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국민 시선을 검찰로 옮겨 놓았다. 진위 공방이 장기화하면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민의 상실감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소중한 변화들이 우리 과학계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연구와 관련한 ‘윤리적, 법적, 사회적 함의(ELSI: 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를 찾기 위한 노력이 구체화하는 것. 우리 사회와 과학계가 황우석 사태가 준 교훈을 밑거름으로 삼아 텃밭(연구실)에 새로 뿌려야 할 ‘과학기술입국 씨앗’은 무엇일지 3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우리는 그동안 과학기술 개발과 연구만 생각했습니다. 과학기술 개발은 긍정적이지만 새로운 리스크도 항상 생겨납니다. (과학적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관리하며 이해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입니다.”
정근모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의 일성이다. 정 원장은 2001년부터 한국위험통제학회(http://www.kosrig.or.kr) 회장이자 명지대학교 명예총장으로서 ‘명지대 과학기술사회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우리 과학계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자정능력 배양을 위한 씨앗을 뿌렸다.
그는 “미국은 백악관 내에 과학기술위험통제국을 만들었다”며 “정보기술·원자력·생명공학 등 거의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분석하고 대응해 나갈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내 과학기술계 최고 권위기관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수장의 노력에 부응, 과학기술 위험관리 선진국인 영국과의 협력을 본격 추진한다. 이를 위해 한국과학재단·명지대 과학기술사회연구소·주한 영국대사관·런던대학 등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ELSI를 확립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김주한 과기부 구주기술협력과장은 “산업화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한 영국은 위험관리를 사회적, 문화적으로 정착시킨 선진국”이라며 “3월 한·영 전문가 세미나를 계기로 영국의 선진 과학기술 위험관리시스템을 국내에 적극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내 세포응용연구사업단과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은 ELSI 확립 노력의 선구자다. 지난 2001년 이후로 △윤리지침을 제·개정 △수행과제 윤리성 검토 △윤리 관련 세미나 개최 및 보고서 발간 등의 형태로 사회적 함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공개적인 자세를 지향해 왔다. 연구논문 발표 시에도 자체적인 ELSI 수렴체계를 가동하는 것은 물론이다.
2004년 시범 도입해 2005년에 본격화한 기술영향평가도 소중한 씨앗 중 하나다. 특히 2005년 나노기술과 비접촉 전자태그(RFID)기술 평가를 통해 △나노입자의 인체 침투 및 축적 위험성 △사생활 침해 △기술개발에 따른 혜택의 편차 등을 우려할 점으로 지적하고, △안전보장을 위한 장치와 연구 가이드라인 수립 △사생활 추적배제권 보장 등과 같은 법적, 제도적 환경 구축에 힘써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과기계 한 인사는 “황우석 거짓 논문을 밝히는 데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 브릭(과기부 산하 한국과학재단 지정 생물학연구정보센터)처럼 정부가 성과를 독촉하는 과학기술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정부·국책연구관리기관·국책연구수행기관과 젊은 연구개발자가 모두 참여하고 고민하는 ELSI 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