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SW)업체들의 아시아 시장 진출 노력에 힘입어 우리나라가 중국, 인도와 함께 ‘아시아 SW 허브’를 꿈꾸기 시작했다.
아시아 SW 시장은 개발의 경우 인도 그리고 시장은 일본과 중국 중심으로 펼쳐져 있지만, 한국이 최근 정부와 민간 주도의 SW 산업 육성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력해 아시아 SW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다국적 SW업체들이 전세계는 물론이고 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자국 SW기업을 육성하려는 한·중·일 3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3국간 SW 연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3국 협력과 더불어 이들은 아시아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독자적인 행보도 활발히 하고 있다.
◇한·중·일 실크로드 열자=한글과컴퓨터는 최근 중국의 홍기리눅스와 일본의 미라클리눅스와 함께 아시아눅스 공동법인(회사명 아시아눅스코퍼레이션) 설립에 관한 계약을 했다. 레드햇, 수세와 같은 외국계 기업에 맞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의지도 함께 피력했다.
백종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은 “아시아눅스 공동법인 설립으로 협력 프로젝트가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기존의 태생적 한계인 조직과 서비스의 영속성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며 “한·중·일 3국 이외 제4, 제5의 파트너를 모집하여 덩치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ERP업계도 중국과 일본 동종업계와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포화상태인 내수 시장을 벗어나 중국과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이다. 국내 ERP업체의 대표단체인 한국ERP협의회는 오는 5월 국내에서 3국 솔루션업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 ERP포럼’을 열고 협력 방안을 협의한다.
김용필 한국ERP협의회장은 “중국과 일본은 SAP 등 외국계 기업의 브랜드 영향력이 적어 국내 기업들이 기술력만 갖춘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시장”이라며 “일본과 중국을 통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협의회 차원에서 마련중”이라고 설명했다.
티맥스소프트, 안철수연구소, 영림원소프랩 등 국내 주요 SW업체들도 최근 중국과 일본에 지사를 잇달아 설립하며 SW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시장 진출을 눈앞에 둔 영림원소프트랩의 김종호 전무는 “2∼3년 내 일본 ERP 시장점유율 5%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며 “시장 진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에서 통하면 아시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주도권 확보해야=하지만 한·중·일 연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아시아ERP포럼은 중국의 최대 SW업체인 용우소프트가 주도권을 쥐고 한국과 일본 업체들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내수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업체들이 용우소프트의 제조자설계생산(OEM) 방식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럴 경우 국내 ERP업계가 중국 SW업체에 종속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ERP업계가 기술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역으로 국내 시장마저도 중국과 일본 업체에 내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시아눅스코퍼레이션도 중국이 지분의 50%를 가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과 일본 업체 모두 해외보다는 내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기술력이 떨어져 해외 시장 진출이 어렵고, 일본은 패키지보다 시스템통합(SI) 성격이 강한 SW를 보유해 사실상 밖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반면 국내 업체들은 내수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때문에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기술과 마케팅에서 주도권만 확보한다면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아시아 시장을 점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콘텐츠관리(ECM)업체인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해 일본 진출 5년 만에 콘텐츠관리솔루션(CMS) 시장에서 고객 수 100개를 돌파하며 일본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SW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을 밀어내고 달성한 성과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의 일본 시장점유율 1위 달성은 국산 SW의 국제적 위상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며 “국내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벽을 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SW 허브 만들자=SW업계는 국산 SW가 미국과 유럽 제품과 비교해 아직 격차가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아시아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급물살을 타고 아시아 경제 블록이 단일화되면서 한국에서도 SAP와 같은 SW업체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SAP는 독일의 SW업체로 유럽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SW 본토인 미국 업체들을 밀어내고 세계 1위 ERP업체로 우뚝 섰다.
백종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은 “유럽 기업의 반미 감정이 SAP의 ERP 구매로 연결됐다”며 “리눅스 등 일부 아이템은 아시아 시장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 육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박대연 티맥스소프트 최고기술경영자(CTO)는 “국내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할 수 있는 기업이 빨리 나와야 한다”면서 “정부의 SW 산업 육성 정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국적 SW업체 R&D 거점
◆R&D센터 한국에 몰린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SW 연구개발(R&D)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R&D 센터 유치 경쟁에서 인도와 중국에 밀렸던 우리나라가 정부의 IT 허브 노력과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 재평가에 힘입어 국내에서 외국 SW 기업의 R&D 센터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세계 5대 SW업체 중 CA를 제외한 마이크로소프트·IBM·오라클·SAP가 R&D 센터를 설립했거나 추진중이며 사이베이스 등 한국 시장의 중요도가 높은 업체들도 국내 R&D 거점 마련을 위해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
세계 1위 ERP업체인 SAP는 지난 24일 국내 고객들의 요구에 맞는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의 산실 역할을 할 ‘SAP코리아 로컬 연구개발R&D 센터’를 한국에 설립, 공식 운영에 들어갔다. R&D센터에는 오는 2008년까지 총 90억원(700만유로)의 자금이 투입된다. 외국계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업체가 국내에 R&D 센터를 설립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스 피터 클레이 SAP아태지역 총괄사장은 이에 대해 “전세계 IT 강국으로 손꼽히는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라며 “R&D 센터는 한국형 솔루션 연구 개발 및 로컬 비즈니스 솔루션 시장 발전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지난해 3월 세계 1위 SW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도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내에 모바일 연구소인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 이노베이션 랩’을 설립, 운영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내년까지 매년 1000만달러를 모바일 연구소에 투자, 국내 선진 모바일 기술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관련 핵심 SW를 결합, 세계 모바일 SW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피터 크눅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은 “한국은 모바일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 국가로 한국 정부의 협력은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는 모바일 부문에 있어서 이상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며 “랩을 통해 모바일 산업을 이끌 새로운 모바일 기술을 개발, 한국은 물론 전세계 모바일 산업의 지속적 성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1위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업체인 오라클도 오는 4월 유비쿼터스 컴퓨팅 관련 R&D 센터를 국내에 설립할 예정이다. 최근 방한한 데렉 윌리엄스 오라클 아태지역본부 총괄사장은 “4분기(3∼5월)에 한국에 오라클의 유비쿼터스 관련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R&D센터를 설립할 것”이라며 “초기에는 20명의 개발자로 시작, 규모를 늘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베이스는 연내에 국내에 700만달러를 투자해 모바일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솔루션 R&D 센터를 설립한다. 존 첸 사이베이스 회장은 이와 관련 “한국이 AP지역에서 BI 솔루션에 관한 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BI 제품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업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모바일 기술 강국인 한국이 모바일 BI 솔루션 센터를 건립할 수 있는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다국적 기업의 SW R&D 센터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내 영업을 위해 정보통신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다국적 SW업체들이 R&D 센터만 만들어 놓고 본격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국적업체 관계자는 “다국적 SW업체들이 국내에서 본격적인 R&D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인도와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R&D 거점으로 활용도가 높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며 “R&D센터 설립 관련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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