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빅 브라더를 향해 가는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해 철저한 모습을 보이던 EU가 오히려 개인정보 공개를 촉구하는 법 제정에 열을 올리고 있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와 같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꼬집었다.
반면 9·11테러 이후 보안에 예민해져 개인정보 도청도 거리낌없을 정도로 공세적이던 미국 의회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법안까지 내놓는 행보를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9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와 C넷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유럽 통신업계는 EU 의회가 반테러 조치의 일환으로 제정한 통화기록 보존법 시행을 앞두고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EU 의회는 지난 12월 유무선 통화 자료 및 e메일 정보를 최소 6개월에서 최장 2년까지 의무적으로 저장하는 통화기록 보존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새 법에 따라 25개 회원국의 통신 사업자들은 고객의 통화 장소와 시간, 송수신자, 전화번호, e메일 등을 모두 저장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는 9.11테러 이후 테러 방지에 집착해온 미국조차 시도하지 않은 강경한 보안대책이다. 당장 통화기록 저장을 위해 막대한 설비 투자비를 떠안게 된 통신업체들도 새 법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파장은 통신업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호텔, 인터넷 카페 등도 웹 접속자의 신원 정보를 보존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인권단체들은 “미국에 비해 프라이버시 보호에 엄격했던 EU 측이 빅브라더가 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그동안 부시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모든 개인정보 유출 웹사이트의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삭제하는 등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하는 진보 성향의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에드 마키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소비자 인터넷 정보 제거법(Eliminate Warehousing of Consumer Internet Data Act of 2006)’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미국내 모든 웹사이트는 합법적인 비즈니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일체의 방문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기업용 웹사이트는 물론 비영리단체와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까지 단속 대상에 포함된다.
새 법에 따르면 웹사이트 운영자들은 e메일, 주소, 이름 등 고객 정보를 합법적으로 취득했으며 사업상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관련 데이터를 지워야 한다.
물론 인터넷 업계는 고객 정보가 사업상 필요한지 증명이 어렵고 그동안 축적해온 고객 DB를 지워서는 안된다며 법안 통과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