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조용한 숲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 아름드리 침엽수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 강 가운데 솟은 바위에 올라 플라이 낚시를 힘껏 던지면, 사람 키의 예닐곱 배가 족히 돼 보이는 긴 낚싯줄은 이 세상 최고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려내며 강물로 떨어진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가물가물해도 이 장면만큼은 모두 또렷이 기억한다.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 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시계 초침처럼 바쁘게 사는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모든 직장인의 마음일 게다.
신재철 사장(58)이 돌아왔다. 2004년 3월, 8년간 맡아온 한국IBM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사실상 은퇴를 결심했던 신 사장이 기나긴 휴식을 마치고 이달 초 LG CNS의 새 수장으로 돌아왔다.
“회사를 은퇴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출발지와 돌아가는 비행기편 등 처음과 끝만 정해놓고 그 사이는 정해진 일정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생활의 120%를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직장생활만 해오다 일생 처음으로 꿈꿔오던 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신 사장.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정리하는 자기성찰의 시간은 물론 소진됐던 기운을 재충전할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그는 그 기간을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1년간의 휴식기를 가지며 지난 30여년간의 사회생활을 반추해 볼 수 있었다면, 최근 1년간 중소기업에서 일할 땐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LG CNS 사장 취임 전 몸담았던 중소기업 로고스시스템을 떠나며 신 사장이 남긴 말은 ‘중소기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에서 볼 수 없었던 중소기업만의 강점을 그곳에서 배웠다. “대기업이 조직적으로 일하는 곳이라면 중소기업은 시장과 함께 숨쉬는 곳이며, 긴장감 있고 변화에 빠르다”고 말한다.
신 사장은 부임 직후 직원들에게 세 가지 자세를 주문했다. 변화 시대를 맞아 미래를 준비하는 조직이 돼라, 일하는 데 프로가 돼라,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는 빠른 기업이 돼라 등이다. 여기엔 다국적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후 중소기업에서 또 다른 강점을 발견해낸 그만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지난 열흘 남짓 기간에 각 부서장을 통해 업무보고를 받으며 느낀 점이지만 우리 회사의 분위기는 인적자원이 훌륭해 믿음이 가고, 따뜻하고 정감 있는 조직, 일하는 데 있어서 팀문화가 잘 돼 있는 조직이라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한국IBM 재직 시절 합자회사인 LG IBM을 충분히 경험했고, 데이콤/LG화학 등의 사외이사를 두루 거치면서 LG를 거시적으로 관찰해왔던 신 사장은 LG의 문화를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 아직 회사의 모든 것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해 LG CNS에 대한 정확한 평을 내릴 수준은 아니라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그가 보는 회사의 첫인상은 일단 합격점이다.
신 사장의 골프 실력은 핸디캡 16 수준이다. 구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신 사장은 “골프 얘기만 하면 스트레스 받는다”는 농담으로 본인의 골프실력을 대변한다. 하지만 ‘함께 골프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으로 평가가 나있지만 잘 맞을 때도 종종 있어 오히려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주량은 30여년 베테랑급 IT경력에 비하면 초보 수준이라 말한다. 원래 못 마시던 것이 한때의 각골통한(?)의 노력으로 조금 늘기도 했지만 최근 2년간 독주를 멀리하고 와인, 맥주와 같은 약한 술을 마시다 보니 주량은 다시 줄어 ‘겨우 따라가는 수준’이 됐다고 신 사장은 말한다.
새 수장으로서 LG CNS가 어떤 회사로 평가받길 희망하느냐는 질문에 신 사장의 답변은 간단명료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 LG CNS에 맡기면 확실하다 이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어요?”라고 힘줘 말하는 신 사장의 말에서 32년 경력의 한국 IT업계 맏형에게서나 느낄 법한 강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최정훈기자@전자신문, jh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