행정’의 산물이라며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또 기업 비밀에 해당하는 특허·디자인 등이 공개돼 기업 연구개발(R&D)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특히 EU를 제외한 다른 경쟁국이 환경규제 입법에 신중한 상황에서, 한국이 두 번째 강제 규제국으로 앞서 나서는 것은 국내 전자 업계의 비용 부담 증가뿐 아니라 수입품에 대한 내국법 적용으로 인한 통상 마찰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업종 특성 무시한 무리한 통합 관리=전자 업계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와 전자 제품이 서로 다른 업종이고 환경적으로도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무리하게 통합 관리하려는 시도가 자원순환법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강홍식 한국전자산업진흥회 국제환경팀장은 “두 제품군을 동일 법규로 규제할 경우 업계의 혼란과 법 운용의 효율성 저하가 우려된다”며 “EU도 전기전자와 자동차는 별도 분리해 관리하고 있으며, 일본도 두 제품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자동차는 사용 재질 및 부품 종류가 통일돼 있고 회수 채널이 단순한 반면, 전자 제품은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특히 자동차는 재사용 시장이 형성돼 있으나,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 제품은 사실상 부분품의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 이재영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사무관은 “전기전자와 자동차의 상황이 다른 부분은 하위법령에서 별도로 구분해 규정하면 된다”며 “관리기관도 전기전자와 자동차를 별도로 둘 예정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제품 경쟁력 저하 우려=자원순환법 제10조는 ‘유해물질 분석 방법, 재활용 가능률, 평가 방법 등을 고시해야 한다’는 제품 사전 등록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제품 및 부품을 사전에 등록토록 해 정부가 직접 관리한다는 것으로, EU에서조차 찾아 볼 수 없는 강력한 규제라고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등록이 의무화되면 비용 부담 증가로 인한 제품 출시 지연, 국제 경쟁력 약화, 특허 등 기업 비밀 유출의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제7조와 8조에는 ‘제품 환경성 심의위원회 구성과 전기전자 제품의 재질·구조 개선’이라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재질 구조 개선은 제품의 경쟁력 자체이며 특허·디자인 등 기업 비밀에 관한 사항은 기업의 몫”이라며 “다양한 제품과 모델에 획일적 기준을 요구하고 평가 심의하는 것은 창의성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강제 규제는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꼴’=전자 업계는 최근 청와대 등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환경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환경 대응이 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는 것에 이견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업계는 “전기전자 제품의 주요 생산국인 미국·중국·일본 등은 EU와 달리 환경 규제 관련 법 제정에 신중하다”며 이는 법적으로 강제화할 경우 현실적으로 경쟁력 약화와 시장 왜곡이 발생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는 탄원서를 통해 “이 법(안)은 근본적으로 환경 문제의 본질과 국제 사회의 동향 등 현실 인식 오류로 인해 법 체계 및 내용에서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며 “정부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업계가 이를 자율 준수토록 하며, 검증은 시장 기능에 일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전자 업계는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꼴’이 될 수 있다며, 이 법이 시행되면 국내 전자 업계에는 비용 부담 증가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등록 의무 등 수입품에 대한 내국법 적용으로 통상 마찰을 야기하는 등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며 산업 공동화가 가속되는 등 산업 전반에 걸쳐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