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게이샤의 추억

‘게이샤의 추억’은 단순하게 말하면,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다.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게이샤, 그리고 스모 등이 유효 적절하게 배치되면서 서양인들의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한다. 그 조직과 신분 자체가 신비에 쌓여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 권력에 복종하는 기능직 종사자인 여성 게이샤 그룹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게이샤의 추억’은 은밀한 성적 긴장감을 갖고 있다.

공리와 장쯔이 양자경 등 중국 문화권의 대표적인 여배우들이 일본 배우들을 밀어내고 게이샤 역을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상업적 지형도는 분명해진다. 할리우드가 원하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 혹은 한국의 특별한 문화가 아니다. 그 차별화를 그들은 굳이 원하지 않는다. 서구인들이 갖고 있는 동양에 대한 환상을 동양 배우가 적당히 만족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게이샤 역은 중국 배우들이 했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혹은 그들을 사랑하는 남자 역은 모두 일본 배우가 했다는 것이다.

고참 게이샤 하츠모모 역의 공리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교토로 팔려나간 뒤 게이샤 수업을 받는 사유리 역의 장쯔이, 그리고 그녀에게 게이샤 수업을 지도해주는 마메하 역의 양자경 등 최고의 여배우들이 빚어내는 갈등과 긴장, 아름다움은 관객을 황홀경 속으로 몰아넣는다.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사유리 역의 장쯔이는 순수하고 신비로우며 연약함 속에 깃든 강인함으로 우리를 매혹하고 있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배우는 역시 공리다. 그녀는 사유리와 대립각을 세우는 하츠모모 역을 맡아 오랜 게이샤 생활에서 풍겨나오는 관능미와 퇴폐미, 그리고 파멸되어가는 비극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또 치요의 외적인 혹은 내적인 후견인 역할을 하는 두 남자, 기업가인 노부 역의 야쿠샤 코지와 처음 어린 치요에게 친절을 베풀어주고 사랑의 감정을 싹트게 한 회장 역의 와타나베 캔은, 각각 치요를 사랑하는 그리고 치요가 사랑하는 남자로 등장해서 충분히 제몫을 한다.

1997년 출간된 아서 고든의 원작소설 ‘게이샤의 추억’은 당시 50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단한 대중적 관심을 모았다.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과 중국의 재능 있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에 힘 입어 잘만든 상업영화로 기록될 것이겠지만, 이성적으로 해독이 불가능한 신비한 눈이라든가, 음양오행 중에서 물의 본성을 강조하는 대사 등, 동양문화에 대한 서구인의 이국취미와 호기심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고, 오랜 브로드웨이 연출 경험으로 뮤지컬 영화 ‘시카고’를 만들어 처음 감독으로 데뷔한 롭 마샬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게이샤의 추억’은 그러나 서구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근대 일본을 그대로 재현한 교토의 셋트도 아름답고 특히 각 캐릭터의 개성과 지위에 맞춰 제작된 수 백벌의 기모노와 화려한 분장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준다. 거기에 요요마의 첼로와 이작 팔먼의 바이얼린 연주로 꾸며진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귀까지 감미롭게 만든다.

일본의 대표상품을 문화적으로 포장해서 훌륭하게 재구성 해 놓은 ‘게이샤의 추억’은, 영화로 만들어 놓은 일본 최고의 문화상품이다. 그 이면에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질서에 대한 복고적 시선이라든가 멜러로 포장해 놓은 억압적 여성 잔혹사가 깔려 있지만, 분명한 것은 상업적 조명과 대중적 성공으로 일본문화에 대한 세계적 호감도는 급상승할 것이라는 점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