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은 우리 회사에 기념비적인 시기다. 창사 이후 20년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대기업에 전기밥솥을 납품하면서 호된 시집살이를 하다 자체 브랜드를 갖고 독립한 지 꼭 1년 3개월 만에 국내 전기압력밥솥 시장점유율 1위에 우뚝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골리앗’이 전기밥솥 시장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밥솥 경쟁은 날로 치열해졌다.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孫子)의 명언을 가슴 깊이 되새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20여년간 LG전자에 전기밥솥을 납품하면서 대기업의 생리를 나름대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경쟁의 방향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전기밥솥 시장 쟁탈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품질경쟁보다 가격으로 승부를 걸어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싸움에 말려들지 않기로 작정했다. 대기업이 절반 이하 가격으로 덤핑판매에 나설 때도 적정가격대를 고수했다. 대신에 우리는 품질혁신을 통해 다양한 신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고객서비스 부문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몸에 좋지만 식미(食味)가 떨어지는 현미를 몸엔 더 이롭게, 맛은 뛰어나게 만들어 주는 현미발아 기능과 한 가지 종류의 쌀로 16가지 밥맛을 만들어 내는 특허기술을 개발하여 고객밀착형 신제품을 출시했다. 국내 최초로 음성안내기능을 탑재한 전기압력밥솥과 라면을 끓이는 시간과 거의 비슷한 13분만에 밥을 지어내는 신제품도 선보였다.
최고, 최상의 밥 맛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기술연구소는 매일 100여대의 전기압력밥솥을 가동하며 신기술 시험에 매달렸다. 여기에 사용되는 쌀만 해도 하루 30여㎏, 연간 10여톤에 이른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200여건의 특허 및 실용신안은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10월 탄생한 신제품이 현미발아 기능과 맞춤밥맛 기능을 탑재한 전기압력밥솥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1년여 만에 50여만대가 팔릴 만큼 이 제품은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밥솥의 내솥을 동전으로 긁어도 잘 벗겨지지 않는 초강력 코팅기술인 ‘엑스월’을 적용한 신제품을 내놓았고, 내년 초에는 돌내솥 전기압력밥솥도 출시할 예정이다.
대기업과의 한판 승부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삼성전자(2002년)와 LG전자(2004년)의 전기압력밥솥 폭발사고 여파 탓이다. 먼저 LG전자가 2004년 9월 전기밥솥 사업을 완전히 접었고, 이어 삼성전자가 올해 5월 전기밥솥 등 소형가전제품을 만드는 자회사 ‘노비타’를 매각하고 전기밥솥 시장에서 철수했다. 두 회사 전기압력밥솥 제품의 폭발사고는 가격경쟁이 화근이었다고 생각한다. 가격경쟁에는 원가절감이 동반되기 마련. 특히 전기밥솥 제품의 무리한 원가절감은 자칫 사고를 낳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2005년도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다. 독자 브랜드 출시 이후 판매한 전기밥솥이 무려 1000만대를 돌파한 것이다. 지난 9월 말의 일이다. 매출액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당초 잡은 2200억원보다 500억원이나 많은 27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년보다 35% 늘어난 실적이다.
“올해 우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선 앞으로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나는 작년 11월 1일 창립 27주년 기념식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제 또다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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