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기를 기회로
1997년 ‘단군 이래 최대의 국가 위기’로 불렸던 IMF 한파가 닥치면서 숱한 기업이 사지(死地)로 내몰렸다. 쿠쿠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기가 급랭한 상황에서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기에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대기업의 주문물량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공장가동도 한때 중단됐다.
1986년부터 95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매출액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래를 하던 대기업으로부터 경기가 어려워 더 이상 일정량의 물량을 소화해 주기 힘들다는 통보까지 받았다. 1990년대 초반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려고 했을 때 못하게 했던 대기업이 이제서는 알아서 판매하라니…. 그 어려운 시기에 말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20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기업이 여기서 끝나는가? 눈물을 삼키며 찬바람 부는 거리를 무작정 걷기도 했다.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느냐, 회사 문을 이대로 닫느냐, 중대한 기로에 봉착했다. ‘나 하나 망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가 문을 닫으면 100여명의 직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쿠쿠가족’이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직원들은 눈물을 삼키며 “월급을 자진 삭감할 테니 구조조정을 하지 말고 열심히 자체 브랜드를 만들자”고 나를 설득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나가자는 뜻이었다. 나는 ‘IMF 위기’라는 절망적인 상황에 정면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경쟁업체가 보기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1998년 3월 회사 구내식당에서 밤을 지새며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마라톤 전략회의를 갖고 결의를 다졌다.
마침내 우리가 만든 제품에 ‘쿠쿠(CUCKOO)’라는 독자 브랜드를 붙여 시장에 내놓았다. ‘쿠쿠’라는 브랜드를 얼마나 빨리 시장에 알리느냐가 관건이었다. 드디어 생존을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새로운 유통망 확보를 위해 영업팀은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게다가 인지도도 전혀 없는 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현금거래 원칙이었다. 외상거래에 익숙한 대리점과 시장상인들은 현찰거래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10명의 영업사원들이 밤낮없이 뛰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찾아가고, 또 찾아가서 제품을 알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영업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어렵게 첫 번째 거래가 성사됐다. 현금거래를 하는 대신 마진율을 높게 해주면서 현찰거래도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거래처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업팀은 ‘쿠쿠 브랜드를 알려달라’고 아우성쳤다. 판촉물을 활용할 것인가, 광고를 할 것인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브랜드 성공을 위한 최고의 투자는 광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쿠쿠 브랜드를 출시한 뒤 한 해 동안 20여억원을 광고에 쏟아 부었다. 가까운 지인들은 ‘저러다 망하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나는 ‘이 때’를 위해 현금을 준비하고 있었다. IMF 직전 현재 쿠쿠전자 공장이 있는 경남 양산에도 부동산 열풍이 거셌다. 주변에서는 회사 맞은 편 부지(7000여평)를 사면 머잖아 2∼3배 차익을 볼 수 있다고 매입을 권했다. 그 땅을 매입할 자금도 있었고, 투자가치도 있었지만, 기업하는 사람은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벌어야지 땅 장사로 돈을 벌면 안 된다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일부 임직원들조차 ‘세상 물정 모르는 고지식한 사업가’라고 했다.
결국 그로부터 5년 뒤 제2공장 설립을 위해 그 부지 일부를 비싼 값에 매입했지만, 당시 그 땅을 매입했다면 광고에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본격적인 영업과 광고로 브랜드를 알려 나가고 제품을 써본 사람들 사이에 입 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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