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늑대’가 끝나자마자 같은 시간대에 방영한 KBS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을 돌려 본다. ‘안방 TV극장’의 풍경이 확 바뀌고 있다. 뉴스와 드라마 등 채널권을 놓고 옥신각신하던 모습은 옛말이 돼 가고 있다. 같은 시간대 다른 채널 방송을 실시간으로 녹화할 수 있는 개인영상저장장치(PVR)가 속속 가정으로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PVR가 최근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며 ‘늦깎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PVR 제품 ‘불티’=LG전자가 지난해 6월 처음 선보인 PVR 내장 ‘타임머신 PDP TV’는 출시 한 달 만에 전체 PDP TV 판매량의 50%를 돌파했다. 최근 많을 땐 구미 PDP TV생산라인의 70% 가량이 ‘타임머신 TV’로 채워진다. PDP TV가 성공을 거두자 LCD TV, DMB폰에도 ‘타임머신(PVR)’ 기능을 앞다퉈 도입했다.
사정이 이쯤 되자 관망하던 삼성전자도 PVR 내장 TV 출시를 적극 검토중이다. 스카이라이프는 PVR가 인기를 얻자 올 하반기 PVR 겸용 셋톱박스를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키로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PVR 신드롬은 이어질 전망이다. 휴맥스·가온미디어·홈캐스트·토필드 등 셋톱박스 업체들이 올해 유럽과 북미 수출 제품 가운데 주력품목으로 PVR 겸용 셋톱박스를 첫손으로 꼽고 영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PVR 제품은 7% 안팎의 일반 셋톱박스 마진율보다 2배나 높아 ‘턴 어라운드’를 노리는 셋톱박스 업계의 ‘효자’로 급부상중이다.
◇미운 오리새끼서 백조로=사실 PVR 관련 제품은 2000년 초반에 봇물처럼 쏟아지며, 비디오 녹화시장의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시장의 냉담한 반응으로 퇴출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LG전자도 2002년부터 PVR 겸용 셋톱박스 신제품을 잇달아 선보였지만 하루 200대 밖에 안 팔려 사업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다. 일반 셋톱박스에 비해 가격도 20만∼30만원 비싼데다 새로운 리모컨을 조작해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 지난해 ‘타임머신 TV’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박시범 LG전자 상무는 “타임머신 TV가 소개되면서 실시간 녹화 등 PVR의 장점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됐다”고 소개했다.
최근 HD방송 프로그램 등 양질의 디지털영상 콘텐츠를 개인적으로 소장하려는 경향도 PVR 열풍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PVR 보급이 확산되면 시청자가 자신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시간에 상관없이 직접 편성하는 시대도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에는 독일 월드컵으로 인해 PVR의 진가가 더욱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에 열리는 축구경기를 보다 보면 졸려서 자칫 골 넣는 장면을 놓칠 수 있지만, PVR만 있으면 언제든지 되돌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이미 이를 부각한 ‘타임머신 TV’ 광고를 제작, 지난주 ‘사우디 4개국 친선축구’ 경기에 맞춰 대대적으로 방영하는 등 ‘PVR 띄우기’에 나섰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