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은 아직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브랜드가 아직 그 정도는 못 됩니다.” (포시에스 조종민 사장)
“현실적으로 국산 제품의 브랜드가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이티플러스 이수용 사장)
“미국에서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년간 투자한 덕분에 이제서야 미국 법인에서도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핸디소프트 정영택 사장)
“국내 소프트웨어를 대표할 만한 글로벌 기업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기업들도 함께 해외 진출하는 방법도 나올 수 있습니다.”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오재철 사장)
연초부터 해외시장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CEO들 대부분은 국내 업체 중 글로벌 기업이 없어 수출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도 삼성전자나 LG전자처럼 대표기업이 있다면 지금 상황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내에 소프트웨어를 대표할 만한 글로벌 기업이 없다는 것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최대 약점인 영세성과 맞물려 있다. 당장 매출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가운데 지난해 매출 400억원대를 넘어선 곳은 안연구소, 티맥스소프트, 시큐아이닷컴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업력이 10년 넘었다는 아이템별 대표 업체들도 매출 100억원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올해 100억원 돌파를 경영목표로 삼을 정도로 글로벌 기업과 비교할 때 매출 면에서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영세하다.
수치상으로 외국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봐도 하늘과 땅 차이다. 소프트웨어 1위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간 매출액은 321억900만달러(2004년말 기준)이며 IBM은 이 뒤를 이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만 169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오라클은 103억7100만달러, SAP는 63억5200만달러, CA는 33억4100만달러 수준이다. 100위에 해당하는 i2테크놀로지도 1억85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 소프트웨어를 대표하는 안연구소, 티맥스소프트, 한글과컴퓨터 등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1위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와 매출 규모로만 비교해보면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각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100대 패키지 기업 수만 봐도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얼마나 ‘미약’한지 잘 알 수 있다.
정보통신부의 ‘국가별 100대 패키지 기업 자료’를 보면 미국이 83개로 가장 많고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각각 4개, 3개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00대 패키지 기업에 든 곳이 하나도 없으며 그나마 핸디소프트가 4100만달러 매출로 289위를 차지한 것이 전부다.
이러한 국내 업체의 영세성은 규모의 경제에 밀리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는 국내 내수시장 규모로 볼 때 매출 500억원대를 넘어서면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적다보니 수익저하, 투자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품질저하까지 우려될 정도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프트웨어 강국으로서의 국가 브랜드나 업체 브랜드 인지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 업체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해외 시장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면 연관돼 있는 다양한 국산 제품들이 잇따라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김병국 티맥스소프트 사장은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99%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강력하게 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과당경쟁으로 기업규모가 영세하고 이는 다시 기술투자 부재와 품질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듭니다.”
국내 한 전문 SW업체 사장이 지적한 SW시장의 현실이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글로벌기업의 육성은 요원하며 이를 선순환으로 전환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선 발주자의 인식전환이다.
이장헌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발주기관이 SW관련 예산을 책정할 때 매년 예산을 삭감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업체들의 과당경쟁이 원인이기는 하지만 이를 예산절감에 활용하는 발주담당자의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예산삭감은 결국 전문 SW업체들에게 전가된다는 설명이다.
전반적인 발주관리 체계에서도 허점은 드러난다. 국내 공공기관, 지자체, 기업 등에서 수행되는 소프트웨어(SW)사업중 절반 이상이 표준화된 발주관리 체계 없이 진행된다. 이에 따른 높은 사업실패율과 예산낭비도 심각하며 SW사업 품질저하도 초래한다.
은연중 외산 SW를 선호하는 점도 문제다. 특히 외산 SW에 대한 유지보수료는 20% 이상을 주는 반면 국산은 10%도 안주겠다는 행태가 국산SW업체들의 개발의지를 꺾어 놓고 있다.
SW개발업체들의 책임도 있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사장은 “국내 전문 SW업체들은 소위 전문화된 패키지제품이 없다”며 “발주기관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인건비 장사를 하다보니 완전한 패키지를 공급하는 다국적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영세성을 탈피하기 위해 본연의 영역을 넘어 돈 되면 다한다는 식으로 덤벼드는 것도 결국 같이 죽는 꼴”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사용자와 공급자 외에 IT서비스라는 거대업체들이 프로젝트를 도맡아 하는 구조적 문제도 글로벌 전문 SW업체 육성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한다. 대기업 IT서비스업체의 계열사 내부거래에 기반한 시장 독과점과 불합리한 하도급 관행도 중소 전문 SW업체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해외 수출까지 진행하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한 중소 SW업체가 국내 굴지 SI업체의 하도급을 맡으며 순식간 무너지는 모습은 이의 대표적 사례다.
최근 일부 공공기관이 SI업체에 통째로 프로젝트를 맡겨 솔루션을 구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 발주기관이 직접 솔루션을 선택해 구매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기관은 대형 IT서비스업체에 개발 프로젝트를 도맡기고 있고, 그만큼 전문 SW업체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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