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보컴퓨터가 ‘대한민국 대표 PC업체’라는 옛 명성 회복을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수원지방법원에서 법정관리 최종인가를 받으면서 재기를 위한 발걸음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경기도 안산 새 삼보컴퓨터 사옥에서 만난 ‘소방수’ 박일환 대표(49)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법정 관리인’이 아닌 ‘삼보컴퓨터 대표’라고 적힌 새 명함만큼이나 해맑아 보였다. 박 대표가 삼보 사태 이후 근 2년 동안 언론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객의 믿음이 삼보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도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명맥을 잃지 않았던 것은 품질과 기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에 보답하는 게 가장 큰 임무입니다.”
삼보컴퓨터는 지난해 5월 법정관리 신청 후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인 7개월 만에 인가 판정을 받았다. 그만큼 회생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법정관리를 시작한 삼보는 앞으로 10년 동안 어림잡아 5000억원의 부채를 갚아나가야 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전 직원의 마음가짐, 주변의 도움 없이는 경영 정상화의 길은 험난할지도 모른다.
“올해 경영 목표는 ‘수익성 확보’와 ‘성장엔진 개발’입니다. 이미 몇번의 구조조정 작업을 거치면서 이를 위한 기반은 마련했습니다. 혁신적인 제품 라인업과 서비스로 ‘국민PC기업’이라는 명성을 되찾겠습니다.”
삼보는 법정관리 사태와 맞물려 국내외 일부 생산라인과 불필요한 자산을 모두 매각했다. 인원도 법정관리 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였다. 모든 게 슬림화했지만 대표를 포함한 전 직원의 의지만은 더욱 강해졌다. 다행히 이런 노력 덕택에 지금은 경영실적 면에서 법정관리 이전의 80%까지 회복했다. 주춤했던 조달과 공공 부문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올 2분기 경에는 실적 면에서 법정관리 이전 수준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주춤했던 수출도 다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관계사를 정리했지만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판매처는 여전히 탄탄합니다.”
박 대표는 자체 브랜드로 올해 노트북PC와 데스크톱PC를 합쳐 해외에서만 30만∼40만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최근 출시한 미니PC ‘리틀 루온’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고 강조했다. 삼보는 리틀 루온을 기존 제품에 비해 100달러 정도 비싼 ‘프리미엄급’으로 국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당분간 에버라텍(노트북PC), 드림시스(데스크톱PC), 루온(데스크톱PC) 세 가지 브랜드를 그대로 고수할 계획입니다. 대신에 루온은 미니PC처럼 기존 제품과 다른 차별화된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박 대표는 특히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PC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애플 ‘아이팟’과 ‘아이튠즈’ 같이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결합한 새 개념의 서비스를 올 상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며, PC업계의 새 수익모델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홈네트워크, 미디어서버 등 새로운 환경에서는 당연히 PC도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PC가 가전제품처럼 쓰기가 편해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쓰기 편한 PC를 만들기보다는 PC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알리고 체험시켜주는 게 정체된 PC 시장의 활로입니다.”
박 대표는 올해 PC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언제 어디서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와이브로’라며 오히려 휴대폰보다 PC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PC업계의 새로운 기회라며 삼보도 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지난 87년 삼보컴퓨터 해외사업본부로 입사해 2003년 잠시 대표를 지냈으며, 지난해 법정관리인에 이어 올해 다시 대표로 부임했다. 내년이면 삼보에 입사한 지 꼭 20년을 맞는다. 박 대표는 지난해가 20여년 동안 가장 긴 한 해였다고 덧붙였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