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음란서생

공자 맹자의 도를 따르는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조선조에, 성은 은밀한 것이었으며 오직 자손을 잇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쾌락을 위한 남녀 간의 성적 접촉은 음란한 것이었고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할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신분사회였던 조선조 양반이, 그것도 당대 최고의 명문가 사대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문장가가, 저자거리의 대중들을 위해 말초적 감각으로 포장된 포르노를 집필했다는 상상은, 그 발칙한 상상만으로도 체제 전복적이다.

 ‘음란서생’은 충분히 음란하다. 다양한 성행위의 체위가 등장하고 실연하는 모습까지 구체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굵어진 음경’이라든가 ‘음부’라는 단어만 보아도 온몸이 짜릿해지고, 답답한 세상의 한 귀퉁이에 숨구멍이 나는 것처럼 자유로움을 느꼈던 당대 민중들의 삶을 통해 ‘음란서생’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도전하고 있다.

정치와 포르노. 어울리지 않게 서로 동떨어진 단어처럼 들리지만, ‘음란서생’은 교묘하게 이것들을 결합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서 가문의 억울한 일을 호소할 정치적 돌파구인 상소를 쓰는 대신,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음란한 포르노 ‘흑곡비사’를 쓰는 김윤서의 이야기가 영화의 외형적 흐름을 끌고 가지만, 그 이면에는 글 쓰는 행위에 대한 본질적 자각, 민중을 다스리는 정치와 민중을 즐겁게 하는 포르노의 부딪침을 통한 현실의 반성적 행위가 숨겨져 있다. 물론 이면의 의미가 강조되었다면 작가주의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사’ ‘반칙왕’ ‘스캔들’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서 ‘음란서생’의 각본을 쓰고 직접 데뷔작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은, 외형적 이야기 그 음란한 흐름을 더욱 두드러지게 강조한다.

위는 놋쇠고 밑은 사기로 되어 있는, 혹은 그 반대인 그릇을 찾는다는 묘한 암호로 얼굴만 가리고 온몸을 가린 여성이 유기전에 몰래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음란서생’의 오프닝신은 매우 상징적이다.

위와 아래의 재질이 분리된 이 대사는, 양반 서민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당대의 신분사회와 남녀의 엄격한 차별이 일상화 된 세상을 암시하고 있다. 이 말은 나에게는, ‘음란서생’이 정치적 성적 족쇄에 도전하는 영화라는 상징적 선언처럼 들린다.

오프닝 타이틀이 뜬 후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수레에 실려 오는 피멍든 사람이다. 상대 파벌의 모함으로 의금부에서 고문을 당하고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망가진 몸으로 돌아오는 사람의 형이 김윤서다.

가족들은 김윤서가 뛰어난 문장 실력을 발휘해서 적들을 모함하는 상소를 올릴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김윤서는 거절한다. 부인까지 나서서 모욕감을 주며 적들을 응징하라고, 정치적 세력을 쥐고 있는 적들로 가득찬 궁궐로 입궐하지 말라고 하지만 김윤서는 궁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욕을 받는다.

뛰어난 명화를 그대로 베낀 가짜 그림을 유통시키는 일당들을 추적하기 위해 김윤서는 유기전에 갔다가 처음으로 음란소설을 접한다. 유기전은 일종의 유통공간이다. 밥을 먹는 그릇으로 가득 찬 그곳. 성 역시 또 다른 배고픔이다. 음란서적들을 처음 읽으며 김윤서는 충격을 받는다.

그의 이성적 도덕적 판단은 이것을 멀리하라는 것이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궁중의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본능의 자극을 받고 자신의 뛰어난 글 솜씨로 적어본 음란서적을 유기전 주인 황가에게 건네며 보여주자, 황가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음란서를 써달라는 집필의뢰를 받는다. 음란서 배급 전문가인 황가 밑에는 뛰어난 필사 솜씨로 원본 음란서를 베끼는 대필 전문가 필사장이와 그림을 모사하는 모사장이가 있다. 추월색으로 필명을 정한 김윤서가 쓴 음란서적 ‘흑곡비사’는 이제 장안의 화제가 된다.

‘음란서생’은 이처럼 양반 선비가 음란서를 쓰는 과정이 주된 흐름을 이루지만, 또 한쪽으로는 왕의 후궁인 정빈과 김윤서가 몰래 만나 밀회를 하는 멜로드라마가 축을 이루고 있다. 이 두 가지 흐름은 후반부에 하나로 만나 드라마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기여한다.

이 작품의 재미는 전적으로 근엄한 양반이 자극적인 포르노와 접하면서 발생하는 이중적 모습에 있다. 정치와 포르노를 더욱 충돌시켜 깊이 있게 추구하지 못한 것은 영화의 한계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높은 품격을 갖추면서도 인간 존재의 본능적 요소를 적나라하게 탐구해 들어간 이 영화의 가치가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