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무극

돌이켜보면 첸 카이거는 ‘황토지’나 ‘현위의 인생’ 당시가 순결했다. 그는 ‘패왕별희’에서 명성을 얻으면서 문화혁명의 모순점을 지적한 당시 집권층의 권력의도와 맞아 떨어져 아웃사이더에서 체제 내로 편입하기 시작한다. 그 때 제 5세대 감독들의 상당수가 초기의 열렬한 영화적 혁명의지를 잃고 중국 집권층의 시녀로 전락했다.

‘무극’은 팬터지다. 시대를 알 수 없는 시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신화적 세계가 펼쳐진다. 왜 첸 카이거에게 시간의 무화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그는 왜 한국과 일본의 대표 스타를 캐스팅 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아시아 시장 전체를 겨냥한 마케팅 목적도 있었겠지만, 내면적으로 ‘무극’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인 중화사상의 영화적 표현이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국의 속국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동건이 노예 쿤룬 역을 맡은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쿤룬은 대장군 쿠앙민의 노예가 된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능력을 지녔지만 정치적 야심은 결코 없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사랑, 부상을 당한 대장군 대신 장군의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가서 왕을 살해하지만 모두 대장군이 왕을 살해한 것으로 생각한다.

왕에게 인질로 잡혀 목숨을 위협받던 왕비 청청은, 자신을 위해 멋진 멘트를 날린 뒤 왕을 살해하고 폭포 아래로 뛰어내린 대장군을 사랑한다. 그러나 쿤룬은 왕비를 사랑한다. 청청의 사랑을 받은 대장군 쿠앙민은 사실 왕을 죽인 것은 자기가 아니었다고 고백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무극’은 엇갈린 사랑의 갈등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노력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영화의 중심주제는 쿤룬에게도 쿠앙민에게도 있지 않다. 영화의 중심은 청청과 북공작에게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20년 전 어린시절 전쟁터에서 뛰어놀던 청청과 북공작이 등장한다.

그리고 운명의 여신은 청청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예언을 들려준다. 어린 북공작은 청청에게 배신당한 후 모든 여자들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무극’은 이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이다. 대장군 쿠앙민과 쿤룬의 외적인 영화적 비중은 만만치 않지만 의미적으로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장동건이나 사나다 히로유키같은 배우를 그 역에 기용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청청 역의 장백지와 북공작 역의 사정봉은 얼핏 무국적 영화처럼 보이는 ‘무극’의 한 복판에서 중심을 잡는다. 그들은 중화사상의 중심에 서서 한국과 일본에서 달려온 배우들을 거느리고 세계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는 첸 카이거의 현 중국 집권층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훌륭하게 읊조린다.

멜러물로 포장되었지만 ‘무극’은 범아시아권을 향해 뻗어나가는 새로운 중화사상의 정치적 목적이 숨겨져 있다. 중국 집권층이 이 영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장예모우가 진시황 이야기를 다룬 ‘영웅’으로 집권층의 비위를 맞추고 총애를 받았듯이 첸 카이거 역시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영화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