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마련중인 새 통신 규제정책은 ‘설비 독점력 해제’ ‘시장 진입 규제 철폐’ ‘통신·방송 공정 경쟁’ 등의 원칙으로 요약된다.
◇설비 경쟁력은 이제 그만=새로운 통신 규제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서비스 기반 경쟁’ 원칙을 본격 도입하겠다는 점이다. 유무선을 막론하고 그동안 정통부의 통신 규제정책은 사업자에게 통신설비를 독점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경쟁력을 갖게 하고, 진입 장벽을 둬 해당 사업자를 육성해 왔던 이른바 ‘설비 기반 경쟁’이 원칙이다. 특히 기간·부가·별정 등 다수 사업자가 출현했던 유선과 달리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사실상 주파수를 독점적으로 할당받는 보호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새 규제정책에 따라 정통부는 연내 이동통신 사업자의 로밍 의무화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관심사는 지금까지 주파수 우위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SK텔레콤의 800㎒ 셀룰러 주파수가 로밍을 통해 KTF·LG텔레콤 등 후발 PCS 사업자에게 개방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해안가나 오지의 통화 품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LG텔레콤으로서는 가입자 확대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가상이동사설망사업자(MVNO) 제도 도입과 무선재판매 의무화 논의도 수면 위로 본격 떠오를 전망이다. 정통부는 연내 MVNO 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 방향을 마련한 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망 없이 이동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MVNO 사업자가 등장, 기존 이동통신 유통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진입 규제를 사후 규제로=정통부는 이번 새 규제정책 안에서 그동안 ‘허가’를 통해 시장진입을 허용했던 사전 규제 장치를 점진적으로 없애는 대신, 콘텐츠·솔루션 등 다양한 서비스 사업자가 ‘등록·신고’만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규제 틀을 전면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시장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했던 수직적 역무 분류 체계를 ‘네트워크 사업자’와 ‘서비스 사업자’ 등 두 가지 수평적 규제로 바꾸겠다는 것도 이런 뜻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누구나 서비스할 수 있고, 서비스 내용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방송 사업자까지 포함해 이원적인 수평적 역무체계로 개선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통신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KT가 동일한 조건으로 타사업자에게 제공한다면 유선전화 결합상품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사전 규제 완화와 같은 맥락이다.
◇통신·방송 간 공정 경쟁=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통신 사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호를 받아왔던 방송 사업자들에도 망 개방 등 기본적인 의무를 지우겠다는 것이다. 소위 통신·방송 간 공정 경쟁의 룰인 셈이다.
현재 거론되는 방안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케이블망을 통신 사업자처럼 다른 사업자에 의무 제공토록 하거나, 독점적 지위의 근간인 TV 수신제한장치(CAS)를 개방하는 것 등이다. 새 규제정책이 배타적인 사업 영역에 안주해온 방송 사업자 진영에 또 다른 긴장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과제와 전망=기존 설비 기반 경쟁 원칙을 서비스 기반 경쟁 정책으로 전환할 경우, 가장 고민스런 과제는 산업 선순환 구조를 위해 사업자들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어차피 선진적인 규제정책의 추세를 따른다면 사업자의 설비 투자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면서 “다만 네트워크 사업자에 차세대 설비 투자에 대해 일정기간 도매 요금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정통부는 이번 규제정책안을 내달께 공식 발표하고, 연내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수립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