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미국이 한국 가전과 반도체에 대한 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전자산업계에 대한 선진 각국의 이런 움직임은 ‘IT 코리아’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어, 갈수록 거세지는 통상압력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400리터 이상 한국산 양문형 냉장고에 대해 앞으로 6개월간 삼성전자 4.4%, LG전자 14.3%, 대우일렉트로닉스 9.1%의 잠정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양문형 냉장고는 지난해 연간 수출이 12억3000만달러로 한국 가전제품 수출 주력품목 가운데 하나며, 이 중 EU 수출 비중이 34.2%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국내 업체들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이번 조치에서 가장 높은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은 LG전자는 “최근 1년새 유럽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져 유럽 업체들의 견제가 심해졌기 때문”이라며, “적극적인 소명을 통해 덤핑 관세율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창원공장 외에 중국·인도·인도네시아 공장의 양문형 냉장고 생산 비중을 확대하고, 연말 완공 예정인 폴란드 공장에서도 수출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번 반덤핑 조사는 미국 월풀사의 제소에 따라 지난해 6월 시작된 것으로 EU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양문형 냉장고 판매량은 157% 늘었으며, 시장 점유율도 66.6%에서 79.8%로 약 13%포인트 증가했다.
이에 앞서 미국 법무부는 하이닉스반도체 간부 4명에 대해 D램 담합 혐의로 각각 5∼8개월의 실형과 25만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1일(현지시각) 밝혔다. 하이닉스는 회사 차원에서 지난 2005년 5월 미국 내 가격담합 행위를 인정하고 1억850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 판결은 개인을 겨냥한 후속 추가 조치다.
이들의 혐의는 1999년 4월부터 2002년 6월 15일까지 다른 메모리 반도체회사 직원들과 미국 내 PC 및 서버 제조업체에 공급되는 D램 가격을 담합해 미국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가격담합 등 불공정거래로 한국인이 외국에서 기소돼 유죄에 처해지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자국산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미국의 개인을 겨냥한 이 같은 통상압력이 국내 산업계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도 이 사건과 관련해 3억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2005년 11월 합의했고, 현재 전현직 간부 7명이 연루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도 하이닉스 간부들과 비슷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5년 전 D램 담합으로 미 법원에 구속되는 한국인 수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전자산업진흥회 한 관계자는 “관세·벌금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미국·유럽 등 선진 각국의 한국에 대한 견제는 이제 융단폭격에 가깝다”며 “특히 이 같은 문제는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기도 어려운 것이어서 경쟁국들의 움직임을 조기에 파악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규호·정은아기자@전자신문, khsim·eajung@etnews.co.kr