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코맥스 변봉덕 회장(7)

[결단의 순간들]코맥스 변봉덕 회장(7)

(7) 브랜드가 부(富)랜드  

 현재 코맥스 제품은 세계 100여개 국에 인터폰과 도어폰, TV폰과 비디어폰, 디지털 도어로크와 홈 오토메이션 관련 제품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특징만큼 다양한 기능과 특징을 지니고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뛰어난 기능을 자랑하는 첨단제품일지라도 생활의 변화와 기술발달에 따라 퇴보하고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나 코맥스(COMMAX)라는 이름은 남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브랜드의 가치고, 힘이다.

 사실 코맥스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진 이름이다. 설립 초기부터 수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던 우리는 ‘중앙(JUNGANG)’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해왔다. 가장 먼저 이름에 불평을 한 것은 미국 바이어였다. 발음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국가별로 이 표기에 대한 발음이 제각각이었다. 글로벌 브랜드 작명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고심 끝에 1984년 ‘코맥스(COMMAX)’라는 새 브랜드를 론칭했다. ‘COMmunication MAXimize’의 합성어에서 비롯된 코맥스는 커뮤니케이션의 극대화라는 뜻을 담고 있어 첨단 영상 정보통신 기업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름이었다. 외국 바이어도 환영했다. 코맥스라는 브랜드의 탄생은 궁극적으로 브랜드가 있는 제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략상의 이유와 함께 사원들에게도 보람과 자부심을 안겨준다는 상징적인 의미까지 담겨 있다. 지금 코맥스는 세계 82개국에 상표 등록이 되어 있다. 1989년부터 국내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1999년에는 회사명 또한 코맥스로 통일했다.

 나는 종종 ‘부(富)랜드’라는 비유를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말한다. 말 그대로 한 기업의 브랜드는 그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인 동시에 경제적 가치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고유 브랜드를 지켜내기 위해 치열한 싸움에 휘말리기도 한다.

 1992년 호주에서 상표 등록을 할 때의 일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 컴퓨터 업체인 컴팩(COMPAQ)사가 시비를 걸고 나왔다. 자사 브랜드와 비슷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야말로 억지스런 주장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고 있던 차에 아르헨티나 에이전트로부터 희소식이 왔다. 컴팩에서 상표등록을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미 코맥스라는 상표를 먼저 등록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는 곧바로 컴팩사에 항의했고 그때서야 상대방도 화해를 요청해와서 무사히 상표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상표 도용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현지 대리점이 코맥스라는 상표명을 먼저 등록해 자기네 브랜드인 양 제조 판매를 하고 있었다. 지루한 재판이 2년이나 계속됐다. 자신이 패소할 것을 안 현지 대리점은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그를 감싸안기로 결심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상품을 널리 알려주고 우리 상표를 당신처럼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인도네시아는 당신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그 후 그 대리점 당사자는 코맥스 최고의 파트너로서 열혈 후원자가 되었다.

 물론 브랜드 가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우수한 제품과 투명한 경영, 소비자로 하여금 믿고 선택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전제된다. 처음엔 기업의 성공이 기업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나중엔 브랜드의 가치가 기업의 생명력을 일궈낸다. 브랜드야말로 진정한 부(富)랜드인 것이다.

 bbduk@commax.co.kr

 사진설명

 코맥스는 2000년 1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코맥스배 2000 농구대잔치’를 공식 후원했다. 사진은 변봉덕 사장이 우승팀과 우수 선수를 시상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