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글로벌IT기업 변신 서두른다(1)좁아지는입지

 ‘IT 강국 코리아’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다국적 기업의 역할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국내 IT 시장까지 주춤하면서 굳건했던 ‘브랜드 파워’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산업계 등 다국적 기업을 보는 안팎의 시선도 곱지 않다. 변화하는 IT 환경에서 새로운 다국적 기업의 위상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 IT 기업을 둘러싼 문제와 위상 재정립을 위한 과제를 5회에 걸쳐 집중 해부해 본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IT 기업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위상을 한 눈에 보여 줄 수 있는 브랜드 파워, 시장 지배력, 매출과 순익 등 모든 면에서 ‘삐걱’ 거리고 있다. 심지어 인사·조직 운영·마케팅·사업 계획 등 본사에서 부여하는 ‘재량권’도 크게 줄고 있다.

 급여는 높은 대신 일하기 편해 인기가 높았던 다국적 기업은 이제 경력 관리를 위한 기본 코스 정도로 전락했다. 직장인 뿐 아니라 임원, 심지어 최고경영자(CEO)까지 언제 떠나더라도 큰 미련이 없다는 투다. 이전처럼 애사심도 없을 뿐 더러 IT 산업을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도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이 변했다. 매출이 ‘게걸음’을 치면서 거의 매일 본사 눈치를 보는 게 현실이다. 언제부턴가 국내 법인의 매출액은 전체 글로벌 매출의 ‘1%’가 평균 수준으로 굳어졌다. 실제 HP·IBM·마이크로소프트·인텔 등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본사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해마다 줄고 있다.

 법인 매출 규모는 소폭씩 성장하지만 다른 나라의 IT 성장세가 워낙 가파르면서 상대적으로 왜소해 진 것. 그나마 성장세에 있는 통신·반도체 등은 나은 편이다. PC·서버·소프트웨어와 같은 컴퓨팅 분야는 국내 시장은 이미 정점을 찍은 데다 기술 발전의 추진력도 사라지면서 동종 업체끼리 ‘땅 따먹기’식의 가격 경쟁만 치열해 지고 있다.

 한 때 내세웠던 ‘IT 테스트베드’라는 명성도 사라지고 있다. 인도·중국과 같은 신흥 IT 강국이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크게 반전됐다.

 과기부가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는 지난 97년 109개에 불과하던 다국적 기업의 연구(R&D) 센터가 2004년 말 690여개로 여섯배 이상 늘었다. 외국 기업의 신규 프로젝트 투자 건수도 2000년 100건에서 2004년 1395건으로 5년 만에 14배 가량 급성장했다. 반면 국내는 정통부를 중심으로 연구 센터 유치에 나섰지만 이들 지역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다국적 기업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IT 업계의 가장 상징적인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으며 세계적인 프로세스 업체 인텔도 조사를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국내 IT 시장의 빠른 성장세와 맞물려 비즈니스 목적으로 잇속을 채운 것 이외에 무슨 기여도가 있느냐고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중국·인도에 밀리고 기술·시장 면에서 한국의 이점이 사라지면서 본사에서 요구하는 건 오직 ‘실적’이다. 그나마 실적이 뒷받침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본사에서 직접 통제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때문에 법인장의 위치도 항상 좌불안석이다. 한국IBM 이휘성 시장은 “이전처럼 시장과 매출 비중에 따라 법인의 위상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다국적 기업도 ‘코리아’만이 가질 수 있는 리더십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T 다국적 기업도 이제는 변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