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패밀리 시대 활짝

게임이 특정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PC온라인 게임과 콘솔 게임이 대중화를 주도하면서 지하 오락실은 사라졌으며 연령층도 중고등학교 남학생에서 30대 이상 직장인들과 여성으로까지 확대됐다. 게임의 종류는 이제 더욱 다양해져 ‘단순 놀이’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적 효과가 큰 작품도 드물지 않다. 이에 따라 온 가족이 게임을 즐기며 친목을 다지는 ‘G-패밀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사는 권혁진(41) 씨는 한 회사의 이사이자 대학 교수로 무척 바쁜 생활을 보내지만 9시나 10시까지는 반드시 퇴근해 집으로 들어 온다. 바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짜리 아들들과 게임을 함께 즐기기 위해서다. 권 씨가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이들이 달려 나와 “아빠∼”하며 허리에 매달린다. 그리곤 함께 컴퓨터 앞에 모여 앉아 ‘메이플스토리’를 실행시킨다.

# ‘게임’ 이젠 생활의 일부분

권세혁, 권세원 두 아들의 눈은 모니터에 고정되고 전날까지 했던 부분에 이어 게임을 즐긴다. 이들은 평일 1시간 주말 2시간이라는 게임 시간은 철저히 지키고 권 씨도 이 시간만큼은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즐기며 이것저것 서로 의논하면서 레벨업을 위해 노력한다.

한 시간이 거의 지나갈 때쯤 아이들은 게임을 종료하고 검색 사이트를 켰다. 게임 뉴스와 게임 업체들의 주가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권 씨는 아이들의 경제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기 위해 증권계좌를 만들어 줬고 두 아들은 자신들이 관심있는 게임업체 주식을 구입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플레이하는 게임에 유저가 많고 적음에 따라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아빠, 써니YNK 주가가 오르질 않고 있어. ‘로한’이 유료화가 된다는 소문 때문인가봐. 난 팔아야 돼 아니면 더 사야 돼?”

권세혁 군의 말이었다. 왠만한 일반 성인보다 게임에 접근하는 생각이 달랐다. 권 씨는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육적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그는 “‘진삼국무쌍’이 삼국지를 배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삼국지를 이해하고 등장 인물과 역사적 전투를 기억해서 놀랬다”며 “게임의 이런 효과는 예상 밖이었지만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 할머니 할아버지도 ‘카트’ 즐겨

이러한 케이스는 비단 권 씨 가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 대중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전국의 많은 가정이 게임으로 뭉치고 있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사는 신혜원(33) 씨는 “처음에는 무조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직접 해보니 재미있고 얻는 것도 많아 게임을 함께 즐기고 있다”며 “남편까지 전염돼 컴퓨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매일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웃었다. 또 “같은 취미를 가지면 친해지기 쉬운 것처럼 게임을 통해 가족들이 더욱 가깝게 되는 것 같아 좋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게임상에서 만나 결혼을 하는 커플도 부지기수로 나타나는 등 ‘게임’은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아 가족 문화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면받기 쉬운 실버 세대들을 가족의 중심으로 끌어 모으는 일에도 게임의 효과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개최된 ‘1080 우린 한가족, 게임 한마당’ 행사에는 55세 이상의 조부모와 손자녀 300여명이 참석해 게임에 대한 실버 세대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이 행사를 주도한 한국게임산업협회 임원재 사무국장은 “이번 행사에서 10대에서 80대까지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대간 융화를 이루는 모습이 가장 뜻 깊었다”며 “실버 세대를 위한 다양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3대가 게임으로 하나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건전한 환경조성이 관건

‘G-패밀리’를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며 그 가운데 건전게임문화 조성이 가장 시급하다. 지금도 많은 온라인게임 유저들은 비실명을 방패 삼아 초보자에게 갖은 욕설과 비매너 플레이를 저지른다. ‘A3’가 성인 전용 온라인게임을 내세우고 3단계에 걸친 성인 인증제도를 도입한 것은 성인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상한 은어와 툭하면 튀어 나오는 욕설로 인해 성인 유저들은 어린 연령층과 플레이를 함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사회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게임은 나쁘고 하면 안 되는 것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성인이 여전히 많다. 특히 가정을 둔 40대 이상의 남성들은 자신들의 자녀에게 무조건 게임을 하지 말라고 억압한다.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며 화목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을 분열의 도화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이 아이들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게 첫번째”라며 “온 가족이 함께 게임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고 서로를 배려하는 매너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성진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