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을 보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껏 고조돼 있다. 정부가 로봇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서면서 시장 자본이 집중되고, 국민적인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산업계와 학계의 꾸준한 기술 개발이다. 산업계와 학계가 뒷심을 내 받쳐주지 않는다면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관심이 물거품으로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로봇경쟁력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여기에 따른 정책 과제 제시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5회에 걸쳐 ‘대한민국 로봇의 실체’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로봇’ 하면 ‘아톰’을 떠올릴 정도로 로봇 산업에서 일본의 위상은 대단하다. ‘아이보’와 ‘큐리오’로 로봇 기술을 주도했던 소니가 로봇 사업에서 철수할 방침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개발에 투자된 인력이나 자금·인프라·기반기술·부품 모든 면에서 한수 위다. ‘혼다이즘’으로 대변되는 기술제일주의 정신이 일본의 로봇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vs 일본=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로봇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중소기업을 위시해 삼성·LG·현대 등 한국을 움직이는 ‘큰손’들이 일제히 로봇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조 경쟁력을 높이는 보조수단으로 로봇을 이용하거나 청소로봇, 경비로봇, 엔터테인먼트로봇 같은 지능형 서비스 로봇 개발에 전력하는 등 제각각이다. 하지만 모두 철저한 실리주의 정책에 기반해 있다. 장기적인 비전 아래 기술을 축적하려는 일본과는 색깔이 다르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의 로봇 전략에 대해서는 시비가 엇갈린다. 체계적으로 기반기술이 축적되지 않고서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지적과, 초보적인 단계나마 로봇을 상용화하고 이를 시작으로 기술개발이 선순환된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구도일 수 있다는 상반된 시각이다.
하지만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국내 기업이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에 이은 차기 성장산업으로 로봇을 지목하고, 어떤 형태로든 시도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현대가 주도하는 산업용 로봇=삼성전자는 기술총괄 산하 생산기술연구소(구 메카트로닉스연구소)에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화시스템개발팀과 기반기술팀이 각각 산업용 로봇과 지능형 로봇을 전담하는 체제다.
지능형 서비스 로봇과 관련해서는 2004년부터 정통부 국책과제를 통해 공공기관 서비스용 공공도우미 로봇을 개발중으로 지난해 11월부터 두달 동안 강남우체국에 시범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올해는 우체국용 공공 도우미 로봇 확대 시범서비스를 계획중이다. 휴머노이드로는 KIST와 함께 ‘마루’와 ‘아라2’를 개발했다.
산업용 로봇에서는 1989년 수직다관절로봇과 스카라로봇을 생산라인에 투입한 이후 지금은 주로 LCD 공정에 로봇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7세대 LCD 핸들링 로봇 및 LCD 핸들링 로봇시스템 제어 소프트웨어를 개발, 현재 7세대 LCD 제조라인 대부분에 사용중이며 8세대, 9세대로 이어지는 차세대 LCD 핸들링 로봇을 개발중이다. 하지만 이를 사업용으로 판매할 계획은 없다.
기본적으로 삼성전자의 로봇 전략은 산업용 로봇에 무게가 실려 있다. 지능형 로봇은 국책과제에 참여하며 시장성을 엿보는 정도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쌓은 미세제어기술과 모션구현기술, 로컬라이제이션 기술을 통해 언제고 지능형 및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 계열사로는 삼성중공업이 선박용 용접 로봇을 자체 개발,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도 계열사인 로템, 위아를 통해 산업자원부 실외화재 진압용 로봇과 무인운행 자동차, 전투용 로봇, 수직 이착륙 비행로봇 개발에 참여하하며 로봇사업을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특히 로템은 현대자동차 인도법인(HMI)의 자동차 생산라인용 로봇설비 구축 설명회에 참여하는 등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로봇 사업에 뛰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같은 현대차 계열사인 위아와 자동차 제조용 로봇, 무인형 자동차 로봇, 실외화재 진압용 로봇 등 로봇 사업에 대한 조정작업이 예상되고 있다.
◇LG, 청소기로 상용화 첫 삽=이에 비해 LG는 지능형 서비스 로봇, 특히 로봇청소기로 기본 가닥을 잡고 드라이브중이다.
기술총괄 산하 DA연구소와 DS연구소에서 로봇을 개발중인 LG전자는 기본 전략이 ‘생활에 편의를 주는 로봇’이다. 이를 위해 중단기적으로는 청소기, ‘로보킹’을 중심으로 기술을 진화시키되, 장기적으로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가 개발한 ‘로보킹’은 청소로봇으로는 처음으로 리튬 폴리머 배터리를 채용했다. 수명이 니켈수소 배터리보다 4배가 긴 5년이다. 모터(BLDC 모터) 수명도 300∼400시간에 이른다. 리튬 폴리머 배터리는 LG화학과 공동 개발한 것으로 현재 중소 로봇청소기 전문회사들과 부품 공용화 방안을 추진중이다.
LG전자는 이 외에 산자부 프로젝트로 2009년까지 ‘가정용로봇 플랫폼 및 로봇환경 기술개발’ ‘가정용 고성능 청소 및 지능형 가정관리 로봇시스템 기술개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로써 LG전자는 홈네트워크와 연계된 가정용 로봇, 즉 신체리듬을 감지한 센서가 홈서버에 무선으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자동으로 편리한 홈네트워크 서비스가 구현되는 가정용 로봇의 핵심기술을 보유한다는 구상이다.
◆인터뷰-삼성전자 김동일 상무
“지능형 서비스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첨단 산업용 로봇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세 축이 기본 골격으로 고르게 개발돼야 한다고 봅니다.”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에서 로봇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김동일 상무. 서비스 로봇이 미래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킬러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로봇 사업 역시 산업용과 서비스용 로봇에 대한 적절한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며 입을 뗐다. 산업용 로봇의 중요성이 폄하되는데 대한 일침이다.
김 상무에 따르면, 제조업에서 독자적으로 산업용 로봇 기술이 없이는 특화된 자동화 라인을 구축하기 힘들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경쟁력있는 제품 제조기술을 구사할 수 없게 돼 결국은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전자도 제조사로써 첨단제조용 로봇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서비스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책과제를 통해 서비스 로봇 기술을 확보중인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는 가정의 정보서비스 중심이 될 수 있는 혁신적인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역시 당장 사업화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지능로봇 기술중 장기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핵심기능과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력을 제고하고, 기술 파급 효과에 의한 신시장 창출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용 로봇은 더욱 첨단화하고, 서비스 로봇 분야는 국책과제들을 통해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의 로봇기술, IT기술, 가전기술을 융합한다면 시너지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 로봇산업의 현실에 대해 김 상무는 “일반적인 조립 및 핸들링 분야에 로봇을 적용하는 단품 사업에 주력하고 있고, 또 외국에서 도입되는 일반 제품들과 차별화되지 않아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 머물러 있다”고 평하고 “기존 기술을 바탕으로 변화의 방향을 잡고, 단품 위주 전략에서 벗어나 응용시스템을 이해해 핵심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로봇업체 탐방(1)로보티즈
로보티즈(대표 김병수 http://www.robotis.com)는 작지만 강한 회사다. 정통부가 휴머노이드 ‘마루’에 이어 새롭게 내놓은 60㎝ 크기 연구용 휴머노이드(개발명 RX)를 직접 개발해내 주목을 받았다. 소니의 ‘큐리오’에 대적하는 로봇으로 기획된 이 휴머노이드는 큐리오와의 기술격차가 1년 반 정도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행속도나 달리기 속도에서 조금씩(달리기속도 큐리오 0.7㎞/h·RX 0.5㎞/h) 떨어지지만 점프체공시간은 오히려 더 길다. 이 로봇은 정통부의 교육용 로봇 플랫폼으로 각종 경진대회나 연구소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이나 콘텐츠가 개발되는 하나의 선행모델이 되는 셈이다.
1년여의 프로젝트 기간을 거쳐 이 로봇을 만들어낸 ‘내공’은 어제 오늘 새 급조된 것은 아니다. 각종 로봇대회 우승 경력을 쌓아 99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로봇부품인 액츄에이터의 경쟁력과 신뢰성을 꾸준히 쌓아왔다. 일본 휴머노이드 로봇업계에서도 매년 로보티즈의 부품을 수입해다 쓸 정도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표면처리 기술로 내구성, 내마모성을 극대화한 전용 액츄에이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원래는 부품을 팔려했던 것은 아닌데 오히려 소비자들이 부품판매를 요구해와 이제는 부품 판매 매출이 전체의 절반을 넘겼습니다.” 김병수 사장의 말이다.
크게 욕심을 내지 않고 오히려 호환성을 극대화해 전체 시장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RX에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PDA가 탑재되고 나머지 인터페이스도 모두 호환성과 네트워크 연동을 보장한다. 심지어 로봇 본체도 모듈화를 통해 확장성과 범용성을 극대화할 생각이다. 김 사장은 “로보티즈가 추구하는 제품은 완성된 형태의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관절이나 셀 단위로 로봇의 부분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정형화된 플랫폼”이라며 “기존의 완구시장이나 가전시장에 기대서는 소규모의 로봇벤처들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것이 과제”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출시한 바이올로이드는 로봇에 대한 전문지식없이도 로봇을 제작, 구동해볼 수 있는 교육용 키트다. 올해 6000대 이상을 생산해 이중 8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다. 국내서는 로봇 교육에 관심을 높이고 있는 학교나 학원에서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김 사장은 올해부터 해외마케팅과 교육기관 마케팅을 적극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RX의 신뢰성을 강화하는데 주력한다. 전체의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장시간동안 오류없이 동작을 할 수 있도록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또 교육용 키트 제품의 대량생산을 통한 가격 인하로 가속이 붙은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릴 계획이다. 2종의 새로운 액츄에이터 제품도 올해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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