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요 기업의 신년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 초일류 기업의 도약’이다. 우리 기업도 어느덧 세계 무대를 상대로 뛸 정도로 위상이 올라 갔다는 의미다. 토종 업체가 ‘우물 안 개구리’ 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쭉쭉 뻗어 나가듯 글로벌 기업도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왔다. 경쟁자로, 파트너로 함께 시장을 만들고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국내 경기가 주춤하면서 인기가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글로벌 기업에 ‘코리아’는 매력적인 곳이다. 먼저 어느 나라와 견줄 수 없을 정도의 탄탄한 IT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 하루 24시간이 무색하게 일할 수 있는 정열을 가지고 있다.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할 만한 기술력 있는 기업도 두루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의 신제품 ‘검증 시장(테스트 마켓)’으로 낙점을 받은 지 오래다. 게다가 올해는 국내 경기가 저점을 확실히 찍으면서 시장 전망도 밝은 편이다. IDC는 올해 국내 하드웨어·소프트웨어·IT서비스를 모두 합친 IT시장의 성장률이 4.6%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이 때문에 올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글로벌 기업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저마다 브랜드를 앞세워 공격 마케팅을 내걸고 있다. 일부 업체는 변방에서 벗어나 시장 주도 업체로 위상을 새롭게 다지고 있다. ‘일보 후퇴에서 이보 전진’을 위한 원년이라는 각오다.
가장 기대치가 높은 분야는 역시 컴퓨팅이다.
한국IBM·한국HP·한국썬 등 대표 컴퓨팅 업체는 조직을 새로 정비하고 제품 군도 강화하고 있다. 대규모 마케팅과 물량 공세를 통해 경쟁 업체를 완전히 따돌린다는 전략이다. 필요하면 인수합병도 불사할 태세다. 지난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본사 주도의 인수가 활기를 띠면서 적과 동지가 뒤바뀌는 상황이 일어났다. 국내에서도 시너지만 있다면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토종업체와 과감한 연합 전선을 구성한다는 전략이다. 이미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협력은 큰 이슈가 아니다. 한국IBM과 한국HP는 독립 솔루션 벤더(ISV) 협력을 강화하고 한국SAP 등도 국내 업체와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토종업체가 확실한 경쟁 우위를 가진 반도체와 디지털 가전 분야의 글로벌 기업은 파트너십 구축에 적극적이다. 대표 업체가 바로 퀄컴이다. 퀄컴은 이미 국내 업체와의 성공적인 파트너 관계로 ‘대박’을 터트렸다. 우리는 퀄컴과 협력으로 휴대폰 강국을 실현했고 퀄컴은 세계적인 팹리스 반도체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나라를 ‘돈벌이 시장’으로만 보던 필립스도 이제는 연구개발 허브로 삼고 있다. 필립스는 이미 휴대폰·모바일 TV·MP3 등 멀티미디어 반도체와 블루투스·근거리통신 등 차세대 분야 협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인텔도 유비쿼터스 기반을 바탕으로 ‘디지털 홈 시대를 여는 동반자’로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등 통신 분야 업체의 각오도 남다르다.
지난 2000년 사상 최고의 호황을 이룬 후 4년 넘게 지속되던 침체기에서 벗어나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회생의 수준을 넘어 ‘제2의 부흥기’를 맞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통신 사업자의 움직임이다. KT는 초고속인터넷 사업과 와이브로·IP 미디어 서비스 등 전략 사업에 3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파워콤도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35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상태다. SK텔레콤도 전체 와이브로 투자액 8000억원 가운데 1000억∼2000억원을 연내 앞당겨 투자키로 했다. 와이브로 기지국을 비롯한 대·소형 중계기, 안테나, 제어국 등 신규 도입 장비의 70% 이상이 올해와 내년에 도입될 예정이다. 시스코·루슨트·알카텔·쓰리콤 등 세계 통신 시장을 주도하는 주요 다국적 업체는 전열을 정비하고 벌써부터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올해 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인터넷과 게임도 연초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세계 10여개국에 진출한 구글의 국내 진출이 초읽기를 시작했다. NHN· 다음· 엠파스 등 토종 포털의 대응이 주목되며 어떤 식으로 인수합병이 진행될지가 최대 관심사다. 야후코리아도 멀티미디어 검색 업그레이드와 독점 콘텐츠 확보로 미디어 기능을 더욱 보강하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가 격돌한다. MS ‘X박스 360’은 2월에,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3’는 늦어도 하반기에 선보인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시장 공략 혹은 수성을 위해 치열한 마케팅 전쟁이 불가피하다. 이 밖에 EA·아타리·남코·THQ·세가·블리자드코리다 등 다국적 게임업체도 차세대 타이틀을 내놓고 2006년 게임 전쟁에 참여한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