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1부 기술은 언제나 `변화의 축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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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장이 변화의 진원지 

 #사례1. 결혼 10년만에 아파트를 마련한 주부 김씨는 초고속인터넷과 전화, TV를 모두 KT에서 저렴한 요금에 제공받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직접 문의했더니 당분간은 TV는 볼 수 없단다. 준비는 돼 있지만 사업허가를 못받았다는 것. 할 수 없이 동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물어봤더니 케이블TV만 가입하면 요금이 비싸다는 답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SO가 전화도 개통하며 초고속인터넷·전화·TV 묶음 상품을 이용하면 30%까지 싸다고 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 TV만 가입하니 한달 요금이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

 

 #사례2. 방송인 지망생인 대학생 박씨는 방송에 관한 한 ‘얼리 어댑터’다. 위성DMB가 나오자마자 단말기를 샀고 지상파DMB폰도 구입했다. 최근에는 와이브로 단말기와 WCDMA폰도 장만했다. 박 씨가 보고싶은 방송을 단말기마다 따로따로 내보내는 탓이다. 위성DMB에선 신선한 창작물을 볼 수 있다. 지상파DMB폰으로는 TV, 와이브로에선 데이터방송, WCDMA를 통해서는 해외 스포츠 경기를 주로 본다. 하지만 대학생 형편에 경제적인 부담은 사실이다. 하나의 단말기와 서비스에서 좋아하는 방송을 골라 볼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되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조만간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될 광경들이다. 통신·방송 융합시대는 생활속에 성큼 다가섰지만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벌어지는 난맥상들이다.

 통신하면 유선전화만 떠올렸고, 방송은 커다란 TV용 옥외안테나를 연상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통신은 통신이고 방송은 방송일뿐이라는게 모든 이의 생각이었다. 디지털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변모시키고, 이젠 시장과 소비자들이 변하고 있다. 소비자에겐 기술의 원천이 무엇인지, 서비스 제공자가 누구인지 관심없다. 오직 원하는 첨단 서비스를 가장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수만 있으면 된다.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바람은 당장 유선과 무선 영역에서 뚜렷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 유선에서는 KT·하나로텔레콤·파워콤 등 통신사업자들과 복수SO(MSO)가 그 주체이며,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발빠른 준비에 나서고 있다.

 최근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통신사업자들의 IPTV 도입 움직임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말 IPTV 시연에 성공한 KT는 당장이라도 상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자사의 초고속인터넷·유선전화와 함께 이용할 경우 고객들이 싼 가격에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늘어나는 통신요금 부담에 방송(케이블TV)을 따로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도시인들이나, 시골 등 오지의 주민들에겐 말 그대로 솔루션인 셈. 또 다른 사업자군인 방송사업자들의 인터넷전화(VoIP)도 영역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MSO 컨소시엄 KCT는 케이블망 기반의 VoIP 서비스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방송만 제공했던 케이블이 초고속 인터넷을 수용하더니, 이제는 유선전화까지도 대체할 태세다. 케이블 디지털 전환 덕분이다. 그동안 저렴한 요금에 초고속인터넷과 케이블TV를 즐기던 대도시 가입자들에겐 역시 또 하나의 편리한 대안인 셈이다.

 무선도 통신·방송간 영역파괴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현실화하고 있다. 무선 주파수를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적 원리는 다를 바 없지만 얼마전만 해도 통신은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방송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브로드캐스팅’이었다. 하지만 위성DMB·지상파DMB 등이 등장한 휴대 이동형 방송은 조만간 양방향 데이터방송까지도 확장될 예정이다.

 방송을 통한 전자상거래(EC)도 통신영역과도 구분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그리 멀지 않았다. 노키아의 ‘DVB-H’는 통신영역에서 출발한 방송기술로, 방송위는 올해 시범서비스 예산까지 마련했다. 출발이 어느 쪽이었건 얼마든지 통신과 방송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경이 돼 버린 셈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느끼고 요구하는 시장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갓 태동한 통방융합 시장이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사업자간 ‘거래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SO가 통신사업자 망을 빌려 초고속인터넷과 VoIP을 제공하고 나아가 이동통신망을 임대한 가상이동사설망(MVNO) 서비스까지 확장한다면 사업자간 망 이용대가 정산은 어떻게 해야 하나.’

 ‘통신설비는 의무적으로 개방하도록 돼 있지만, SO의 망과 설비는 어디까지 개방해야 하나.’

 ‘통방 융복합 서비스 요금의 적정 수준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쉽지 않은 고민들이 막 시작된 셈이다. 통방 융합 제도 정비에 서둘러 나서지 않을 경우 시장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물론, 사업자들이 적정 수익성을 보장받으며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사회적 기준 또한 없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통·방 융합의 유형

 흥미로운 현상은 통방 융합 현상이 크게 망과 서비스, 사업자 등 3가지 범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과 시장 흐름을 좇아가는 추세다.

 우선 네트워크에서 생겨나는 통방 융합은 전통적인 네트워크에서 방송 서비스가 태동하거나 그 반대의 현상이다. 이미 IPTV는 유선(ADSL)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기술을 구현함으로써 방송을 수용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다.

 유선뿐만 아니다. 제한된 주파수에서 ‘통신’ 용도로만 활용되던 이동통신망도 최근에는 ‘브로드캐스팅’ 기술이 현실로 구현되고 있다. 노키아의 ‘DVB-H’나 퀄컴의 ‘플로’가 대표적이다. 2세대 CDMA망에서도 ‘BCMCS’라는 방송 기술이 접목됐다. 안정된 통신용도로만 쓰이던 무선 통신 기술의 한계가 극복된 서비스들이다.

 반대로 방송망에서도 통신 융합은 가속화하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의 케이블망에서 인터넷전화(VoIP)가 가능한 기술이 단적인 예다. 케이블망에서 전화가 가능해지면 SO들은 초고속인터넷과 케이블TV를 묶어 이른바 트리플플레이서비스 사업자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서비스 융합은 네트워크가 광대역화하고 콘텐츠가 디지털화 하면서 통신과 방송의 속성을 모두 가진 서비스가 등장하는 추세를 일컫는다. 인터넷방송·데이터방송·VOD·이동통신방송 등이 그 주역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양방향성이라는 ‘통신’의 특성과 ‘실시간 스트리밍’이라는 방송의 속성이 그대로 결합됐다는 것이다.

 사업자 융합은 망·서비스의 융합에 따른 자연스런 시장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컴캐스트·타임워너 등이 초고속인터넷·이동통신 등 거대 통신 사업자로 변신에 성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SO가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KT·하나로텔레콤 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통신 사업자로는 SK텔레콤이 위성DMB 사업에 진출해 처음 방송 시장에 발을 디뎠다. 이밖에 KT등이 각종 콘텐츠 분야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는 등 통신 사업자의 활발한 행보가 눈에 띈다.

◆해외 사례와 전문가 조언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IPTV’. 사실 해외에서는 통방 규제기관 간 싸움으로 비화해 치열한 다툼을 벌인 예는 드물다.

 미국에서는 IPTV, 유럽은 ADSL TV, 일본은 브로드밴드 방송으로 명칭도 제각각이지만 시장에서 ‘검증’된 대표적인 통방 융합서비스로 꼽힌다.

 IPTV는 지난 2002년 유럽에서 선을 보인뒤 2003년 상용서비스가 등장했다.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이탈리아 페스트웹의 경우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37만명 중 16만명(40%)이 ADSL TV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홍콩 PCCW나 프랑스텔레콤도 각각 42만명, 45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모두 2004년말 기준 조사결과다.

 전문가들은 세계 1억900만(2004년말 기준) DSL 가입자가 이 서비스로 전환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각국 규제기관들은 OECD의 수평적 규제권고를 감안, 사전 규제 등 까다로운 진입장벽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 소장은 “IPTV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처럼 과장된 면이 있으나 실은 해외에서도 케이블TV가 덜 보급된 일부 국가에서 소수의 가입자만 확보하고 있을 뿐”이라며 “시장논리대로 둔다면 다양한 미디어플랫폼 간 경쟁이 일어나 소비자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근 선문대 교수도 “방송시장은 진입규제가 높고 사후규제가 낮은 상황이다. 향후 논의는 두 산업이 뭉쳤을 때 시너지에 주목하고 진입규제를 깨는 접근이 돼야 한다. 방송시장의 진입규제를 완화하고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방향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행 체계에서 IPTV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해서 신기술과 신서비스가 도태되도록 마냥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