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단군·충무···.’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분들이다.
최근 외국계 반도체 업체인 내셔널세미컨덕터(NS) R&D센터에서 접한 이들의 이름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기업체의 회의실은 1호실, 2호실 등으로 구분되지만, NS R&D센터 회의실은 세종대왕·단군·충무공의 문패가 달려 있다.
“회의실 이름을 놓고,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연구원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쏟아냈지요. 심사숙고 끝에 미국계 회사지만 영어를 버리고 한글을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오철동 R&D센터 소장의 말이다. 한글 이름, 특히 한국의 상징적 인물들을 통해 회의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는 오 소장에게서 내셔널세미컨덕터 한국 R&D센터에 거는 기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날 세종 회의실에서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종회의실은 ‘많은 것을 새로이 발명한 세종대왕처럼’ 세계 최초가 되는 제품 개발을 위한 회의를 이곳에서 주로 진행하자는 공감대가 연구원들 사이에 만들어져 있다. 실제 진행된 회의에서도 연구원들은 한국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평면디스플레이(FPD)용 전력용반도체 칩 개발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오 소장은 “단군 회의실은 우리 R&D센터가 첨단 아날로그반도체 디자인의 시조 역할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충무는 충무공이 적은 인력으로 23번 싸워 23번 승리한 것처럼 작지만 우리가 개발한 모든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하기를 기리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의실을 돌아 안쪽으로 들어서니, ‘스카이라운지’를 방불케 하는 휴게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업원을 불러 ‘맥주 주세요’하고 주문해야 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세련된 ‘카페’지만, 맥주는 없고 음료도 셀프이면서 무료다.
‘카페’에서 차 한잔을 들고 한두 걸음 옮기면 최신 기술정보 및 동향을 습득할 수 있는 ‘교양실’에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다. 조용히 시사를 챙기고 독서하기에 안성맞춤.
“우리 연구원들은 시간에 쫓기는 업무보다는 아이디어와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합니다. 그에 걸맞은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회사의 역할이지요.” 오 소장의 생각이다.
NS R&D센터의 전체 면적은 425평. 10여명인 연구원과 직원들이 쓰기에는 너무 넓어 보였다. 실제로 상당수 책상은 비어 있었다. 현재는 다소 썰렁함까지 느껴지는 구성이지만, ‘이 여유 공간이 바로 향후 내셔널세미컨턱터가 한국에 얼마나 더 투자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구나’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센터 한복판에 마련된 랩실은 칩과 보드의 성능을 검증하는 핵심 공간으로, 조만간 웨이퍼 레벨 검사를 위한 프로브스테이션·테스터 등도 도입할 계획이다. 특히 랩실 옆에 충분한 공간을 비워놓고, 향후 증설을 대비하고 있다.
김용춘 내셔널 세미컨덕터코리아 사장은 “향후 2년 안에 디자인·애플리케이션·레이아웃·생산과 테스트 전 과정에 걸쳐 새로운 인력을 채용해 30명까지 확충할 계획”이며 “연구·검사 기능도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셔널세미컨덕터의 한국 R&D센터는 분당 정자역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킨스타워 17층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에는 내셔널세미컨덕터를 시작으로 인텔 등 세계 굴지 반도체 관련업체가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또 이미 국내 주요 팹리스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분당은 판교를 포함해 반도체산업의 새 핵심 메카로 웅비할 준비를 마친 상태. 오 소장은 “분당의 장점으로는 세트업체 고객들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과 함께 인텔·국내 팹리스 등 동종 업종의 전문가들과 쉽게 만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며 “특히 근교에 밀집해있는 팹리스업체들과 제품의 공동개발이 가능한 것도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외국계 반도체업체들은 더는 한국을 시장으로만 보지 않는다. NS R&D센터는 달라지고 있는 외국기업들의 한국 접근방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한 휴대폰 및 FPD용 반도체는 초기에는 한국 커스터머와의 원활한 연구 개발 및 비즈니스 성과 정도로 의미 부여가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최첨단 제품으로 자리매김해나갈 것입니다.”
오 소장의 말처럼, 한국은 이미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함께 하기를 원하는 ‘무엇’을 갖고 있다. 그 무엇은 세계 최첨단 산업과 서비스, 그리고 세계 IT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다. NS R&D센터에서는 많은 세계 최초의 과학적 실용제품을 발명한 세종대왕의 지혜와 세계 최첨단 전력용반도체 기술이 만나고 있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