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정기임원인사 의미…기술직 배려 주목

 “변화보다는 안정적 경영기조를 이어가겠다.”

 11일 발표된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는 소기의 경영 성과를 달성한 현재 사장단을 대부분 유임하고 박종우 부사장을 디지털프린팅사업부 사장으로, 삼성물산 지성하 부사장을 상사부문 사장으로, 삼성서울병원 이해진 부사장을 삼성자원봉사단장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소폭에 그쳤다. 그러나 사장단 임원 외에 임원 승진 규모는 452명으로 평년과 비슷했다.

 ◇경영 악재 돌파 위한 부담 없는 인사=대내외로 환율과 유가, 미국 금리 등으로 불안정한 시점을 고려해 큰 변화보다는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게 삼성그룹 인사의 특징이다.

 삼성물산을 제외한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SDI 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사장단 이동을 배제했다.

 승진설이 나돌았던 이 회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도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인사는 인사에 대한 갖가지 추측을 일축했고 잡음을 최소화했다는 평이다. 4개월째 외유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임 사장, 성과와 업무 중심=삼성은 사장단 이동을 최소화한 배경에 대해 “대내외 경영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영의 일관성과 조직의 안정,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대과 없이 각사 경영을 이끌어온 현 사장단 진용을 유지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우 삼성전자 신임 사장은 지난 2001년부터 디지털프린팅사업부를 맡아서 포토프린터 등을 연이어 출시, 세계적인 일류 제품으로 성장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프린터사업을 성장동력 산업으로 인정, 대대적인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인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삼성코닝·삼성SDS·삼성건설 등의 경영관리 부문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 온 지성하 부사장은 삼성물산 상사 사장으로 내부 승진됐다. 진행중인 상사부문 구조개혁 작업이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사장·전무·상무 승진은 철저한 능력 중심=‘성과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정설은 올해도 통했다. 직위별로는 부사장 15명, 전무 85명, 상무 145명, 상무보 207명으로 성과와 능력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승진자 가운데 연구개발직을 포함한 기술직군 임원이 199명으로 44%를 차지해 ‘2005 삼성기술전’을 통해 선포한 ‘기술 준비 경영’이 이뤄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기술직 신임 임원 승진자는 99명으로 전체 신임 임원의 48%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삼성SDI는 능동형 OLED 사업 총괄인 정호균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 사업 강화가 예상된다. 지난해 상반기 구조조정을 거친 삼성전기는 기술총괄 고병천 전무와 부산공장장 김기영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테크윈은 전체 9명의 임원 중 디지털카메라 분야에서만 3명의 임원이 배출돼 화제를 모았다. 이 밖에 삼성코닝과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승진 인사가 상무급에 그쳤지만 제조업 특성을 반영하듯 기술 및 현장 중심의 승진이 대세를 이뤘다.

 삼성은 사장단 승진을 줄이는 대신 부사장·전무 등 고위 임원의 승진 규모를 역대 최대 100명 수준으로 확대함으로써 앞으로 삼성의 미래 경영을 주도해 나갈 차세대 CEO 후보군을 넓혔다.

 ◇삼성인상 수상자, 승진 케이스=‘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은 삼성전자 김종호 상무 등 5명이 승진하는 전통은 올해도 계속됐다.

 그룹구조조정본부 홍보팀 임대기 전무, 삼성전자 김광태 전무, 그룹 홍보팀 김준식 상무, 이종진 상무보, 한광섭 상무보, 삼성전자 노승만 상무보 등 그룹과 계열사 홍보맨들이 대거 승진한 것도 특징이다. 대내외 여건을 고려해 올해 삼성 전체의 이미지 관리가 관건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계열사 진출설이 나돌았던 이순동 홍보팀장(부사장)이 현보직 유지로 결론이 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삼성 관계자는 “올해의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할 수 있는 조직 체제 정비를 완료했다”면서 “이번 인사를 통해 성과주의 평가 기준과 보상 철학을 분명히 함으로써 조직 분위기를 활성화하고 최선의 경영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인사 이색 인물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임원 승진자는 삼성전자 북미 총괄 마케팅 담당 피터 위드폴드(52)다. 피터 위드폴드는 2002년 DM총괄 신규사업 담당 데이비드 스틸 상무의 임원 임명을 시작으로 5년간 외국인 출신 전문인력 임원 승진이라는 진기록을 낳았다.

 피터 위드폴드는 감성적인 마케팅 기법인 ‘Look & Feel 개념’을 도입하고 미국 유명 스포츠 스타와 함께하는 일명 ‘포시즌(Four Seasons of Hope)’ 행사를 기획해 미국 주류 사회의 대형 이벤트로 자리잡게 만든 인물이다.

 휴대폰 전문가인 김종호 전무 승진도 눈에 띈다. 현지 완결형 휴대폰 생산체제 구축을 통해 제조 경영 혁신을 이끌어 2005년 휴대폰 생산 1억대 돌파를 가능케 한 주인공이다.

 삼성전자 임영호 상무보는 세계 최초 50나노 공정 기술 및 신구조 개발, 16기가 MLC 낸드 플래시 제품 경쟁력 우위 확보에 기여한 공로로, 장태석 상무보는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박사급 핵심인력으로 6시그마 등 혁신 활동을 주도하며 7세대 LCD 라인의 공정 개발 및 양산 안정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아 승진 대열에 올랐다.

 삼성물산 김수용 상무보는 주요 반도체 라인 현장소장을 역임하면서 신공법 도입 및 공기 단축을 통해 반도체 조기 양산체제 구축에 기여해 승진 대상에 포함됐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