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kg나 되는 사전을 들고 다니게 할 순 없잖아요.”
서울 공릉동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최호정씨(41)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는 초등학생 아들을 위해 주저 없이 전자사전을 사줬다. 학생 때 쓰던 영영·영한·국어 사전이 있지만 아들이 학교와 학원에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다. 최씨는 “부모 마음이 다 같지 않겠냐”며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구입했다”고 말했다.
두산동아에서 출판되고 있는 ‘프라임 영한사전’ 한 권의 무게는 약 2.2kg다. 한영사전은 1.9kg, 국어사전은 1.4kg, 영영사전은 1.4kg이다. 이 4권만 더해도 6.9kg다. 하지만 여기에 회화사전·옥편 등이 추가돼 총 8권의 사전을 담고 있는 전자사전의 무게는 156g이다. 6.9kg 사전과 156g 사전, 소비자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91년 6월 에이원프로가 국내 최초로 전자사전(영한)을 선보인 이래 최호정씨와 같이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 사전 시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2003년 650억원 규모를 보이던 국내 종이사전 시장은 매년 약 8%의 감소율을 보인 반면 전자사전 시장은 2004년 1000억원대에서 2005년 12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이 같은 시장 변화는 출판 업계에도 영향을 미쳐 두산동아가 지난해 전자사전 시장에 진출했으며 레인콤·한누리비즈 등 신생 업체들도 가세했다.
전자사전 시장은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가 16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 올해 처음으로 종이사전 시장과 2배 이상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상설 샤프전자 이사는 “전에는 유학생·직장인들이 전자사전의 주 구매층이었지만 최근에는 고등학생·중학생 등으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전망이 밝다”고 내다봤다.
실제 카시오 전자사전을 유통하는 행남통상이 전자사전 구매 동향을 조사한 결과 중·고등학생 비중이 지난해 초 한 자릿수에서 연말 1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8년부터는 교육부가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정규 수업 시간에 실시하고 있는 학교 영어 교육을 1학년으로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전자사전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송병준 두산동아 신사업팀 부장은 “과거 출판업계는 콘텐츠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출판’을 도구로 사용했다면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망과 모니터 화면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며 “사서류를 보더라도 이전의 단순한 종이 사전에서 이제는 사전·MP3플레이어·라디오·e북(e-book)이 융합된 새로운 도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두산동아는 업계 최초로 올해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 사전 코너에 전자사전을 진열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종이사전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